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 [인아츠프로덕션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푸틴의 발레리나’로 불리는 러시아의 스타 무용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45)의 내한이 취소되자, 주한러시아대사관은 물론 현지 매체는 ‘정치적 의도’가 담긴 결정이라고 반발했다.
주한러시아대사관은 “국가와 민족 간의 상호이해와 선린 관계를 강화하는 문화예술 분야의 협력이 정치적 게임의 인질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문을 지난 16일 발표했다.
앞서 공연기획사 인아츠프로덕션은 “자하로바와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 주역 부용수들이 출연, 다음 달 17일과 19∼21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리는 ‘모댄스’가 취소됐다”며 “이번 내한 공연을 많이 기대하셨던 관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깊은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태생의 자하로바는 세계 최정상 무용수이자 스타 발레리나로,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로 알려져 논란이 적지 않았다. 그는 푸틴 대통령이 이끄는 통합러시아당 일원으로 연방의원을 지냈으며, 러시아 국가예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푸틴과 친분이 두터운 발레리 게르기예프 볼쇼이 극장 총감독과 함께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지지 서명에 동참하기도 했다.
주한우크라이나대사관은 이에 지난 4일 “침략 국가의 공연자들을 보여주는 것은 러시아의 부당한 침략을 정당화하고, 우크라이나 국민의 고통을 경시하는 것과 같다”며 공연에 반발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당초 공연기획사 측은 “4∼5년 전 기획된 공연이 코로나19로 연기돼 올해 잡힌 것”이라며 공연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논란이 커지면서 결국 공연 취소 결정을 내렸다.
공연기획사 측이 밝힌 취소 사유는 “여러 상황을 고려해 왔으나, 최근 아티스트와 관객의 안전에 대한 우려 및 예술의전당의 요청으로 합의한 것”이라고 밝혔으라, 오랜 기간 이어오고 있는 전쟁 상황 등 민감한 정서를 고려하지 않았을 수 없다.
러시아 대사관은 이에 “대한민국에 주재하고 있는 여러 제3국 외교대표들이 러시아와의 문화교류를 중단하라는 부적절한 요구와 함께 예정된 러시아 발레단의 공연을 폄하하기 위해 펼치는 비열한 캠페인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자하로바의 내한 취소에 러시아 타스 통신은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자하로바 공연이 우크라이나의 요청으로 취소됐다.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의 자하로바 공연 취소 성명에 유럽연합 대표부가 참여했다”고 보도했다. 자하로바는 리아노보스티 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공연이 주최 측이 아닌 (한국) 정부 차원, 즉 문화부 차원에서 취소된 것이라고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자하로바의 내한 무산으로 현재 러시아 주요 발레단의 한국 공연에도 비상이 걸렸다. 다음달엔 러시아를 대표하는 국립발레단으로 ‘친푸틴 예술가’인 발레리 게르기예프(67)가 총감독을 맡고 있는 볼쇼이 극장 산하 볼쇼이 발레단이 내한한다. ‘볼쇼이 발레단 갈라 콘서트 2024 in 서울’(4월 16~1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이라는 제목으로 무대에 오를 예정이나 주최 측에선 ‘모댄스’ 공연 취소 결정의 파장을 면밀히 살펴야 하는 상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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