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장학생 박혜상, 교수로 참여
게오르그 솔티 아카데미의 조나단 팝 예술감독, 캔디스 우드 대표, 박혜상 [예술의전당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첫 과정에서 오페라 ‘오를란도’를 다뤘어요. 죽음을 결심하는 장면인데 소리가 너무 예쁘게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노래를 멈추고 책을 던져보라고 했어요. 내면의 모든 감정을 꺼내기 위해서였죠.” (박혜상)
이탈리아의 ‘게오르그 솔티 아카데미’(7월 30일~8월 3일)가 한국에 상륙한 첫날 ‘세계적인 디바’ 박혜상(36)이 차세대 성악가들과의 첫 수업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국인은 노래는 잘하는데 인형같다, 감정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곤 했다”며 “‘무언가를 표현하는데 있어 벽이 하나 느껴지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고 했다. 아시아 소프라노 최초로 세계적인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과 전속계약을 맺고, 세계 유수 오페라하우스에 선 멘토의 조언이다.
박혜상은 “그 벽을 깨기 위해 (한국에서 열리는) 솔티 아카데미에 왔고,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도 그 벽을 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지휘 거장’ 게오르그 솔티(1912~1997)의 정신을 이어받아 1997년 오페라 본고장에 설립한 게오르그 솔티 아카데미는 오페라의 정수를 전하는 교육기관이다. 이제 막 경력을 쌓기 시작하는 청년 성악가를 해마다 12명씩 선발, 차세대 오페라 가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3주간의 프로그램이다. 한국에서 이 아카데미가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게오르그 솔티 아카데미의 조나단 팝 예술감독, 캔디스 우드 대표, 박혜상 [예술의전당 제공] |
솔티 아카데미에 있어 한국은 ‘오랜 숙원’이었다. 조나단 팝 예술감독은 “한국에 재능있는 성악가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어 처음 솔티 아카데미를 시작할 때부터 한국에 오고 싶었다”며 “차세대 성악가들을 발굴해 박혜상과 같은 실력 있는 인재로 키울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하는 것이 우리 아카데미의 목표”라고 했다. 캔디스 우드 대표도 “해마다 전 세계에서 많은 지원자들이 오는데 한국에서도 특히 많이 온다”며 “얼마나 많은 인재들이 있는지 보고 싶어 한국에 오게 됐다”고 했다.
솔티 아카데미는 지난 20여년간 400명의 인재들을 배출했다. 박혜상은 솔티 아카데미 ’최고의 아웃풋‘ 중 한 명이다. 그는 2013년 줄리어드 재학 시절 받았던 마스터 클래스 피아노를 쳤던 조나단 팝 예술감독과의 만남이 이듬해 솔티 아카데미와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박혜상은 “그 때가 이탈리아에서 노래한 첫 경험”이라며 “당시의 난 아시아의 작은 여자아이였는데, 솔티 아카데미에서의 인연 이후 항상 커리어를 응원하고 지지해줘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했다.
예술의전당과 솔티 아카데미가 공동으로 여는 ‘게오르그 솔티 아카데미 벨칸토 코스’는 현지 프로그램의 ‘축소판’ 격으로 나흘간 진행된다. 조나단 팝 예술감독은 “4일간 진행하나 최고 수준의 교수진이 참여하는 과정”이라며 “이탈리아와 한국 과정의 차이라면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 뿐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에서의 프로그램엔 솔티 아카데미 창립자이자 왕립음악원 수석 코치인 조나단 팝을 비롯해 지휘자 카를로 리치, 소프라노 바바라 프리톨리, 딕션 전문가 스테파노 발다세로니, 솔티 장학생 출신인 박혜상이 교수진으로 함께 한다. 오페라 무대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부터 이탈리아어 발음과 표현, 감정과 연기까지 오페라의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
‘발음 훈련’은 필수다. 많은 성악가들은 외모부터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동양인 성악가가 유럽에서 경쟁하기 위해선 자국민보다 더 정확한 발음과 뉘앙스를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나단 팝 감독은 “노래를 잘하고 보이스가 좋은 것도 중요하지만, 이 텍스트가 표현하는 음악을 전달하기 위해 정확한 모음·자음 발음과 강약 조절, 내용과 감정 전달을 위한 수업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인의 느낌과 서구가 가진 기대치를 잘 끌어내 줄 수 있는 사람이 박혜상”이라고 했다.
게오르그 솔티 아카데미의 조나단 팝 예술감독, 캔디스 우드 대표, 박혜상 [예술의전당 제공] |
박혜상은 “한국인 성악가는 굉장한 테크닉을 가지고 있기에 언어의 뉘앙스를 살리면 음악적 효과를 더 극대화할 수 있다”며 “중요한 단어들과 액센트에 있어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강조할 수 있는 부분을 표현할 수 있도록 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아카데미에 참여하는 박혜상의 각오와 다짐이 남다르다. 그는 “세계적인 커리어를 쌓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도전을 해보고 싶다”며 “한국은 콩쿠르에선 1등을 하며 두각을 보이지만, 세계 주요 무대에선 잘 포함되지 않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늘 있었고 그것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 영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의견과 마음, 감정을 가감없이 펼칠 수 있도록 마음을 많이 두드리는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했다.
게오르그 솔티 아카데미 프로그램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는다. 이탈리아 현지 프로그램에선 한 명의 성악가가 온전히 성장할 수 있도록 커리어를 쌓는 과정을 지켜보며 응원한다.
캔디스 우드 대표는 “한 해에 참여하는 인원이 12명뿐이기에 모두 가족같다”며 “단지 코스를 제공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모든 네트워크를 공유해 학생들이 커리어를 쌓아가는 과정을 지원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커리어에서 가장 힘든 시기는 졸업 이후 아티스트로 무대에 서기 전 단계의 전화 과정”이라며 “솔티아카데미가 이 시기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을 최대한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진행한 나흘간의 아카데미를 통해 선발된 우수 참가자는 내년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솔티 아카데미 참여 자격이 주어진다.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