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텀싱어 출신 국내서 첫 오페라 주역
“돈 호세에 대한 오해…공연에서 풀릴 듯”
‘카르멘’의 연출을 맡은 김숙영, 돈 호세 역의 존노, 카르멘 역의 정주연 [서울문화재단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팬들 사이에서 테너 존노는 ‘힐링의 아이콘’이다. 그의 팬카페 이름 역시 ‘힐링존’. 힐링과 존을 합친 이름이다. 그런 존노가 일생일대의 변신을 한다. 한국 팬들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던 오페라 ‘카르멘’의 남자 주인공 돈 호세 역을 맡으면서다.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고 집착하는 스토커 같은 인물을 소화하기 위해 그는 일찌감치 체중감량을 시작했다.
“오페라 출연이 확정된 것이 지난해 겨울이었어요. 올 봄에 접어들며 서서히 감량을 시작해 지금까지 10㎏ 정도를 뺐어요. 돈 호세는 군인인데, 저는 포동포동한 귀요미 이미지라…(웃음)” (존노)
수줍게 웃는 모습 뒤로 돈 호세의 복잡다단한 정신 세계까지 담아내야 했다. 그를 유혹하며 사랑에 빠지게 될 또 다른 주인공 카르멘은 메조 소프라노 정주연. 최근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서초에서 만난 두 사람은 “요즘 연습실에서 매일 돈 호세와 카르멘이 된 것처럼 지내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두 사람이 남녀 주연을 맡은 ‘카르멘’(10월 19~20일)은 서울문화재단이 올해로 세 번째로 선보이는 한강 노들섬 야외 오페라다. 프랑스 작곡가 조르주 비제(1838~1875)의 작품으로, 세계에서 가장 자주 공연되는 오페라다. 아름다운 집시 여인 카르멘과 군인 돈 호세의 처절한 사랑과 배신, 비극적인 죽음을 다룬다.
남성 사중창단을 뽑는 경연 프로그램인 JTBC ‘팬텀싱어’ 시즌3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린 존노가 한국에서 전막 오페라에 출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다시 오페라 무대를 할 수 있어 무척 행복하고 설렌다”며 “매 무대가 도전이지만, 도전 없이는 성장도 없다고 생각한다. 저의 모든 것을 다 보여드리기 위해 작정했다”는 각오를 들려줬다. 합창단 생활을 해오다 오페라 단역, 조역을 주로 맡아왔던 메조 소프라노 정주연 역시 이번 ‘카르멘’을 통해 처음으로 오페라 무대에서 주역으로 데뷔한다. 그 역시 “막연하게 꿈만 꿨던 주역을 맡게 돼 굉장히 기쁘다”고 떨리는 마음을 전했다.
두 사람과 함께 뮤지컬을 이끌어갈 연출가는 김숙영이다. 그는 “기존에 오페라를 자주 하지 않았던 가수들이 주연을 맡아 위험성이 있지만, 두 사람 모두 영리하고 열정적이라 잘 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특히 존노의 ‘미숙함’은 도리어 작품이 요구하는 돈 호세 캐릭터에 맞아 떨어져 몰입감을 높인다고 칭찬했다.
‘카르멘’은 2024년의 관객이 마주하기엔 논란의 여지가 많은 작품이다. ‘팜므파탈’의 대명사이자 ‘자유로운 영혼’인 카르멘은 늘 나쁜 여자로 그려졌고, 카르멘을 갈망하는 돈 호세는 여자로 인해 인생이 망가지는 애처로운 남자로 설정됐다. 오페라의 결말은 비극적이다. 자신을 거부하는 카르멘을 죽여버리고, 돈 호세의 절규로 극은 끝을 맺는다. 이러한 이유로 페미니즘이 대두되고, 미투와 데이트 폭력이 만연해진 지난 몇 년 새 ‘카르멘’을 재해석해 시사점을 던지는 연출 방식이 많아졌다.
김숙영 연출가는 “인간의 속성을 관통하는 것이 결국 클래식이라고 생각한다. ‘카르멘’이 그리는 각자의 캐릭터를 두 성악가가 이해하도록 애쓰고 있다”며 “원작의 해석을 그대로 따른다기 보다는 ‘시대가 변해도 사람 사는 건 같다’는 이야기와 (이 상황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던져주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욕 먹을 각오로 하고 있다”며 “카르멘은 결국 죽겠지만, 지금의 관객이 보기에 무언가 (죽음의) 다른 이유를 찾아낼 수 있을 거라 장담한다”고 했다.
서울문화재단의 노들섬 오페라 ‘카르멘’의 존노와 정주연 [서울문화재단 제공] |
두 주연배우 역시 ‘카르멘’을 만나며 자신들이 마주해야 할 두 인물을 치열하게 공부하고 고민했다. 사실 존노는 미국 유학 시절 30회 가량 오페라에 출연했지만, ‘카르멘’이 그가 늘 해오던 작품이나 즐겨보던 오페라는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호세는 마음의 병이 깊은 사람이다.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과 박탈감을 안고 있고,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우울감에 젖어있다”며 “늘 누군가를 의지해야 하는 사람이기에 그 대상이 사라졌을 때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인물로 해석했다”고 말했다. 그가 바라본 돈 호세는 때론 ‘조커’같은 모습으로 관객과 마주한다.
정주연 역시 온전히 카르멘이 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는 “눈빛 한 번으로도 호세를 유혹할 정도로 매력적이어야 하는데 그 모습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자유를 갈망하는 카르멘이기에 호세는 늘 피로감을 주는 인물이다. 그러면서도 카르멘은 사랑과 삶에 있어 비겁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귀띔했다.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서로를 차분히 지켜보며 극 안으로 녹아들고 있다. 정주연은 “첫 리허설 때부터 존이 많이 챙겨줬다. 연습실에서 항상 존에게 ‘나를 너무 배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할 정도”라며 “그래도 호세이니 ‘막 해도 된다’고 말하고 있다”며 웃었다.
서로를 향한 칭찬도 끊이질 않는다. 존노는 “주연씨는 외국의 카르멘 전문 여가수와 견줘도 뒤지지 않을 만큼 뛰어나다”며 극찬했다. 정주연 역시 “(존노는) 정말 호세같이 노래한다. 뿌리치고 가는 모습이 너무 불쌍해 감정이 절로 이입된다”며 “노래 자체가 연기인 사람이다. 늘 배우고 싶은 점”이라며 감탄했다.
서울문화재단의 노들섬 오페라 ‘카르멘’에서 돈 호세 역을 맡은 존노[서울문화재단 제공] |
이번 작품은 존노에겐 완벽한 ‘터닝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정적이면서도 심지어 성스럽기까지한 존노의 음성은 돈 호세를 만나 완전히 다른 색을 입게 된다. 그는 “팬들이 콘서트에서 부른 돈 호세의 ‘아리아’가 감미로워 존 호세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오페라를 잘 모르는 팬들은 돈 호세를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며 “이번에 다시금 알게 될 것 같다. 저를 통해 클래식을 알리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고 했다.
이처럼 그의 가장 큰 목표는 대중과 클래식 음악의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 꿈은 이뤄지고 있다. ‘팬텀싱어’를 통해 입덕한 ‘클린이(클래식+어린이)’ 팬들은 존노와 함께 음악을 배우고 공부하며 이젠 명실상부 ‘클덕’이 되고 있다. 존노는 “저를 탈덕하고 피아니스트 임윤찬에게 간 팬도 있다”고 웃으며 “언제든지 환영이다. 제가 조금 더 잘 하고 영향력을 가져 더 많은 분들에게 클래식을 알릴 수 있도록 꾸준히 배워나가겠다”고 했다.
존노와 정주연은 개막 디데이를 세며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연습에 한창이다. 야외 오페라로 만나는 ‘카르멘’은 기존 180분 버전을 인터미션 없이 100분으로 압축했다. 전 세계를 사로잡은 히트 아리아(‘하바네라’, ‘투우사의 노래’)와 어렵지 않은 스토리가 관객들에게 친절하게 다가갈 것이라고 두 사람은 입을 모은다.
“‘카르멘’이라는 작품이 있었기에 ‘조커’와 ‘기생충’ 같은 세계적인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현재 흥행작의 원조이자 고전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거예요.” (존노) “자극적일 수록 당기는 법이잖아요. 막장드라마의 묘미를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정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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