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한 이미지, 트렌디한 느낌으로 바뀌어”
공공 공연장 최초로 서울 성수동에 팝업스토어를 연 세종문화회관 [세종문화회관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지뢰찾기’ 게임처럼 촘촘한 격자무늬 화면에 빨간 폭탄이 등장한다. 정확한 자리에 마우스를 올리고 클릭. 흐르는 초침 사이로 다급해지는 손 끝에 마우스가 떨려온다. 서울 성수동 세종문화회관 팝업스토어에 생긴 ‘피켓팅 게임’. 30초 안에 남아있는 좌석을 빠르게 클릭하면 오케이. 저조한 순발력에 겨우 확보한 좌석은 20개. 옆자리 남성 방문객의 결과를 지켜보니 28개. 팝업스토어 관계자는 “역대 1위는 29개 좌석을 확보한 참가자”라고 귀띔한다.
서울 성수동 AK밸리부터 이어지는 연무장길. 불과 330여m 사이의 길목엔 너댓 개의 팝업스토어가 이어진다. 요즘 뉴욕에서 가장 핫하다는 러닝화 브랜드 호카(HOKA), 스포츠 의류 브랜드 라코스테, 모델 주우재가 앰버서더로 활동 중인 팬암까지…. 한 걸음만 옮기면 인기 팝업스토어가 채이는 이 길목에 난데없이 사흘(5월 17~19일)짜리 단기 팝업스토어가 문을 열었다. 삼성전자가 Z플립5 레트로 팝업스토어를 열며 화제가 됐던 공간인 Y173에 서울 광화문을 47년간 지켜온 공연계 ‘큰 형님’ 세종문화회관이 성수동 나들이에 나선 것이다.
공공 공연장 최초로 서울 성수동에 팝업스토어를 연 세종문화회관 [세종문화회관 제공] |
토요일 초저녁 세종문화회관 팝업스토어에서 만난 김경민(30) 씨는 “평소 성수동에 자주 오고 팝업스토어도 즐겨 다니는데, 사람들이 ‘세종’이라는 글씨가 적힌 봉투를 들고 다니는 것을 보고 핫한 데인가 싶어 오게 됐다”며 “타이포그래피가 너무 예뻐 처음엔 새로 생긴 빵집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와보니 공연장이어서 굉장히 놀랐다”며 웃었다.
세종문화회관이 성수동에 팝업스토어를 연 목적은 명확하다. 바로 관객 확장을 위해서다. 세종문화회관의 여름 공연 축제 격인 ‘싱크 넥스트(Sync Next) 24’ 개막(7월 5일)을 앞두고 새로운 공간에서 색다른 관객층과 소통하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
공공 공연장 최초로 서울 성수동에 팝업스토어를 연 세종문화회관 [세종문화회관 제공] |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싱크 넥스트가 표방하는 정신은 동시대성”이라며 “세종문화회관이 전통적인 공간이라면 성수는 이 시대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미래지향적 공간이다. 장르와 무대의 경계를 넘어 동시대를 선보이는 예술을 관객에게 알리기 위해 성수에 왔다”고 말했다.
팝업스토어의 내부 공간은 80여평. 작은 크기이지만 공간은 알차게 활용했다. 마당을 통해 들어간 입구엔 올해 ‘싱크 넥스트 24’의 키컬러인 녹색으로 꾸민 무대가 자리하고 있다. 무대를 중심으로 왼쪽엔 일종의 안내테스크‘인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존, 오른쪽으론 ‘싱크 넥스트24’에 참여하는 10팀의 아티스트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는 메시지 존이 있다. 이번 공연을 위해 만든 아티스트 얼굴이 담긴 화보형 엽서에 메시지를 적어 ‘녹색 우체통’에 보내는 아날로그 체험을 할 수 있다. 10팀의 아티스트 중 인디 뮤지션 유라의 공연은 현재 매진된 상태다.
메시지를 보내고 난 뒤 동선을 따라 이동하면 ‘피켓팅’ 게임에 도전할 수 있다. 그 옆으론 형형색색의 색연필로 우국원 작가의 포스터를 칠해볼 수 있는 ‘드로잉 존’이 자리한다. 세종문화회관은 이번 ‘싱크 넥스트24’에서 미술계의 블루칩인 우국원 작가와 협업, 시즌의 대표 이미지를 만들었다. 팝업스토어에선 우국원 작가의 그림을 영상으로 만날 수 있는 인터랙티브 미디어 월을 설치, 방문객들이 캐릭터를 직접 눌러볼 수 있도록 했다.
공공 공연장 최초로 서울 성수동에 팝업스토어를 연 세종문화회관 [세종문화회관 제공] |
한국 생활 7년차인 유학생 유한유(24·중국) 씨는 “화장품이나 베이커리와 같은 성수동 팝업스토어를 자주 다니다 보니 우연히 오게 됐다”며 “세종문화회관은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관심이 생겼다. 게임도 하고 드로잉도 할 수 있어 재밌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사흘 간의 팝업스토어 행사에선 ‘싱크 넥스트 24’를 미리 볼 수 있는 쇼케이스도 열렸다. 스탠드업 코미디언 김동하(17일), 싱어송라이터 겸 배우 백현진과 최유화(18일)의 무대였다. 백현진은 지난해 ‘싱크 넥스트’ 공연에서 배우 김고은과 함께 했던 무대를 선보였다. 그의 공연엔 사전 예약한 관객을 포함해 총 150명의 관객이 내레이션과 연기, 음악이 더해진 새로운 장르의 공연을 함께 했다. 백현진이 노래를 시작했을 땐, 절반 이상의 관객이 갑자기 휴대폰을 들어 영상을 촬영하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세종문화회관의 첫 성수동 나들이는 성공적이다. 비슷한 규모의 팝업스토어의 일일 최대 방문객은 약 1000여명 정도. 이번 ‘싱크 넥스트 24’ 팝업스토어는 둘째날인 토요일 하루 동안 1200명이 이곳을 찾았다. 같은 날 열린 라코스테 팝업스토어의 방문객보다 많은 수치다. 3일간 총 방문객 역시 3012명에 달했다. 시간당 150명이 방문한 셈이다. 기존 예약 방문객은 물론 성수동에서 ‘팝업 투어’에 온 방문객까지 더해져 좋은 성과를 냈다는 게 세종문화회관 측 설명이다.
공공 공연장 최초로 서울 성수동에 팝업스토어를 연 세종문화회관 [세종문화회관 제공] |
김경민 씨는 “세종문화회관은 클래시컬하고 올드한 이미지라 직접 가서 공연을 본 적이 없었는데, 예쁜 공간 구성과 공연 쇼케이스로 2030세대에게 다가서려는 노력을 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주연(32) 씨는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한 번 본 적은 있었지만 오늘 팝업을 와보니 기존의 이미지가 완전히 달라졌다”며 “참여형 팝업이라는 점이 기존 성수동 팝업과 달랐고, 생각보다 트렌디한 느낌이 들어 싱크넥스트 공연을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공공 공연장이 서울 성수동에 팝업스토어를 연 것은 세종문화회관이 처음이다. ‘팝업스토어 천국’인 성수동에서 적합한 공간을 찾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워낙 팝업스토어를 열고자 하는 수요가 많아 대관료도 천차만별. 업계 관계자는 “위치, 층수, 대관 기간에 따라 팝업스토어의 대관료가 달라지는데 1층에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이라면 하루 평균 1억원 이상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연무장길에 들어선 팝업스토어들 역시 3일 대관이면 3~5억원에 달하는 비용을 확보해야 공간을 대여할 수 있다.
세종문화회관은 복합문화공간 Y173을 운영하는 번개장터와 협업해 3일간 비용 없이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양측은 지속가능한 소비 문화 확산과 문화예술 저변 확대를 위해 서로의 공간을 활용, 광화문과 성수를 연결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기로 했다. 김여항 세종문화회관 공연DX 팀장은 “번개장터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 생각하고 문화 확장에 대한 열망이 있어 통 크게 결정했다”며 “9월 첫주 번개장터와 함께 예술가들을 테마로 한 플리마켓을 세종문화회관 공간에서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