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대한 음악·친절한 설명·큐레이션 강점
[애플뮤직클래시컬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완벽주의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현대적 베토벤의 완성자’ 빌헬름 켐프, ‘베토벤 스페셜리스트’ 루돌프 부흐빈더….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투톱 피아니스트’ 조성진·임윤찬이 지난해 각기 다른 악단과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국내 최대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 멜론에서 이 곡을 검색하자, 대가들의 앨범이 등장한다. 고민할 필요도 없다. 첫 줄에 뜬 지메르만을 터치하니 레너드 번스타인(1918~1990)이 지휘한 빈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앨범(1993년 도이치 그라모폰 발매)으로 안내한다. 대중음악 기반의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클래식을 듣는다면, 누구든 쉽게 ‘클래식 거장의 음반 수집가’가 된다.
클래식 덕후(클덕)들에게 신세계가 열렸다. 가장 보수적이고 까다로운 귀를 가졌다는 클래식 음악계에도 ‘스트리밍 시대’가 찾아오면서다. 지난 1월 애플 뮤직이 클래식 특화 스트리밍 서비스인 애플 뮤직 클래시컬(Apple Music Classical)을 출시하며, ‘클덕’들의 관심이 새삼 음악 스트리밍 앱으로 향했다.
클래식 음악계엔 여전히 음반을 선호하는 청취자들이 많지만, 서서히 스트리밍 앱 쪽으로도 눈을 돌리는 추세다. 앱의 장점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허명현 음악평론가는 “사용자 입장에서 물리적인 저장공간이 필요 없고, 한 자리에 앉아서 전 세계에서 발매된 대부분의 음악을 들어볼 수 있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라며 “스트리밍 서비스는 구독의 시대에 자연스럽게 클래식 음악도 발맞춰 가는 것을 보여주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한 달 무료’라는 최장점으로 호기심 많은 음악 애호가들의 어깨를 두드린 애플 뮤직 클래시컬을 비롯해 이다지오, 스포티파이 등 현재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이 쓰고 있는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세 가지를 비교해봤다. 사용 기간은 애플 뮤직 클래시컬이 출시된 날부터 15일까지 약 80일. 유료 가입 ‘유지’와 ‘해지’ 사이에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때다. 다만 현재 플랫폼 업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유튜브 뮤직은 제외했다.
[애플뮤직클래시컬 제공] |
500만개 이상의 곡으로 구성된 카탈로그, 40만 여개의 악장, 2만 여명의 작곡가….
이쯤하면 ‘물량 공세’라 할만 하다. 이것이 바로 클래식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의 공룡 ‘애플 뮤직 클래시컬’의 스펙이다.
애플 뮤직은 기존의 스트리밍 앱에 더해 클래식 전용 앱까지 선보였다. 사실 국내에선 1등 플랫폼 멜론과 괴물 플랫폼 유튜브 뮤직에 밀리지만,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정교한 큐레이션과 세련된 디자인을 보여준 음악 서비스로서 애플 뮤직은 그 위상이 남다르다.
이미 업계에선 애플 뮤직을 쓰고 있는 음악가, 관계자들이 적지 않다. 이들 중엔 대체로 ‘음반’으로 음악을 듣는 방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피아니스트 김도현, KBS교향악단 이원석 수석, 음악평론가 허명현, 국립심포니오케스트 홍보팀 임원빈 등이 애플뮤직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들은 애플 뮤직의 장점으로 ▷압도적인 보유곡 ▷구체적인 음악 설명 ▷탁월한 음질 등을 꼽았다.
기존 애플뮤직으로도 ‘커피와 함께 듣는 음악’, ‘느긋한 분위기의 클래식’, ‘의욕을 북돋우는 클래식‘ 등 수천 개의 클래식 플레이리스트와 최신 발매 곡, 단독 공개 앨범, 아티스트 선곡 등을 만날 수 있다. 그럼에도 애플 뮤직이 ‘클래식 전용 앱’을 출시한 것은 촘촘한 맞춤형 서비스를 위해서다. 한국에 전용 앱 론칭이 늦어진 것도 정교한 번역과 한국적 특성에 맞는 서비스 개발에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덕분에 애플 뮤직 클래시컬은 ‘한국 특화 앱’이라고 할 만큼 한국인 사용자에게 친절하다. 이 곳에선 손열음·조성진·임윤찬은 물론 작곡가 정재일이 직접 만든 플레이리스트를 만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가의 취향을 마주하고, 추천 이유를 들으며 그들과 한 걸음 더 가까워진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임윤찬은 ‘피아노의 황금기’, 조성진은 ‘피아노 아카이브’, 손열음은 ‘메노 모소’라는 플레이리스트를 짰다. 특히 ‘앞부분의 빠르기보다 느리게 연주하라’는 의미의 메노 모소를 제목으로 단 손열음의 플레이리스트는 여성 피아니스트의 연주로만 채워졌다.
뿐만 아니라 국내 주요 클래식 공연장과 악단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날 수 있다. 예술의전당 롯데콘서트홀, 통영국제음악당 등이 엄선한 음악을 이곳에서 들을 수 있다. “우리만의 색깔과 개성, 주요 공연 일정”이 각 공연장의 음악 선정 배경이다.
모든 음악가와 곡, 앨범 검색이 한국어로 가능하다. 외래어 표기법에 일치하지 않는 음악가 이름도 적지 않지만, 한글 검색은 상당한 장점이다. 애플이 앱을 론칭하면서 ‘현지화’에 심혈을 기울인 결과다. 메인 화면은 물론 추천 음반, 곡 등도 한국인이나 범아시아 음악가를 먼저 노출한다. 이는 도리어 음악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애플 뮤직과 클래시컬 앱의 또 다른 장점은 ‘친절한 설명’이다. 각각의 앨범마다 상세하고 구체적인 설명이 곁들여져 이른바 ‘클린이’(클래식 어린이)들에게 안성맞춤이다. 또 고해상도 무손실 음원 제공 및 돌비 애트모스 기술을 적용한 ‘공간 음향’으로 현재 출시된 음악 스트리밍 앱 중 최강 품질을 자랑한다.
다만 클래시컬 앱의 별도 운영이 애플의 의도처럼 장점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진 않다. 애플 뮤직에서도 클래식 음악을 폭넓게 들을 수 있는 상황에서 ‘지역화’라는 강점이 얼마나 오랜 시간 차별화 요소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든다.
클래식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 이다지오 |
‘클래식 음악의 집’ 이다지오(IDAZIO) 앱 안엔 클래식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 오직 클래식 음악을 위한, 클래식 음악만의 공간이다. 음악 청취는 물론, 관련 공연 관람과 음악가들의 기사까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현재 ‘잡지’ 카테고리에 들어가면 세계적인 한국인 작곡가 진은숙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이 앱이 세상에 나온 건 지난 2015년. 5년 차인 2019년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발명품’에 이름을 올렸다. ‘클래식 특화’ 앱 답게 클래식 음악 이용자와 음악가를 위한 서비스로 설계됐다. 보통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가 대중음악에 맞춰 제공되는 것과 달리 이다지오는 클래식 음악가를 위한 사용 환경을 별도로 만든 것이다.
메인 화면을 들어가면 기존 음악 스티리밍 서비스와 달리 ‘깔끔한 배치’가 눈에 띈다. ‘지금 듣기’ 카테고리를 누르면 ▷추천 새앨범 ▷추천 플레이리스트 ▷트렌딩 앨범 ▷평론가 극찬 앨범 등은 물론 연주자, 레이블, 오케스트라의 플레이리스트까지 만날 수 있다. 이 플레이리스트엔 세계 최정상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 피아니스트 버킹구르 올라프손, 랑랑, 지휘자 야닉 네제 세겐 등 다양하다.
작곡가, 지휘자, 솔리스트, 앙상블, 장르, 시대 등의 카테고리를 따로 설정, 검색을 수월하게 만든 것도 장점이다. 클래식 카테고리를 찾기 위해 장르 항목에서 하염없이 손가락을 움직여야 하는 기존 스트리밍 서비스와의 차별적인 부분이다.
이 앱에서 가장 매력적인 카테고리는 매달 정해진 ‘OOO의 달’을 맞아 다양한 음악을 정리한 플레이리스트다. 지난 달은 ‘흑인 역사 기념의 달’이었고, 이번 달은 ‘여성 역사의 달’이다. 이 카테고리를 통해 그동안 잘 몰랐던 숨은 여성 음악가, 흑인 음악가를 만날 수 있다.
검색도 다 귀찮은 어떤 날엔 내 기분따라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카테고리를 만든 것도 특징이다. 메인 화면 하단 ‘기분’을 터치하면 ‘무드 선택하기’를 통해 다양한 기분을 선택할 수 있다. ▷긍정적인 ▷행복한 ▷즐거운 ▷찬연한 ▷축제 ▷열정적인 ▷비극 ▷슬픈 ▷우울한 ▷평화로운 등 총 15개의 감정에 어울리는 곡들이 무한 재생된다. ‘음악의 보고’처럼 이 카테고리에선 생전 처음 듣는 노래와 음악가의 곡을 들을 수 있어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기회가 된다.
단점은 한국 맞춤형 서비스가 없다는 점이다. 모든 검색은 영어가 필수. 한국 음악가들의 앨범도 많지 않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을 검색하면 그가 참여하고 발매한 음반이 7장 밖에 나오지 않는다. 애플뮤직에선 14장이 나오는 점을 고려하면 절반에 불과하다.
대신 앨범으로 발매되지 않았지만 모든 레코딩을 음원으로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은 있다.
클래식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 화면 캡처 |
명실상부 세계 최대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이다. 스웨덴에서 시작된 이 플랫폼은 등장과 동시에 전 세계 대중음악 생태계를 뒤바꾼 괴물이다. 무려 8000만 개 이상의 음악을 보유하고 있고, 지금도 새로운 앨범과 아티스트의 음악이 계속 올라오고 있는 플랫폼이다.
스포티파이는 클래식 ‘특화’ 앱은 아니다. 대중음악에 관해서는 저 멀리 아프리카 대륙의 이국적인 리듬에 빠지고자 할 때 검색 한 번으로 신비로운 음악을 찾을 수 있고, K-팝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플랫폼이지만, 클래식 음악은 뭘 해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우선 클래식 카테고리를 찾는 것부터가 어렵다. 스포티파이 메인 화면 하단 중앙에 위치한 동그라미(검색 표시)를 클릭한 뒤 하염없이 내려가야 클래식 장르를 겨우 만날 수 있다. 클래식 카테고리로 들어가고 나서도 탐탁지 않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곳마저 클래식 음악만을 모아둔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때문에 ‘클래식 음악’을 위주로 듣는 청취자라면 스포티파이의 이러한 점은 엄청난 단점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불편함은 앱의 이탈로 이어진다. 실제로 피아니스트 김도현은 “스포티파이를 쓰다 애플뮤직으로 갈아탔다”며 “사용의 불편함과 다양성의 부족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장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완벽한 ‘개인화 서비스’는 이탈하려던 사용자의 발길을 붙잡는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팔로우하거나 좋아하는 곡을 누르면 순식간에 추천 플레이리스트가 완성된다. 하지만 정교함에는 의문이다. 추천 음악만 클릭해도 연주자에 대한 설명이 없는 음악이나 AI(인공지능)이 분석한 청취자 취향 맞춤 곡을 들려주나, 실제 내 취향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스포티파이의 최대 장점이라면 특정 음악가의 곡을 들을 때 이미 확보한 영상을 함께 보여줘 ‘보고 듣는 재미’가 있는 점이다. 또 아티스트의 연주 일정과 해당 곡에 대한 월별 청취자 수, 청취 횟수 등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어 검색이 가능하고, 비슷하게 이름만 맞추면 원하는 곡으로 기막히게 안내해주는 것도 장점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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