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국제음악제 리사이틀 무대
5년 만에 한국을 찾은 네덜란드 형제 듀오 루카스·아르투르 유센 [예술의전당 제공] |
두 사람은 마주 앉을 때도, 나란히 앉을 때도 하나가 된다. 형은 여덟 살, 동생은 다섯 살에 피아노를 시작했다. 세 살 터울이나 쌍둥이처럼 닮은 형제는 함께 피아노를 배우고, 나란히 앉아 연주했다. 네 개의 손은 한 사람의 것처럼 건반 위에서 춤을 춘다. 20여 년의 시간 동안 서로를 닮아갔다. 네덜란드 출신의 ‘형제 피아니스트’ 루카스 유센(31)과 아르투르 유센(28)이다.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영향을 받아요. 피아노도 취미도 관심사도요. 대중음악 취향도 결이 비슷하고, 좋아하는 음식도 같죠. 저흰 늘 그랬어요. 항상 닮아있어요.”(루카스 유센)
‘소울메이트’ 형제 듀오가 한국에 왔다.2019년 서울시립교향악단과의 협연 이후 5년 만이다. 유센 형제는 2024 예술의전당 국제음악제에 초청, 오프닝 공연(8월 6일)과 리사이틀(8월 7일)로 관객과 성공적으로 만났다. 개막 공연에선 국제음악제를 위해 모인 SAC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풀랑크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고, 리사이틀에선 모차르트, 슈만, 라흐마니노프를 들려줬다. 형제가 처음 연주하는 요르그비드만의 곡도 있다.
오랜 시간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 한 형제는 서로를 가장 잘 아는 친구다. 말 그대로 ‘쿵짝’이 잘 맞는 사이다. “서로 원하는 것이 달라서 생기는 마찰과 갈등이 적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할 정도다.
“제가 보는 아르투르는 강점은 많지만 단점은 별로 없어요. 함께 여행하기에 참 좋은 사람이고, 인생과 음식을 즐길 줄도 알죠. 좋은 분위기를 풍기고, 함께 어울리고 싶은 사람이에요. 스스로를 잘 다스리고요. (아르투르가 동생이라) 전 참 운이 좋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어요.”(루카스)
“루카스도 마찬가지예요. 장점과 약점을 콕 집어 이야기하기 어려워요. 다만 확실한 건 훌륭한 피아니스트라는 거죠. 함께 이런 삶을 살아가는 게 정말 즐겁고, 잘 어울려 지낼 수 있다는 것이 행운이죠.”(아르투르 유센)
두 사람에게 서로의 존재는 큰 힘이다. 대다수의 피아니스트가 솔로 활동으로 인한 지독한 외로움을 호소하지만, 형제는 늘 ‘함께’라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다.
아르투르는 “무대 위에서의 삶과 연주 후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가장 좋은 나의 모습이지만, 연주 여행을 위해 이동하며 머무는 시간엔 굉장히 외로울 때가 많다”며 “우린 형제로서 함께 한다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누군가와 이런 삶을 살고 싶다고 해서 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인생이라는 것이 그렇게 풀리지 않을 때가 있기 마련인데 우리 형제는 그게 가능하다”고 했다.
두 사람의 음악은 닮았으면서도 다르고, 다르지만 닮았다. 듀오일 때에는 서로의 소리에 차곡차곡 포개지고, 솔로일 땐 각자의 자리에서 빛을 낸다. 루카스는 “솔로일 때에는 물론이고 함께할 때 차이를 더 극명하게 느낄 수 있을 만큼 우린 서로 다르다”며 “물론 그 차이를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사람들은 나의 언어를 통해 우리를 볼 확률이 높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연마다 관객들은 다른 의견을 내더라고요. 동일한 연주회를 관람한 두 사람에게 전혀 다른 의견을 들은 적이 있어요. 한 사람은 아르투르가 낭만적이고 루카스는 지적이라 했고, 다른 사람은 반대로 이야기했죠. 사람의 관점과 인식은 항상 다른 것 같아요.”
사실 피아노 듀오를 위한 곡은 많지 않다. 때문에 두 사람은 “새로운 곡, 아직 발견하지 못한 곡을 찾기 위해 눈을 크게 뜬다”고 했다. 아직 아무도 모르거나 제대로 연주하지 못한 보석 같은 곡이 많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형제의 선택을 받은 곡들은 저마다 다른 색으로 무대의 공기를 바꾼다.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것도 곡마다 다르다. 루카스는 “단순히 행복감을 전하고 싶은 곡이 있고, 때로는 슈베르트의 환상곡처럼 조금 더 극적인 느낌과 곡이 담은 감정적 가치를 느끼게 해주고 싶을 때가 있다. 어떨 땐 긴장감 넘치는 리듬에서 오는 압박과 흥분을 관객과 함께 느끼고 싶을 때도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이 지향하는 듀오의 모습은 ‘아름다운 합치’다. 함께 연주할 때의 파트 배분은 전적으로 ‘운’에 맡긴다. 서른 살 전후의 나이에도 형제의 피아노에는 놀이가 끼어든다. ‘동전 던지기’로 파트를 나누는 것이다. 동전의 앞면이 나온 사람은 앞부분, 뒷면이 나온 사람은 뒷부분을 맡는다. 두 사람은 “(파트 배분은) 순전히 우연”이라며 웃는다.
함께하는 음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서로에게 잘 맞추는 것”이다. 그러니 “협주를 할 때는 자존심을 내세울 틈이 없다”고 형제는 입을 모은다. “자아를 실현할 공간은 있지만, 결국 한 사람의 연주처럼 들려야 하기에 내 자아를 내세울 수 있는 여지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다.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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