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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 안의 공연장’에 관객들 모여든다 [클덕들의 앱]
예술의전당 韓 최초 공연영상 플랫폼 구축
조성진·게반트하우스 공연 영상 6만여회
국립극장, 올 초 공연 영상 서비스 시작
피아니스트 임윤찬이의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기념 독주회. [목 프로덕션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무대 한가운데 스타인웨이 앞에 앉은 피아니스트 임윤찬. 무릎 위에 손을 얹고 가만히 앉은 그는 차분히 숨을 고르더니 리스트의 ‘순례의 해’ 중 두 번째 해 ‘이탈리아’, 제7곡 ‘단테를 읽고:소나타 풍의 환상곡’ 연주를 시작한다. 그를 지켜보는 수십 개의 카메라는 88개의 건반과 그 앞에 앉은 스타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세세히 엿본다. 임윤찬이 미국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 타이틀을 안은 이후 처음으로 연 리사이틀 무대(2022년). 이날의 공연을 담은 예술의전당 디지털 스테이지 영상이다.

지금 공연예술계는 천변만화의 시대를 맞고 있다. 불과 4년 전, 팬데믹이 당도했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분위기다. “공연은 공연장에서 봐야 한다”는 심리적 저항감은 무너지고, ‘손 안의 공연장’은 새로운 트렌드가 됐다.

예술의전당 디지털 스테이지를 총괄하는 문성욱 영상사업부 부장은 “시작 전엔 조심스러웠지만, 막상 시작하니 진입장벽은 낮아지고 관객들의 마음이 더 열려있다는 것을 체감했다”고 말했다.

‘디지털 스테이지’ 오픈하자 4만 여명 가입…조성진의 힘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파워는 온라인에서도 대단했다. 지난해 11월 조성진이 지휘자 안드리스 넬손스와 만나 협연한 영상은 국내 공공기관 최초의 공연 영상 플랫폼 ‘디지털 스테이지’에 4만 여명을 불러 모았다.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지 한 달만의 성과다. 해당 콘텐츠는 조회수 역시 6만 건을 넘어섰다. 디지털 스테이지 관계자는 “조성진과 게반트하우스의 영상(조회 수)이 가입자 숫자를 뛰어넘는다”며 “디지털 스테이지의 초반 가입자가 늘어난 것은 조성진 덕분”이라며 웃었다.

클래식은 물론 연극, 발레에 이르기까지 전 장르를 아우르는 예술의전당 ‘디지털 스테이지’는 현재 국내 공연계에서 주목받는 공연 플랫폼이다. 조성진에 이어 임윤찬의 리사이틀 영상까지 공개되자 매주 많게는 5000여명 가량 증가할 정도로 회원 증가 속도가 빠르다. 현재 가입자는 5만여 명. 영상은 정경화-케빈 케너의 듀오 콘서트, 피아니스트 버킹구르 올라푸손, 배우 박호산의 연극 ‘오셀로’ 등 60여 개가 공개됐다. 조회수가 가장 높은 영상은 조성진과 게반트하우스이고, 그 뒤로 ‘오셀로’, ‘임윤찬 피아노 리사이틀’이 올랐다.

예술의전당이 이 플랫폼을 구상한 것은 지난 2020년 코로나 팬데믹 당시였다. 예술의전당은 이미 2013년 공연 영상물 제작 브랜드인 ‘싹 온 스크린(SAC(Seoul Arts Center) On Screen)’을 통해 선도적으로 공연 영상 콘텐츠를 제작해왔다.

[예술의전당 제공]

그간 공연 영상은 찬밥 신세나 다름 없었다. 공연계 관계자들은 대부분 영상을 공연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감염병의 기간이 길어지며 ‘공연 영상’은 셧다운된 공연계가 긴 터널을 헤쳐나가고, 지속가능한 무대를 올릴 수 있는 구원투수가 됐다.

문 부장은 “당시 공연 영상 플랫폼을 만든 국내 사례가 없어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사업이었다”며 “방향 설정을 공공성에 두고 라이브 공연과는 별개의 콘텐츠로 인식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고 했다.

가장 달라진 것은 업계 관계자들의 시선이다. 문 부장은 “이전엔 공연 영상 촬영에 부정적인 시각이나 조심스러워하는 입장을 보였던 클래식, 연극 관계자들도 이젠 영상 촬영에 익숙해하고 영상을 위한 촬영에 맞춰 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립극장에서도 지난 1월 18일 공연 영상 플랫폼 ‘가장 가까운 국립극장’을 열었다. 지난해 3월 개발에 착수, 철저한 준비 기간을 거쳐 선보인 공간이다. 국립극장 산하 단체인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영상이 총 9건 공개됐다. 현재 회원수는 1156명, 영상의 총 조회수는 16만여회에 달한다. 1위 작품은 국립창극단 ‘귀토’(5만 6098회), 2위는 ‘춘향’(4만 5705회), 3위는 ‘나무, 물고기, 달’(3만 6793회)이다.

우다슬 국립극장 책임PD는 “시공간의 제약이 없는 예술 관람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문화 소외계층의 향유 기회를 확대하는 데 방점을 뒀다”며 “방송사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이고 자체적인 유통망을 확보해 전통예술의 국내외 관객 접근성을 확대하고 진입장벽을 완화하는데 의미를 두고 진행했다”고 말했다.

[예술의전당 제공]
10대 내외 카메라로 장르별 맞춤제작…‘콘텐츠의 질’이 핵심

라이브로 진행되는 무대 예술을 네모난 화면에 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초창기 공연 영상이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았던 것은 ‘촬영 수준’의 문제이기도 했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당시 공연계 사람들은 영상 문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영상 업계 사람들은 공연 문법을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영상을 제작하니 매력적인 공연 영상이 나오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여전히 공연 영상을 제작하는 전문 인력은 소수다. 그럼에도 지난 11년간 영상화 사업을 꾸준히 이어온 예술의전당의 도전과 시행착오는 공연 영상의 수준을 높였다. 이는 관객들이 공연 영상 콘텐츠에 대한 감정적 허들을 낮추는 계기가 됐다.

한 편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두 기관의 노력은 상당하다. 각기 다른 장르를 아우르는 플랫폼을 운영하는 만큼 분야에 따라 촬영 기법, 카메라 대수, 편집 방향이 달라진다. 공연 영상 제작 기간은 장르마다 다르나 보통 3~12개월이 걸린다. 국립극장의 경우 기획 회의와 공연 분석 기간만 2~3개월을 거치고 촬영은 보통 하루, 길게는 3~4일간 진행한다. 촬영을 마치면 컷 편집과 사운드 편집, 색보정과 CG, 자막작업, 음향시사, 연출가와 제작진의 의견(수정사항) 취합, 편집 시사 등의 과정을 거친다.

베를린 필하모닉과 조성진 [빈체로 제공]

장르별로 살펴보면, 클래식 공연 영상의 경우 보통 7~9대의 카메라가 투입, 공연장에서는 보기 힘든 각도의 연주 모습을 담아낸다. 건반 위로 손이 닿을 때마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연주자의 표정과 얼굴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 현란하게 움직이는 손가락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커튼콜 때 무대 뒤에 들어가 물을 마시는 장면까지 보여주니 재미가 쏠쏠하다.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악보를 따라가는 것이다. 문 부장은 “악보를 온전히 이해한 후 해당 부분의 연주자의 모습, 연주자와 지휘자가 교감하는 모습 등을 잡아낸다”며 “기술적인 요소와 음악적인 요소가 완전히 어우러져야 좋은 클래식 공연 영상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유로 클래식 공연 영상은 무엇보다 ‘훌륭한 교과서’가 된다. 류태형 음악평론가는 “실황을 접한 이후라도 현장에서 보지 못한 장면, 연주자들의 움직임, 각 세션에서 어떤 연주가 나오는지 카메라 워킹을 통해 강조되니 음악 감상에 훨씬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KBS교향악단의 이원석 팀파니 수석 역시 “클래식 음악은 영상으로 접할 때 효과가 더 좋다”며 “특히 오케스트라의 경우 서로 교감하는 부분을 잘 잡아내고, 객석에서 볼 수 없는 구도의 영상을 담아낼 경우 정적인 순간에 애니메이션 효과를 불어넣는다”고 말했다.

국립극장에서 촬영하는 공연 영상엔 한 회차당 4K 카메라 9~12대를 설치한다. 이서정 국립극장 공연기획팀 PD는 “간혹 1회차 촬영으로 끝나지 않고 풀샷이나 부분 촬영이 추가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때는 2~4대씩 더 투입해 촬영한다”고 설명했다.

각 장르마다 맞춤형 제작 방식은 기본이다. 이 PD는 “보이는 것이 중요한 공연(창극, 무용 장르)인지, 듣는 것이 중요한 공연(국악관현악, 음악극 장르)인지에 따라 촬영 방식이 다르다”며 “보이는 것이 중요한 공연이라면 인물별, 공연의 흐름별로 다른 앵글과 구도로 촬영을 하고 지미집, 레일 촬영, 추가 근접 촬영 등을 해야 하기에 보통 무관중 촬영으로 진행한다”고 했다. 국립무용단의 ‘홀춤Ⅲ : 홀춤과 겹춤’에선 부감 촬영을 강조했고, 창극 ‘패왕별희’에선 공연 스크린에서 투사된 영상소스를 그대로 삽입해 영상화했다. 영화처럼 입체감 있게 감상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 때문이다.

[예술의전당 제공]

듣는 것이 중요한 공연에선 “관객의 박수 소리, 추임새 같은 반응 소리, 현장성이 강조된 음악 등을 담아야 해 유관중 촬영으로 진행한다”는 것이 이 PD의 설명이다.

연극 공연은 시청자들의 정서를 고려해 기존 무대 분장을 지우고 보다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으려 한다. 예술의전당 디지털 스테이지를 통해 공개된 연극 ‘오셀로’가 이러한 시도로 만든 대표 영상이다. 문 부장은 “카메라가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걸을 감안해 분장, 의상 등에서 이질감이 없도록 가볍게 한 뒤 촬영했다”고 말했다.

잘 만든 영상은 그것 자체로 한국 공연의 역사가 된다. 업계 관계자들은 공연 영상은 무대와 차별화된 색다른 콘텐츠의 발굴이라는 의의 외에도 ‘기록의 의미’도 크다고 말한다.

우다슬 책임PD는 “공연 영상 콘텐츠는 일회성, 현장성의 성격이 강한 공연 작품의 기록과 아카이빙 역할도 크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류태형 평론가 역시 “국내의 경우 공연 영상이 많이 남아있지 않아 보다 편리해진 세상에선 아카이빙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며 “공연 영상이 기록을 통해 역사적 흐름을 남길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1년 후 유료화…창작자-관객 잇는 긍정적 생태계 만들 것

예술의전당 ‘디지털 스테이지’와 국립극장의 ‘가장 가까운 국립극장’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의 구축으로 ‘공연 영상화’는 완전히 새 국면을 맞았다. 자체 플랫폼이 없던 시절 방송사, 영화관, OTT에 의존해 송출했던 공연 영상이 국공립 기관의 새로운 먹거리가 된 것이다.

두 플랫폼은 1년간 무료로 공개한 뒤, 향후 ‘유료화’를 추진한다. 이미 해외의 공연 영상 플랫폼은 모두 유료로만 이용할 수 있다. 실제로 베를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디지털 플랫폼은 1주일에 1만3000원, 한 달에 2만5000원을 내야 영상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두 공연장은 정액제에 대해선 고심이 많다. 국립극장 측은 “수익 창출보다 공공재적 역할 수행을 목표로 시작된 만큼 유료화에 대해서는 시범운영기간 동안 신중하게 검토할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예술의전당 역시 마찬가지다. 문 부장은 “국내 첫 사업이기도 하고 공공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 1년간 무료 운영을 결정했다”며 “하지만 예술가와 창작가들의 작품이 무료로 소비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수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최소한의 선을 그어주는 의미 정도의 유료화, 공공성을 해치지 않는 선의 유료화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술의전당 제공]

업계에선 공연 영상에 대한 관객들의 요구도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한다. 우 책임PD는 “K-팝 콘서트처럼 추가 요금을 받고 판매하는 멀티뷰 등을 서비스해달라는 문의도 있고, 중국인 관객이 서비스 오픈 첫날부터 회원가입 문의를 할 정도로 해외의 관심도 뜨겁다”며 “추후 다국어 자막도 도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예술의전당 디지털 스테이지는 도이치 그라모폰과의 협업을 통해 꾸준히 클래식 공연 영상을 제공하고 발레, 연극 등 전 장르를 아우르는 종합 플랫폼으로 콘텐츠를 쌓아갈 계획이다. 현재는 국내 이용자 기준으로 개발됐으나 점차 고도화해 해외 고객까지 가입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구축해나갈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자체 기획 공연을 넘어 공연계 전체를 아우르는 영상 플랫폼으로의 확장도 구상 중이다.

문 부장은 “엔데믹 시대에 영상을 제작하면 사람들이 공연장에 오겠냐는 우려가 컸다. 막상 시작되니 공연과 영상은 서로 갉아먹는 존재가 아닌 병존하는 개별의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공연 영상을 접한 사람들이 더 많이 공연장으로 불러오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또 “플랫폼이 창작자와 관객 사이의 긍정적인 생태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운영해 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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