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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리 3등급 목표” 소년수, “불수능 무서워” 탈북생 막바지 시험 준비…수능의 얼굴은 다양하다
수능 코앞으로…불수능 우려 속 여러 수험생
소년수 학교 올해 두 번째 수능…12명 응시
탈북생들도 수능 막바지 준비 “독학 어려워”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최근 경북 경산시 팔공산 갓바위 앞에 수능 고득점과 대학 합격 등 소원이 적힌 공양물이 놓여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생활과 윤리 3등급.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막바지 준비에 한창인 한 수험생의 목표다. 사소하지만 그에겐 의미가 크다. 교도소에서 시험을 보기 때문이다. 올해 두 번째로 수능을 치르게 된 서울남부교도소 만델라학교 이야기다.

소년수들의 재사회화를 목표로 하는 만델라학교는 국내 최초 교정시설 내 교육시설이다. 지난해엔 수능 준비반이 처음 꾸려졌다. 입시에 촉각을 곤두세운 대치동 등 학원가와 이곳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범죄자에게 응시 기회를 주는 것이 옳으냐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어서다.

소년수들이 수능을 치르는 이유는 입시와 거리가 멀다. 생활과 윤리 과목에 집중한다는 소년수의 목표는 ‘반성’이다. 수능 공부를 계기로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겠다는 것. 김인곤 만델라학교 교장은 “공부하는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학생, 분수 계산도 못하던 수준에서 미적분 문제를 푸는 것만으로 기쁘다는 학생이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소년수 학교 두 번째 수능 “미적분 푸는 것만으로 기뻐”
서울남부교도소 만델라학교 수능준비반에서 소년수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만델라학교 제공]

수능이 코앞으로 다가오며 수험생들도 막바지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올해 수능 최대 화두는 단연 ‘의대’였다. 의대 증원을 기회로 잡으려는 수험생이 대거 모이면서 학원들은 앞다퉈 의대반을 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더 많은 사연이 있다. 헤럴드경제는 다양한 위치에서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 수능을 치르는 이들을 만났다.

만델라학교에선 올해 12명이 수능을 본다. 지금은 밤 9시까지 각자 자습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10명이 수능을 봤는데, 현재 대부분 출소했다. 수능반과 별도로 운영된 검정고시반에서도 지난해 4월 26명, 8월 32명이 시험을 치러 전원이 합격했다. 김 교장은 “작년에 영어 2등급까지 받은 학생은 계속 학업을 이어가고 있고, 검정고시 응시생들은 대학 진학을 하거나 취업준비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만델라학교 수능반을 둘러싸고는 아직 논란이 많다. 하지만 이들을 마냥 사회에서 격리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라고 김 교장은 생각한다. 그는 “국민들의 비판적인 시각도 충분히 공감한다”면서도 “소년수들도 언젠가는 사회로 돌아가야 한다. 사회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면 다시 더 강한 범죄를 저지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의 대학 진학을 돕는 목적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피해자에게 반성하는 태도를 가르치는 것이 가장 크다”고 강조했다.

탈북 청소년들도 수능 앞두고 긴장 “불수능 걱정”
서울 강서구 여명학교 재학생 김모(18)군이 수업을 듣고 있다. 박혜원 기자

국내 최초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서울 강서구 여명학교에선 올해 2명이 수능을 본다. 문과 김모(18)양, 이과 김모(18)군이다. 수시 전형을 거쳐 현재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충족하는 관문만 남아있다.

탈북민 자녀인 김군은 7년 전 한국에 왔다. 인공지능, 컴퓨터, 빅데이터 등에 관심이 많다는 그는 이번 수능에서 2개 과목 합 6등급을 맞춰야 한다. 김군은 “EBS 연계 문제를 주로 복습하고 있다”고 했다.

역대급 재수생 응시에 따른 ‘불수능’ 우려는 김군에게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과학 탐구 과목을 전략적으로 고르기도 했다. 김군은 “물리 과목에 재수생이 많이 몰린다고 하는데, 어렵게 나올 것이기 때문에 골랐다”며 “내가 어려우면 남들도 어려우니 찍어서 맞출 기회가 많다”며 웃었다.

들쭉날쭉했던 올해 모의고사로 김군도 혼란을 겪었다. 특히 6월 모의고사에선 영어 영역 1등급 비율이 1%대에 그치는 등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왔는데, 교육 당국은 ‘공교육을 충실히 받았다면 맞출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김군은 이와 관련 “그건 아닌 것 같다”고 일축했다. 이어 “9월 모의고사는 또 너무 쉬웠어서 수능 대비가 어려웠다”고 했다.

지난해 한국에 온 김양은 교사를 꿈꾸고 있다. 교육학과를 지망했지만, 어떤 과목을 가르칠지 정하지 못해 우선은 중어중문학과 등에 지원했다. 김양은 “수능이 어려울 것 같지만, 준비한 만큼만 성적이 나오면 좋겠다”며 “수능이 끝나면 밀린 잠부터 자고 싶다”고 했다.

입시가 완전히 끝나면 김군은 주식 투자를 시작할 예정이다. 장학금과 용돈을 아껴 투자금 100만원도 만들어뒀다. 김군은 “대학에 가면 시간이 많으니 투자도 다양하게 해보고 싶다”고 했다.

“모르는 문제 물어볼 곳 없어…미적분, 물리 다 독학해야”
여명학교 재학생 김모(18)양이 학교에서 책을 읽고 있다. 박혜원 기자

수능을 앞둔 긴장은 여느 수험생과 같지만, 남모를 어려움도 있었다. 김군은 “학교가 이과 과목을 많이 운영하지 않아서 미적분, 수학Ⅱ, 물리 3개 과목을 모두 독학해야 했다”고 털어놨다. 김양도 “모르는 문제를 물어볼 곳이 없었다”며 “해설을 보면 풀 수 있지만, 응용 문제가 나오면 또다시 틀리는 일이 반복돼 막막했다”고 했다.

부산의 탈북민 대안학교 장대현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정모(18)양도 최저학력기준 충족을 위해 수능을 본다. 정양은 대학에 입학해 다른 학생들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 걱정이다. 정양은 “아무래도 일반고에서처럼 치열하게 수능을 준비하지는 못했다보니, 대학 동기들에 뒤쳐질 것 같다”고 했다.

정양은 3살 때 부모님과 함께 탈북해, 북한에서의 기억은 없다. 스스로도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강하지만, 주변에 무언가를 늘 숨기는 것 같아 불편했다. 이랬던 정양에게 대안학교는 처음으로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 됐다.

그러나 대안학교의 입시 대비 인프라는 사교육 시장이나, 일반 학교 대비 턱없이 부족했다. 정양은 “탈북민 신분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전형에 대한 정보가 없어 모두 혼자 준비해야 했고, 정원 외 선발이라 경쟁률도 알기 어려워 한치 앞도 알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성인을 맞은 이들의 사회 적응은 대학에서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게 교사들 우려다. 유치관 장대현중고등학교 교사는 “탈북 학생들이 대학에서 중퇴하거나 자퇴하는 비율이 높아 이 학교에선 학생들의 정서 회복에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 진학 길 열린 다문화 학생들도 시험장으로
서울 구로구 지구촌학교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지구촌학교 제공]

다문화 학생들이 다니는 서울 구로구 지구촌학교에선 올해 처음으로 대학 입학생을 배출한다. 학교 는 13년 전 설립됐지만, 지난해에야 다문화 대안학교로 정식 인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중국 출신인 재학생 이모(18)양은 한 대학 경영학과에 최종 합격했지만, 경험 삼아 수능을 치를 예정이다. 이양은 “어릴 때부터 경영에 관심이 많았고 사업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양이 한국에 온 건 가족 문제 때문이었다. 중국에서 친부모가 이혼한 뒤,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엄마를 따라 오게 됐다. 입시를 준비하며 가장 어려웠던 것은 물론 한국어 공부였다. 대학 재외국민전형 요건인 한국어능력시험(토픽) 등급은 맞췄지만, 아직도 한국어가 어렵다.

그래서 이양의 공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양은 “한국어가 많이 서툴러서 고민”이라며 “학교 토픽반에 들어가서 읽기와 듣기를 계속 연습하고, 쓰기 연습 책을 사서 집에서도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문화 결혼이 늘어나는 데다, 학력 인정도 받을 수 있게 되며 이 학교 인기도 늘었다. 박지혜 지구촌학교 교감은 “정원을 정해두고 입학생을 받는 게 아니라, 매년 100명씩 신입생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역설적으로 학교 운영은 어려워지고 있다. 학생들에게 교육비를 전혀 받지 않는만큼, 후원금만으로 운영하기에 한계가 오고 있다. 박 교감은 “정식 인가 전에는 일찍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부모의 직업을 물려 받아 식당이나 공장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런 굴레에서 벗어나 대학을 많이 갈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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