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재 등장에 40~80대 관객층 급증
첫 작품 ‘모차르트!’ 땐 모든 무대 전쟁
혹독한 트레이닝, 자신감·재미 다 커져
뮤지컬 ‘4월은 너의 거짓말’에 출연한 가수 겸 뮤지컬 배우 김희재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
“뮤지컬을 처음 보는 분이 90% 이상이더라고요. ‘내 인생에서 뮤지컬을 모르고 살았는데 희재님 덕분에 이런 세상이 있다는 걸 알게 돼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척 뿌듯했어요.”
가수 겸 뮤지컬 배우 김희재가 무대에 오르는 날에는 공연장의 풍경이 바뀐다. 예술의전당 앞에는 팬클럽 관광버스가 서 있고, 로비엔 4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이 기분 좋은 설렘을 만든다. 멀리 캐나다에서 날아왔거나, 제주에서 뭍으로 나온 팬도 있다.
2030세대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뮤지컬 시장에 TV조선 ‘미스터트롯’ 시즌1 출신 김희재가 입성하자 이 같은 변화가 생겼다. 그를 통해 뮤지컬을 처음 접한 팬은 김희재를 응원하러 왔다가 ‘뮤덕(뮤지컬 덕후)’이 되기도 한다. 어떤 20대 팬은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다른 캐스트의 공연까지 볼 정도다.
이쯤 되면 김희재를 ‘문화 전도사’라 할 만 하다. 그가 등장하면 객석 안은 ‘세대 통합’이 완성된다. 백만 탄 왕자, 동화 같은 스토리로 중장년 세대에게 진입장벽이라 여겨졌던 뮤지컬계에 나이 지긋한 ‘형님’, ‘누님’이 속속 자리하게 된 것이다. 연령대는 달라도 감동의 순간은 같았다. 그가 주연을 맡은 ‘4월은 너의 거짓말’이 “누구나 지나온 풋풋한 학창시절을 돌아보고 추억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김희재는 설명한다.
“첫 뮤지컬 도전작이었던 ‘모차르트!’에서 팬들이 많이 좋아해줬어요. 저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팬들에게 효도하는 것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4월은 너의 거짓말’이란 작품은 현지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은 일본 만화가 아라카와 나오시의 작품이 원작이다. 애니메이션과 영화로도 제작됐고, 현재 영국에서도 동시에 무대에 오르고 있다. 김희재는 지난해 ‘모차르트!’로 데뷔, 이번이 두 번째 뮤지컬 무대다.
김희재는 “요즘 뮤지컬이 너무 재밌다”며 활짝 웃었다. 사실 처음부터 편안한 마음은 아니었다. 그는 “‘모차르트!’ 당시 총 25회 중 20회 차를 끝냈을 때 스태프들이 이제 다섯 번 밖에 안 남았다고 했는데 당시 ‘아직도 그렇게나 많이 남았나’ 싶었다”며 “그만큼 심적으로 무대가 매번 전쟁터였고, 도망치고 싶었다”고 돌아봤다. 이번 작품에선 확연히 다르다.
“늘 내게 주어진 무대를 잘 소화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어요. 하지만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쳐 자신감을 채우다 보니 이젠 편하게 하고 있어요.”
뮤지컬은 불운의 신동 피아니스트 소년과 천재 비올리스트 소녀가 음악으로 교감하는 이야기를 담는다. 음악 신동들이 만남과 이별을 마주하며 그들의 영감과 재능을 키워가는 청춘물이다. 원작에선 중학생이던 남녀 주인공의 연령대는 뮤지컬에서 고등학생으로 달라졌다. 김희재는 남자 주인공 코세이 역을 맡았다. 천재적 재능을 가졌지만 어머니의 죽음 이후 트라우마로 피아노를 치지 못하다 마음과 재능을 회복해 나간다.
코세이를 만나며 김희재도 자신의 지난 시간을 떠올렸다. 그는 “코세이는 천재 피아니스트이고, 난 노래를 하는 아이였다”며 “실용음악과 클래식은 엄연히 다르지만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만은 닮았다”고 되돌아봤다. 이어 “코세이가 피아노를 치며 트라우마를 치유하듯, 고등학생 시절의 난 다른 사람의 노래를 부르며 아픔을 치유했다”고 말했다.
김희재는 ‘트로트 신동’이었다.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터트롯’에 나왔을 때에도 그가 어린 시절 출연했던 ‘전국 노래자랑’, ‘스타킹’ 영상이 회자됐다. 그는 “아무도 나를 찾는 곳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며 “트로트 신동으로 사랑을 받았지만 변성기가 오면서 귀여운 아이는 사라지고 목소리는 굵어지며 어디에서도 찾지 않았다”고 했다. 그 시절이 20대 초반까지 무려 5~7년이나 됐다.
“그 시절 젊은 트로트 가수는 장윤정·박현빈 선배님밖에 없을 때였어요. 성인이 되고 나니 사람들이 ‘네가 무슨 트로트냐’며 아이돌을 하라고 제안하더라고요. 오디션을 봤지만 아이돌 회사에선 뽑아주지 않았어요. 난 ‘아이돌을 할 만한 외모가 아닌가’ 싶어 성형외과를 가야 하나 고민도 하고, 피부라도 좋으면 뽑히지 않을까 싶어 피부과도 다녔어요. 그나마 뽑혀 들어가면 회사가 사라지기도 했고요. 꽤 오래 침울한 시간을 보냈죠.”
그 시간의 기억이 코세이의 감정을 전달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김희재는 “지난 날을 극복하고 다시 무대에 선 것이 코세이와 연결된 지점”이라며 “나의 힘들었던 시절을 대입해 연기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등학생의 순수함과 동 화같은 스토리의 감성을 노래로 들려주는 것도 관건이다. 그는 “트라우마를 표현하고 음악과 화해하면서 감동을 줘야 하는 부분이 있어 코세이의 감정을 깨끗하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했다.
뮤지컬은 김희재에게 새로운 날개가 됐다.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한 그는 뮤지컬을 통해 보다 다양한 창법과 발성을 쓰며 보컬리스트로서 역량을 키워가고 있다.
“뮤지컬을 하면서 단 한 순간도 허투루 한 적이 없어요. 맡은 역할에 대한 책임감으로 레슨도 많이 받았죠. 지금도 매회 제 모습을 촬영하며 모니터하고 있어요. 하지만 평가는 결국 관객이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뮤지컬 배우 김희재의 점수는 아직 60점이에요.”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