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연구진이 메타버스 환경에서 협업 시연을 하고 있다. [KAIST 제공] |
메타버스산업 진흥법으로 알려진 가상융합산업 진흥법이 올해 8월 28일부터 시행된다. 우선허용·사후규제 원칙을 기초로 제정된 이 법은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관련 분야 세계 최초 법률이다. 우리나라는 발명의 명칭에 ‘metaverse’라는 단어가 포함된 특허를 가장 많이 출원한 나라다.
대한민국 출원인이 주요국의 특허청과 PCT를 통해 출원한 특허로 지난 3월 16일까지 등록 또는 공개된 건이 총 726건이다. 전세계 출원 건수의 46%가 넘는다. 물론 메타버스의 세부 기술들로 검색하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지만, 최소한 우리 기업들이 메타버스라는 개념에 매우 진심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분야 세계 최초 입법은 업계의 예측가능성을 높여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도록 지원하겠다는 국가적 의지로 평가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메타버스의 사용자경험, 즉 요소기술과 컨텐트가 제공하는 몰입감이 임계점을 넘어설 때 전 세계 메타버스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리라 기대한다. 생성형 AI를 융합한 기술과 서비스가 본격적인 메타버스 시대를 열 것이라 기대하는 이들도 많다.
다만 아직 해결해야 할 정책적 과제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메타버스 내 게임에 대한 규제 문제가 있다. 이미 가상융합산업 진흥법 입법과정에서 게임을 포함하는 메타버스 플랫폼은 게임산업법으로 규제할 것인지에 대한 이견이 있었다. 이 법 제2조는 메타버스를 ‘가상융합기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사회적·경제적·문화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구성한 가상융합세계라 정의한다. 또한 ‘가상융합기술’에 대해서는 이용자의 오감을 가상공간으로 확장하거나 현실공간과 혼합하여 인간과 디지털 정보 간 상호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로 정의한다.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 확장현실(XR) 등 기술이 여기 포함된다.
메타버스는 소셜 플랫폼이지만 게임의 요소도 포함하고 있다. 일반적인 메타버스와 게임인 메타버스를 구별하기도 점점 어려워진다. 2003년 린든랩(Linden Lab)이 출시한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는 메타버스의 전형인 가상세계다. 이곳은 아바타들이 상호 소통하며 사회적 관계를 맺고, 여행하고, 가상 동산, 부동산과 서비스를 창작하고 거래하며, 사업을 하고 고용되어 일하기도 한다. 화폐인 린든달러(L$)가 통용되고, 린든달러는 거래소(LindeX)를 통해 현실의 달러와 교환된다. 물론 이 세계에서 다양한 게임도 즐길 수 있다. 우리 법이 적용되는 가상세계가 이런 모습이라면 여기서 실행되는 게임에 대해서는 게임산업법이 적용되어야 할까?
반대로 본격적인 게임으로 출발했으나 다른 메타버스의 영역으로 접근해가는 사례들도 많다. 에픽게임즈의 포트나이트(Fortnite)를 생각해 보자. 이 또한 가상세계의 대표적 사례다. 포트나이트는 3인칭 슈팅게임이지만 동시에 게임 플랫폼이기도 하다. 그러나 게임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고, 래퍼인 트레비스 스캇 콘서트가 열렸고, 아리아나 그란데도도 3일간 투어 공연을 했다. 포크리(Fortnite Creative) 모드에서는 게임을 제작해 배포할 수도 있다. 여러 게임들이 게이머들 상호간 채팅이나 통화를 통한 소통 기능을 제공한다. 메타버스보다 게임이 더 큰 개념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은데, 이러한 가상세계 게임들의 확장성 때문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일반적인 메타버스와 게임인 메타버스가 서로를 향한 확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기술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사업자가 선택하는 비즈니스 모델의 문제이다.
가상융합산업 진흥법 제4조는 제1항에서 우선허용·사후규제 원칙을 천명하고, 제2항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관련 법령 및 제도를 이 원칙에 부합하도록 정비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마침 가상융합산업 진흥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 직전인 지난 1월 말 문화체육관광부는 게임산업법상 게임물관리위원회의 게임물등급분류 권한을 민간에 단계적으로 이양한다는 게임산업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메타버스 산업의 진흥과 법체계의 조화 관점에서 타당한 방향이다.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 법률이 제정되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가상융합산업 진흥법이 취지대로 메타버스 산업의 기폭제가 될 수 있도록 법령과 제도들이 정비되어 가기를 기대해 본다.
최근 메타버스와 게임산업에 대해 여러 학생들과 대화할 기회들이 있었다. 규제방식에 대해서는 현재 가상융합산업 진흥법이 제시하는 방식에 대해 대체적으로 공감했다. 한 학생은 소셜 플랫폼이라 해도 재미없는 메타버스는 Z세대와 알파세대를 붙잡아 둘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메타버스와 게임에 대한 입법정책을 논하기 위해서는 요즘 나온 게임들을 직접 해보자는 흥미로운 제안도 했다. 그러면 자신들의 의견에 훨씬 더 공감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박성필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nbgko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