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집단사퇴에 따른 의료 공백이 4주째 접어들고 있다. 전공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전문의들은 한계에 내몰려 이번 주가 고비라고 한다. 정부는 현장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11일부터 의료 현장 20곳에 군의관과 공중보건의 158명을 투입했다. 마취과 의사가 없어 수술을 못하고 암환자가 항암치료를 못받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대 교수들까지 사표를 내고 수련병원 교수·전문의들이 낸 ‘의료 붕괴 시국선언’에 의사 5000명이 서명하는 등 사태는 악화일로다. 양쪽 모두 대화에 나서자고 하지만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어 답답할 따름이다.
의사들의 ‘시국선언’은 더 이상 사태를 방치해선 안된다는 충정에서 나왔을 것이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현재 정부의 일방적인 의료정책 추진은 대한민국의 우수한 의료체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며 “사태가 종식되지 않을 경우 전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태가 장기화할수록 암 수술 등 중증 응급환자 피해가 커질 것이라는 경고다. 의사가 응급실과 분만실을 비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잘못된 사태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도 정부의 책임있는 자세는 아니다.
일단 이해당사자들이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정부는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고 하면서도 전공의 면허정지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누구라도 이런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선뜻 대화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의사들을 의료 개혁의 파트너로 여기고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는 게 성숙된 자세다. 의사들이 논의해서 단일안을 갖고 오라는 식으로는 안된다. 중재자 역할이 중요한 의대 교수들도 전공의를 보호할 책임이 있지만 의사로서의 본분을 지키도록 먼저 요구하고 대화의 자리에 앉게 해야 한다.
의사들도 증원반대만 요구해선 국민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의대증원이 불가피하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전공의들의 살인적인 노동과 비중을 정상화하고 필수 지역 의사를 확보하는 데도 증원은 불가피하다. 합리적인 논거에 따른 수치를 놓고 서로 접점을 찾아야 한다. 의사 수 부족과 교육현장의 질을 담보할 수 있는 적정선을 찾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국민 누구나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게 하자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의대 증원으로 의료서비스 질이 나빠졌다는 얘기는 어디에도 없다. 이 와중에 그동안 제 역할을 못한 지역 중형·종합병원들이 의료 공백 부담을 줄이고 있는 것은 의료 개혁의 긍정적 신호다. 무조건 큰 병원에 가야 한다는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고질적인 의료계 파행은 한 둘이 아니다. 수십년 동안 의료계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대 증원은 그 시작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