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시작하니 작품 판매는 매우 저조
경기침체·부실한 라인업…“작품 안산다”
‘단독 흥행’ 하우저앤워스 100억대 작품 2점 팔아
26일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개막한 VIP 사전 관람(프리뷰) 첫날, 아트바젤 홍콩 전시장 내부. [홍콩=이정아 기자] |
[헤럴드경제(홍콩)=이정아 기자] “작년보다 사람이 없어서 전시장을 다니기는 참 좋네요.”
올해 아트바젤 홍콩 VIP 사전 관람(프리뷰) 기간인 26~27일, 예상보다 한산한 분위기에 한국에서 온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가 전한 반어적 표현이다. 아시아 최대 아트페어로 꼽히는 아트바젤 홍콩이지만, 컬렉터들이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으면서 상대적으로 조용한 모습이었다.
올해 아트바젤 홍콩은 242개의 갤러리(한국 10개)가 참여하면서 코로나 팬데믹 이전 수준을 완전히 회복한 규모로 열렸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 이하였다. 단 한 점도 작품을 팔지 못한 갤러리가 수두룩했다.
하우저앤워스는 추상표현주의의 대표 작가인 윌리엄 드 쿠닝의 1986년작 ‘Untitled III’을 120억원에 판매했다. 올해 아트바젤 홍콩에서 최고가 판매작. [하우저앤워스] |
세계 톱급 갤러리인 하우저앤워스가 윌리엄 드 쿠닝과 필립 거스틴의 100억원 이상 작품 2점을 판매해 독보적으로 눈에 띄는 활약을 보였다. 극소수의 갤러리들이 올해 개인전을 준비 중인 주요 블루칩 작가들의 수천만원대 신작을 일부 팔았다. 이번 아트바젤 홍콩은 “명실상부한 넘버원 하우저앤워스의 단독 페스티벌이었다”는 뒷말이 나올 정도다.
아트페어 흥행의 척도를 가늠하는 사전 판매율도 작년보다 낮아졌다. 너도나도 미술품을 사들일 만큼 시장이 한껏 달아올랐을 때 경쟁적으로 판매 실적을 전했던 것과 달리, 대다수 갤러리 관계자들은 “작년보다 (판매가) 안됐다”, “전시장에 온 사람들이 작년보다 줄었다”라는 정도로 말을 아꼈다.
26일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개막한 VIP 사전 관람(프리뷰) 첫날, 아트바젤 홍콩 전시장 내부. [홍콩=이정아 기자] |
우선 세계적인 현대미술 작가들의 50억원 이상 주요 작품은 판매율이 저조했다. 레비고비 다이안 갤러리가 출품한 쿠사마 야요이의 2000년작 작품인 ‘Infinity Dots CR (1-3)’(67억원)는 판매되지 않았다. 에드워드 타일러 나헴이 내놓은 쿠사마 야요이의 2007년작 ‘Infinity-Nets by Gold [TOFWQWO]’(54억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42개 참여 갤러리 가운데 독보적인 판매율을 기록한 하우저앤워스지만, 대표작으로 내놓은 루이스 부르주아의 1950년작 조각인 ‘무제’(38억원)와 니콜라스 파티의 2019년작 파스텔화인 ‘Portrait with Beetles’(13억원) 등은 주인을 찾지 못했다.
올해 아트바젤 홍콩 대표작으로 거론되는 쿠사마 야요이의 2000년작 작품인 ‘Infinity Dots CR (1-3)’(67억원). VIP 사전 관람(프리뷰)에서 판매되지 않았다. [홍콩=이정아 기자] |
파블로 피카소, 에곤 실레부터 장 미쉘 바스키아 등 미술사 거장들의 작품도 판매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영국 런던의 헬리 나흐마드 갤러리가 출품한 파블로 피카소의 1968년작 ‘Buste de femme’(67억원)를 비롯해 에드워드 타일러 나헴 갤러리가 가져온 장 미쉘 바스키아의 1984년작 ‘Cash Crop’(67억원)과 조지 콘도의 2015년작 ‘Reclining Nude’(54억원)도 주인을 찾지 못했다. 아트바젤 홍콩에서 만난 에곤 실레의 드로잉은 그의 하이라이트 시기에 그려진 작품이 아니었고, 루치오 폰타나의 하이라이트 작업인 뚫기와 베기 연작은 소형 캔버스 작품이었다.
국내 갤러리인 PKM갤러리, 원앤제이갤러리는 작품을 단 한 점도 팔지 못했다. 특히 PKM갤러리는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인 구정아의 페인팅을 비롯해 한국 단색화의 거장인 윤형근과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유영국 작가의 작품을 내걸었지만, 시장의 반응은 썰렁했다. 정영주, 박광수 작가의 작품을 각각 2점씩 총 4점만을 판매한 학고재갤러리는 정작 주요 작품 중 하나인 백남준의 1987년작 ‘Robot (Radio Man, Joseph Beuys)’(7억원)을 판매하지 못했다.
26일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개막한 VIP 사전 관람(프리뷰) 첫날, 안젤 시앙-리 아트바젤 홍콩 디렉터가 발표하는 모습. [홍콩=이정아 기자] |
전시장에서 만난 인도네시아의 예술 후원자이자 최근 동남아시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컬렉터인 위유 와호노(Wiyu Wahono)는 “아트바젤 홍콩이 여전히 아시아를 대표하는 아트페어이지만, 이번 아트바젤 홍콩에서 구매한 작품은 단 한 점도 없다”고 말했다.
아트바젤 홍콩의 판매 실적이 부진한 원인은 복합적이다. 경기침체 여파로 컬렉터들의 투자 심리가 위축된데다 작품 라인업도 시원치 않았다는 평가다. 특히 오는 6월 스위스에서 열리는 아트바젤 바젤을 앞두고 갤러리들이 주요 작품과 신작을 아시아 컬렉터가 몰리는 홍콩에서 내놓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일부에서는 갤러리들이 아트바젤 홍콩에 ‘재고 떨이’를 하러 온 게 아니냐는 혹평을 할 정도다.
이날 전시장에서 만난 홍콩 거주 한국인 컬렉터 A씨(52)는 “이우환 등 단색화로 대표되는 한국의 블루칩 작가들의 구작이나 비인기작이 많아서 구매를 꺼리게 됐다. 리셀(2차 판매) 작품도 보여서 더욱 신중해졌다”며 “성장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특히 최근 떠오르는 작가들의 작품을 더욱 눈여겨보고 있다”고 말했다.
전반적으로 무거운 분위기 속에 그나마 선전한 갤러리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갤러리들간 양극화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 것. 세계 정상급으로 꼽히는 하우저앤워스가 최고가 작품을 2점이나 기록한 가운데 국내 갤러리인 국제갤러리, 조현화랑 등이 체면치레는 했다.
이들이 주로 판매한 작품은 올해 중화권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개인전을 여는 블루칩 작가들이 그린 신작들이었다. 가격대는 작가에 따라 5억원대 안팎 또는 수천만원대. 주로 중국 본토에 있는 재단이나 기관들이 블루칩 작가들의 신작을 사갔다.
하우저앤워스가 필립 거스틴의 1978년작 유화인 ‘The Desire’을 115억원에 판매했다. [하우저앤워스] |
올해 아트바젤 홍콩에서 가장 독보적인 성과를 낸 하우저앤워스는 추상표현주의의 대표 작가인 윌리엄 드 쿠닝의 1986년작 ‘Untitled III’을 120억원에 판매했다. 이와 함께 필립 거스틴의 1978년작 유화인 ‘The Desire’을 115억원에 판매했다. 이번 아트바젤 홍콩에서 판매된 작품들 가운데, 100억원을 넘는 유일한 최고가 2점이다.
하우저앤워스는 또 다마크 브래드포드의 2023년작 ‘May the Lord be the first one in the car...and the last out.’(47억원)을 비롯해 조지 콘도의 1998년작 ‘Escaping Figures’(11억원), 팻 스타이어의 2022년작 ‘9 x 7, D’(11억원) 등도 높은 가격에 판매했다. 이밖에도 쩡판즈, 로니혼, 에이버리 싱어, 래시드 존슨의 작품까지 총 19점을 판매했다. 특히 에드 클라크의 2009년작 ‘Homage to the Sands of Springtime’과 장엔리의 2023년작 ‘Composer’은 각각 15억원, 5억원에 중국 재단에 판매됐다.
아트바젤 홍콩 전시장 중앙에 설치된 작가 양혜규의 ‘엮는 중간 유형 – 이면의 외계 이인조’ 작품과 ‘소리 나는 우주 동아줄 - 십이각 금 반듯 엮기’. 공중에 설치된 ‘소리 나는 우주 동아줄 - 십이각 금 반듯 엮기’ 작품은 1억원에 판매됐다. [홍콩=이정아 기자] |
페이스는 아담 펜들턴의 2023년작 ‘Black Dada’(4억원)을 판매했다. 알리시아 크바데의 올해 신작인 조각 2점은 각각 1억원, 6000만원에 판매됐다. 이밖에도 데이비드 호크니, 카일리 매닝, 미카 타지마, 키키 스미스의 2023~2024년 신작 등 총 16점을 판매했다. 이중 아담 펜들턴은 오는 5월 미국 뉴욕의 페이스에서, 알리시아 크바데는 올해 말 홍콩에서 첫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 홍콩의 센트럴 중심가인 H퀸즈 빌딩에 위치한 페이스는 카일리 매닝의 첫 개인전을 26일 개막했다. 화이트큐브는 크리스틴 아이 추와 TARWUK 작가의 작품 등 10여점을 판매했다.
국내 갤러리는 1억원 미만의 블루칩 작가들의 신작 위주로 판매됐다. 국제갤러리는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 작가인 김윤신을 비롯해 이기봉, 양혜규, 강서경, 이희준, 줄리안 오피, 장-미셸 오토니엘, 다니엘 보이드 작가의 작품 총 27점을 판매했다. 조현화랑은 이배 작가의 높이 2m 크기 브론즈 조각과 300호 크기의 대형 붓질 작품 등 3점을 한 인도 컬렉터에게 판매했다.
아라리오갤러리는 이진주 작가의 작품 15점을, 리안갤러리는 오는 6월부터 중국 베이징에서 미술관 전시를 여는 이진우를 비롯해 김춘수, 김근태 등 작가의 신작 4점을 판매했다.
올해 아트바젤 홍콩에서 판매된 작가 이미래의 2022년작 ‘Look, I'm a fountain of fifth raving mad with love; tunnel sculpture II’. [홍콩=이정아 기자] |
한국계 뉴욕 갤러리인 티나킴은 현대자동차가 영국의 테이트미술관과 공동으로 여는 ‘현대 커미션 2024’의 전시 작가로 선정된 이미래 작가의 작품 3점을 출품했는데, 모두 완판했다. 리만머핀 갤러리가 출품한 이불 작가의 신작인 ‘Perdu CXCIV’는 2억5000만원에 판매됐다. 페로탱 갤러리에서 내놓은 이배 작가의 신작인 회화 연작 ‘Brushstroke’ 2점은 각각 1억원에 판매됐다.
한편 아트바젤 홍콩 측은 예상보다 저조한 판매 실적 때문인지 사전 예고와 달리 VIP 프리뷰 미술품 판매 리포트를 따로 발표하지 않았다. 아트바젤 홍콩 측 관계자는 “자발적으로 동의한 갤러리에 한해서만 판매 실적을 최종 취합해 아트바젤 홍콩 기간이 마무리되는 날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트바젤 홍콩은 27일까지 이틀간의 VIP 프리뷰를 마무리 짓고, 28~30일 일반 관람객을 맞는다.
ds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