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쇼팽 피아노곡 연주
피아니스트 마리아 조앙 피레스 [풍월당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저는 늘 제일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라, 누군가를 위해 아침을 준비해요. 보통 한 시간 정도 걷고 집에 오면 쌓여 있는 일들을 하죠. 예를 들면 가드닝, 미팅, 전화를 받는 일이에요. 제 인생은 사실 아주 평범해요. 여기 계신 분들이 가지고 계신 인생처럼요.”
여전히 뜨겁고 습한 한국의 여름 날씨를 견디면서도 피부를 괴롭히지 않는 보드라운 천연 소재의 옷차림을 한 여든의 피아니스트가 등장했다. 무대 위에서나 아래에서나 소박한 옷차림으로 서는 그는 때때로 길고 고된 길을 묵묵히 걸어온 수행자의 모습 같다. 그는 “옷은 내게 큰 의미가 없다”며 “그저 나의 존재를 표현하는 것을 입는다”이라고 했다.
‘피아노 여제’ 마리아 조앙 피레스(80)가 한국을 찾았다. 내한 리사이틀을 이틀 앞둔 지난 18일 오후 그는 서울 신사동의 클래식 음반 매장 풍월당에서 팬들을 만났다. 그가 온다는 소식에 ‘클래식 애호가’들의 손은 모처럼 바빠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공지된 지 1~2시간 만에 80석 전석이 순식간에 마감됐고, 풍월당은 모처럼 밀려드는 전화 폭격에 기분 좋은 비명을 질렀다. 이날 현장에서 관객들은 한 시간 넘게 그의 이야기를 서서 듣기도 했다.
피레스의 이번 내한은 무척 특별하다. 지난 여름 예정됐던 일본 리사이틀 일정이 취소됐던 터라 팬들 사이에선 한국 공연도 ‘안심’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피레스는 바쁜 일정을 쪼개 한국 관객과 만난다. 서울 예술의전당(9월 20일)에서의 리사이틀을 시작으로 인천(21일), 대전(25일), 대구(27일), 강동(29일)에서 공연한 후 잠시 대만으로 간다. 이후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와 슈베르트 연가곡 ‘겨울나그네’(10월 26일, 성남아트센터)로 다시 한국을 찾는다.
그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세 번째다. 그가 가진 한국에 대한 기억은 30년 전부터 시작된다. 당시 그는 “기차를 타고 딸과 바닷가 마을을 방문했는데 무척 즐거웠다”며 돌아봤다.
“한국에 대한 지식이나 인상을 말하기 위해선 좀 더 머물러야 하겠지만, 사람들이 따뜻하고 친절하며 매우 열려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온라인이나 워크숍 등으로 한국 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아주 지적이면서도 섬세해서 감사했던 기억이 나요.”
포르투갈 출신의 피레스는 75년 간 피아노를 쳤다. 그 역시 영재 출신이다. 1970년 베토벤 바이센테니얼 콩쿠르에서의 우승은 그의 이름을 세계 무대에 알린 계기였다. 오랜 시간 그는 모차르트와 쇼팽, 슈베르트 ‘스페셜리스트’로 불려왔다. 영국의 펭귄 가이드북(The Penguin Guide to Recorded Classical Music)은 그의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에 대해 “스타일리시하면서도 훌륭한 모차르트 연주자”라며 “항상 세련되면서도 고전적인 감성이 부족하지 않고, 생동감 있는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했다.
그는 이 작곡가들을 더 자주 선택하는 것에 대해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며 “다만 내 손은 무척 작아 라흐마니노프 같은 작품은 연주하지 못하는 아주 실제적인 이유가 있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누구에게나 조금 더 끌리고 좋아하는 작곡가가 있다”며 “난 스페셜리스트라기 보다 그 음악들을 사랑하고 배우기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의 ‘음악적 모국어’는 모차르트라도 과언은 아니다. 다섯 살에 연 첫 독주회에서도 모차르트 소나타를 연주했고, 일곱 살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했다. 한동안 모차르트를 연주하지 않은 기간도 있다. 독일에서 공부한 7년 동안이다. 그는 “모차르트는 늘 내게 흥미를 불러일으켰다”며 “기쁨과 눈물, 고통과 빛이 한 프레이즈에서 오는 감정의 다양성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번 한국 공연에서도 그는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0, 13번과 쇼팽의 녹턴을 들려줄 계획이다. 리사이틀을 통한 청중과의 소통은 그에게 무척 중요한 의미다.
“리사이틀은 에너지라는 관점에선 좀 더 까다로워요. 온전히 혼자의 몫이죠. 평생 리사이틀이 어렵다고 생각하고 살았어요. 그러다 나이를 무척 많이 먹었을 때 뒤늦게 깨달았어요. 청중들은 무대에 있지 않지만, 끊임없이 저와 대화한다는 것을요. 음악은 작곡가, 지휘자, 오케스트라, 그리고 청중과의 대화에요. 자신의 이고(ego)와의 대화가 아니라 인생, 고통, 행복, 모든 걸 나누는 게 연주예요. 음악가는 주고 청중은 받는다는 사고방식은 잘못된 거예요. 청중은 음악가가 그들에게 주는 만큼 음악가에게 돌려주죠. 우리가 함께하는 이 관계, 이 흐르는 에너지를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50대 중반 무렵부터 피레스가 그의 음악 여정에서 중요한 순위에 둔 일은 미래의 영재들을 위한 ‘음악 교육’이다. 그는 1999년 포르투갈에 벨가이스 예술센터를 설립, 차세대 음악가들을 이끌고 있다.
그는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것은 큰 책임감을 요구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특히나 커리어를 쌓기 위해 콩쿠르가 목적이 되는 레슨을 지양하는 것도 음악가이자 교육자로의 철학이다. 피레스는 “커리어와 예술을 혼동해 생각하는 건 정말 위험하다. 콩쿠르만을 강조하면 아이들이 예술과 상관 없는 길을 가게 된다”며 “커리어엔 예술이 없다. 예술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신성한 것”이라고 말한다. 음악을 잘 보존하고 살아있게 만들기 위해선 늘 ‘가르치는 방식’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아이들과는 함께 대화를 만들어가야 해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은 함께 성장하죠. 성장을 원하는 아이와 대화를 할 때, 진짜 교육이 시작돼요.”
피레스는 ‘마스터클래스’를 잘 열지 않는 음악가로도 유명하다. 교육자와 피교육자를 구분하는 일방적인 전달 방식은 그의 교육 철학에 부합하지 않아서다. 그는 “마스터클래스라는 단어는 ‘마스터가 모르는 사람을 위해 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무지한 사람과 마스터를 나누고 결정하는 것은 균형잡힌 생각이 아니다”며 “선생님은 자신이 아는 것을 학생에게 가르치는 게 아니다. 가장 좋은 것은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같은 레벨에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팔순의 피아니스트에겐 매일이 교육이고, 매일이 배움이다. 이미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혀왔지만, 그는 늘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배운다”고 했다.
“우리는 자주 중요한 것을 늦게 하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에 방해를 받기 때문이에요. 뒤늦게 삶을 이해하는데 노력을 하게 돼요. 전 아직도 최선을 다해 배우고 있어요. 날마다 삶을 위해 더 배우려고 노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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