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는 내 분신”…‘사이키델릭 팝’ 미학
스티븐 해링턴의 대형 설치 작품 ‘들어가는 길’.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만화 속에서 볼 법한, 두 발로 걷는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미술관을 차지했다. 생명체의 이름은 ‘멜로(Mello)’. 화면 속 멜로는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기도, 그림을 그리는 또 다른 멜로를 사색에 빠진 듯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다 불현듯 꽃 향기를 맡아보라며 관람객에게 권한다. 멜로는 미술관 전시장에 있는 거대한 두 기둥을 손으로 붙들고 있는 거대한 조각으로도 변신한다.
“인종이나 나이, 성별을 벗어나 누구나 자기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자유로운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미국 팝아트 작가이자 디자이너인 스티븐 해링턴(45)의 한국 첫 개인전 ‘스테이 멜로’가 열리는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작가는 “멜로는 내 분신이자 잠재의식을 반영한 존재”라며 “제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고민도 함께 대변할 수 있는 캐릭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스테이 멜로’ 전시를 관람하고 있는 모습.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
작가 스티븐 해링턴.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
커다란 검은 코, 동글동글한 눈, 네 개의 손가락까지. 실제로 멜로의 모습은 미키마우스를 떠올릴 정도로 흡사한 부분이 많은데, 이에 작가는 “어린 시절 본 디즈니 만화에서 차용한 것이 맞다”고 말했다. 어릴 적 주말 디즈니 만화를 봐 왔던 세대라면 누구라도 그의 작업을 친밀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것.
다만 꿈과 희망을 말하는 미키마우스와 달리 멜로는 기후 위기와 같은 전 지구적 차원의 문제도 거론한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 처음으로 내건 가로 10m, 세로 4.5m 규모의 초대형 회화 ‘진실의 순간’이 대표적이다. 불에 타들어가는 바닷속 해초와 숨을 쉴 수 없겠다는 듯 입을 벌린 물고기 사이에서 길을 헤매는 것 같은 멜로가 눈에 띈다. 비극적인 순간이지만 작가만의 만화적인 붓터치와 형광빛 색감이 주는 발랄함이 무거운 주제를 한결 가볍게 해준다. 작가는 “달콤 씁쓸한 이미지는 자기반성의 순간을 담는 것이기도 하다”라고 덧붙였다.
스티븐 해링턴의 대형 회화 작품 ‘진실의 순간’.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
스티븐 해링턴의 브랜드 협업 상품이 전시된 모습.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
실제로 ‘캘리포니아 사이키델릭 팝(Psychedelic Pop, 환각적인 대중 예술)’ 미학의 작가로 거론되는 해링턴의 작품들은 한결같이 밝고 뜨거운 태양 에너지로 가득하다. 특히 야자수를 모티프로 한 ‘룰루’는 캘리포니아의 풍경이 스민 캐릭터다. 작가는 “삶에 있어서 균형이라는 주제를 탐구해왔다”며 “코믹한 내용으로 제 안의 불안을 떨쳐내는 작품들을 만들었고, 이는 삶에 대한 압박감을 덜어내는 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해링턴은 나이키, 크록스, 몽클레어, 베어브릭, 이케아, 유니클로, 몰스킨은 물론이고 아모레퍼시픽 화장품 브랜드인 이니스프리와도 협업해 한정판 상품을 만들었다. 해당 제품을 전시장에도 만날 수 있다.
해링턴은 “박물관에서 보는 19세기 공예품과 지금 내가 브랜드와 협업해 만드는 상품이 다르지 않다”며 “협업으로 만들어내는 제품도 모두 제겐 ‘예술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해링턴에게 작품이란 ‘경계 없이’ 존재하되, 작가의 손을 통해서만 만들어지는 무언가다. 그는 “더 솔직하게 작품에 진정성을 담으려고 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전시는 7월 14일까지. 관람료는 성인 기준 1만6000원.
ds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