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줄라 구트만, 트랜스엑스텐드 2, 2012년. 사회에서 인식하는 몸과 이상적인 형태로 여겨지는 몸을 작품의 주제로 다룬다. [서울공예박물관] |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옥을 번갈아 꿰어 만든 화려한 목걸이, 반짝이는 금은 팔찌와 반지, 값비싼 보석이 박힌 브로치…. 과거 장신구는 특권층과 부유층에게 권력의 상징이자 가장 효과적인 과시 수단이었다. 부와 권력을 한 눈에 드러내는 상징으로 장신구 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런 장신구가 독자적인 예술 장르로 변모했다. 20세기 이후 재료와 형식을 뛰어넘는 실험적인 현대 장신구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다. 작가들은 장신구를 예술적, 철학적,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표현 매체로 삼기 시작했다. 장신구는 페미니즘을 표현하기도 했고, 미니멀리즘을 담기도 했으며 레거시를 비꼬는 위트 자체가 되기도 했다.
미셸 크래머, 배짱이 있나요?, 2011년. 노화와 질병으로 표면이 손상된 피부를 연상시키는 장신구. [서울공예박물관] |
공새롬, 버들강아지. 낱알의 쌀로 제작한 장신구. [서울공예박물관] |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한국-오스트리아 현대 장신구 교류전 ‘장식 너머 발언’은 이처럼 새로운 시각적 언어로 등장한 현대 장신구를 집중 조명하는 전시다. 오스트리아 작가 57명과 한국 작가 54명 등 총 111명 작가가 제작한 675점의 작품이 소개된다. 1892년 한국과 오스트리아 수교 후 사상 첫 대규모 예술 교류전으로, 지난해 오스트리아 현지에서 열린 전시를 한국 장신구 예술과 함께 조명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김수정 서울공예박물관장은 “양국의 현대 장신구 작가들의 활동 범위를 확장하기 위해 기획했다”고 전했다.
전시는 크게 세 가지 주제인 ▷주얼리 아방가르드 ▷현대 장신구의 오늘 ▷현대 장신구의 내일 등으로 이뤄진다.
첫 번째 전시장은 197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과 오스트리아 양국의 현대 장신구 역사를 조명한다. 1970년대 오스트리아 1세대 현대 장신구 작가들은 페미니즘 같은 사회·정치적 발언을 장신구에 직접 담았다. 반면 같은 시기 한국의 1세대 작가들은 금속 공예 기반의 현대 장신구에 국제적인 경험을 더해 장신구 안에 신체성과 자연의 심상을 은유적인 방식으로 풀어냈다. 유럽 현대 장신구를 이끈 엘리자베트 J. 구. 데프너, 아니타 뮌츠 등 오스트리아 작가와 금속 공예를 기반으로 예술 장신구 개념을 전파한 이정규, 김정후 등 한국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현대장신구의 오늘’ 주제로 구성된 전시 전경. [서울공예박물관] |
이 공간 옆에는 2000년대 이후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과 오스트리아 작가들의 현대 장신구 작품들이 ‘신체’, ‘자연’, ‘서사’의 소주제로 전시됐다. 무엇보다 각 소주제에 따라 양국 작가들의 작품이 대구를 이루는 전시 방식이 흥미롭다.
예컨대 첫 번째 소주제인 신체에서 한국 작가들은 관계 속에서 상대적 의미를 갖는 인간의 존재를 탐구하는데 중점을 뒀다. 인간의 신체에 반응해 변화하는 팔찌를 만든 이광선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반면 오스트리아 작가들은 신체적 의미를 확장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열망을 다채롭게 조명하는데 주력했다. 이를 보여주듯 미셸 크래머는 인간 피부처럼 노화를 거치는 라텍스 소재로 작품을 만들었다. 우르줄라 구트만은 이상적 형태로 여겨지는 우리의 몸을 주제로 작업을 했다.
마지막 전시장에서는 미래 제작 환경을 고려한 작가들의 새로운 작업 방식을 볼 수 있다. 윤덕노, 조성호 등 한국 작가들은 3D(차원) 제작과 플라스틱 소재를 활용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슈테피 모라베츠, 콘스탄체 프레히틀 등 오스트리아 작가들은 기존 생산 방식을 개념적으로 전복하는 실험적인 작품들을 보여줬다.
전시는 7월 28일까지. 무료 관람.
ds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