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가 올해 1분기 1조9100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5분기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작년 연간 15조 원에 육박하는 적자를 낸 데서 턴어라운드에 성공한 것이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으로 고대역폭 메모리(HBM)나 DDR5(D램)와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 수요가 늘어난 덕이 컸다. 향후 전망도 나쁘지 않다. AI 반도체 핵심인 HBM 5세대 모델 ‘HBM3E 12단’ 양산을 2분기 내에 시작하겠다고 공식화했는데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가속기(학습·추론에 특화된 AI 반도체) 탑재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세대 반도체 리더십을 쥘 기회라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삼성의 실적을 이끈 것은 AI가 탑재된 스마트폰과 PC가 늘어난 데에 있다. AI 일상화로 앞으로 성능좋은 고부가가치 반도체 수요는 커질 수 밖에 없다. 그에 맞춰 HBM과 DDR5 등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으로 생산을 전환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삼성의 위상은 예전만 못하다. 시장점유율에서 점점 밀려 작년 4분기 파운드리 점유율은 11.3%로, 1위인 TSMC(61.2%)와의 격차가 작년 3분기 45.5%포인트에서 49.9%포인트로 더 벌어졌다. 반도체 매출도 지난해 인텔에 1위 자리를 내줬고, HBM 시장에선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뺏겼다. 삼성은 올해 차세대 반도체에서 생산·기술 주도권을 찾겠다는 각오다. 올해 1분기에만 반도체에 9조7000억 원을 투입하고, 연구개발(R&D) 비용으로 역대 분기 최대치인 7조8200억 원을 투자한 이유다.
반도체는 적기 신속 투자가 생명이다. 패러다임이 바뀔 때는 더하다. 각국이 대놓고 천문학적인 보조금으로 기업 투자를 격려하는 것도 그래서다. 나라의 사활이 걸린 핵심 전략 물자로 보고 모든 정책적 자원을 총동원해 속도전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주 정부까지 발벗고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지역 경제를 살리는 고마운 기업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한가하게만 보인다. 경쟁국들이 쏟아붓는 보조금은 언감생심이다. 120조 원 들여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는 SK하이닉스의 첫 공장 착공은 2025년으로 미뤄진 상태고 투자 유치한 미국 반도체 기업 R&D 부지에는 아파트를 지으려 했던 게 우리 현실이다. 니어재단이 지난달 30일 반도체 포럼을 열고, 한국이 반도체 주도권을 잡으려면 대책 마련을 서두르라고 주문한 것도 이런 답답한 상황 인식에 따른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시설 투자에 대한 직접 지원은 물론 취약한 소부장(소재·부품·장비)과 설계 등 기반 기술의 경쟁력을 높이는 일도 시급하다. 정책만 쏟아낼 게 아니라 실행력을 보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