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요괴 소재로 활용”…섬찟해
나쓰메 소세키. [글항아리] |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난 곧 죽을 거예요. (중략) 제가 죽으면 묻어주세요. 큰 진주조개로 구덩이를 파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 조각을 묘비에 놓아주세요. 그런 다음 무덤 옆에서 기다리세요. 다시 만나러 올 테니.” (‘열흘 밤의 꿈’ 중)
근대 일본을 대표하는 문호이자 일본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1867~1916)의 작품 열세 편이 ‘기담’이라는 키워드로 묶였다. 기담의 사전적 정의는 ‘이상야릇하고 재밌는 이야기’다. 38세라는 늦은 나이에 작가로 등단한 그가 알고 보면 “잘 알려지지 않은 괴기환상문학 작가”라는 게 작품집을 엮은 일본 문학평론가 히가시 마사오의 평이다.
소세키는 우리가 잘 알던 세계가 조금씩 어그러지는 순간을 은밀하게 포착해 작품에 녹여냈다. 작가가 그리는 미지의 세계에 유령이나 요괴가 불쑥 나타나진 않는다. 그런데 상상과 현실이 기묘하게 교차하는 가상의 공간에 내던져진 으스스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기담이 주는 별나고 괴상한 감정은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이 전하는 치밀한 묘사에서도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마사오는 “소세키의 데뷔작인 장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도 요괴를 좋아하는 소세키의 기질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며 “문단 동향에 일었던 괴담 열풍에 소세키가 무지했으리라 생각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마사오는 신비롭게 펼쳐지는 단편 ‘열흘 밤의 꿈’을 소세키의 대표작으로 꼽았다. 연인에게 자기가 죽고 100년을 기다리라고 한 여인, 깨달음을 얻기 위해 번민하는 사무라이, 정체 모를 아이를 버리기 위해 숲 속을 배회하는 남자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의 이야기가 아름답고도 섬찟하게 그려진다.
무엇보다 소세키의 언어를 따라가다 보면 기이한 감각이 온몸을 훅 감싼다. 영영 맞닿을 일 없는 인물과 사건에 매료돼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듯한 이 세상이 낯설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책장을 덮고 나면 이 세상은 단순 배경이 아닌 살아 있는 실체로 재구성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소세키가 부유하듯 떠다니는 꿈 속은 “깊은 전생의 인연, 깊이 가라앉은, 오래 살지 않은 너와 나(신체시 ‘물 밑의 느낌’ 중)”를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단편 ‘환청에 들리는 거문고 소리’는 풍자와 해학으로 빚어낸 인물 묘사에 가려져 비교적 알려지지 않던 소세키의 ‘요괴적 취미’가 더욱 직접적으로 구현된 작품이다. 마사오는 “소세키는 작품상의 이유로 유령 현상에 일시적인 관심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기담으로 묶인 소세키의 작품들 속에는 그간 보지 못했거나 쉽게 지나쳤던 이미지들이 도사리고 있다. 작가가 독자의 머릿속에 스케치라도 하는 듯 선명하게 구현해내는 이미지를 만났다면 분명 이전과 다른 눈길로 현실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는 작가가 꿈이나 유령을 단순히 소재로 소비하지 않고, 삶을 비유하는 일화에 여러 층위로 끄집어낸 가장 본질적인 이유일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 기담집: 기이하고 아름다운 열세 가지 이야기/나쓰메 소세키 지음·히가시 마사오 엮음·김소운 옮김/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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