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가 소멸 위기감”, “한국은 소멸하나”, “한국군의 새로운 적, 인구추계” 섬뜩한 표현들이다. 외신이 전하는 한국 인구문제에 대한 지적들이다. 물론 범세계적 추세이고 이미 다뤄온 주제이며 정부 차원의 대책들이 나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우려는 가시지 않는다.
인구는 전통적으로 국력의 기초이며 강한 국력은 튼튼한 국가안보를 위해 필수적이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비교적 정체성이 뚜렷한 근대 국민국가 체제가 형성됐다.
파리드 자카리아는 ‘자유의 미래’에서 동 조약으로 “미래는 국가에 속하게 되었다”고 했다. 특정 국가의 힘이 미래의 생존과 번영을 좌우하는 시대로의 진입이었다는 것이다. 이후 특정 국가의 국력 평가와 배양은 국가안보를 둘러싼 국제정치무대의 이합과 집산에 있어서 치명적이며 매우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됐다.
국력이 무엇이고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다양하게 이뤄져 왔다. 국력의 구성 요소 및 측정 방법에 대한 개발,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 개념의 등장 등이 다른 표현이다. 시대에 따라 천연자원과 국방력, 경제력, 국민 사기, 지도력, 외교, 과학기술 등 다양한 지표가 제시되지만 여전히 인구가 국가안보를 위한 가장 기초 요소 중 하나임에는 이견이 없다.
194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 학자들은 국가안보에 미치는 인구의 영향으로서 총인구 규모를 국력 구성의 함수라는 관점에서 보았다. 한 국가의 국력 수준과 영향력을 결정하는 총 역량을 산출하는 하나의 독립변수라는 것이다.
1980~90년에는 인구통계학적 요인과 국가안보의 관계가 주목받았다.
첫 번째 관심은 인구 압력과 환경 악화, 대량 이주, 자원 고갈, 난민, 민족 갈등, 초민족주의, 도시화 등과의 상호작용이 무력 분쟁 발생의 요인으로 작용하는 현실이었다. 인구변화가 정치적 불안정과 국가 간 무력분쟁 등 국내외 안보불안의 촉매제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접근은 미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안보공동체의 시각과 안보전략 마련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인구변화가 국제질서 및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내외 갈등과 분쟁 발생 지역, 소위 ‘위험지역’을 예측하는 지표였다.
두 번째 관심은 인구와 국력 관계를 인적 자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국가노동력의 기술 수준, 경제활동인구 규모, 노령화 등 보다 내밀한 인구 구조와 구성적 차이를 국제무대뿐만 아니라 국가의 번영과 성장, 국가안보를 위한 주요 동인으로 바라본다.
많은 지표들이 동아시아 국가들의 기적에 가까운 경제성장과 국제적 부상에 대한 설명 자료로 사용됐다. 그들은 전통적 군사안보를 뛰어넘는 새로운 글로벌 국력 방정식으로 주장했다.
학구적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국가안보에 미치는 인구의 영향력은 다차원적이며 상호 연결돼 있다.
안보이론 확장을 주창한 코펜하겐 학파나 신흥안보 등의 논의를 따라 인구의 영향을 경제안보, 정치안보, 사회안보, 군사안보 측면에서 살펴보자.
경제안보는 국가의 권력과 부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국가자원, 재원 및 시장에 충분히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국제 인구이동, 다문화 인구 구성, 지역적 인구 구성의 차이와 이로 인한 지역적 경제 격차 등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이미 진행형이다. 관리되지 못할 경우 경제발전과 성장을 저해하는 경제안보 위기를 초래함은 당연하다.
사회안보는 변화하는 환경과 위협에서 한 사회의 본질적 속성이라고 할 수 있는 정체성을 보호하는 것이다. 정체성 변화 자체가 위협은 아니다.
인구는 종교, 언어, 인종 등 다른 정체성을 가진 집단들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사회안보 위협이란 집단 내 공유된 정체성을 깨뜨리려 하거나 새로운 정체성이 형성되는 것을 방해하는 현상 또는 행위이다. 우리 사회의 인구 구성 변화로 기존 정체성 해체와 새로운 정체성 확립 문제는 사회안보 차원에서 이론의 여지가 없다.
정치안보는 정치적 구성 단위의 조직적 안정성에 관한 것이다.
국제적인 차원에서 특정 국가의 인구가 증가하면 국제사회에서 정치적 영향력이 증가한다. 국내적으로도 인구 구성이 다양해지면 다양성 있는 의견과 관점을 고려하는 정치적 대표성이 요구된다. 다양한 인구 그룹의 요구사항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정치적 불만과 갈등이 증가해 결국 국가안보를 위협하게 된다.
군사안보는 외부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국가의 생존을 보전하기 위한 군사력 보유이다. 군사안보 위협이란 충분한 군사력 건설과 운용에 심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상태를 말한다. 가장 직관적으로 군사력 건설의 인적 요소인 병력 구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설 명절 기간 고향 사람들의 주요 화제는 정치 현안을 제외하면 단연 “사람이 없다”는 말이었다. 0.7명 수준의 합계출산율 등 통계를 들먹일 것도 없다. 당장 생계를 꾸리는 우리 주변 서민들의 고민거리이자 위협인식이다.
인구 문제가 국가안보 차원에서 다뤄야 할 사안이라는 점을 다시 강조해야겠다. 정부와 정치권의 노력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내용과 성과가 아쉽다. 사회구성원들이 문제의식을 공유해야함은 물론 정책의 우선순위, 초당파적 협력 등에 대한 고민이 더욱 필요하다.
안석기 한국국방연구원 국방인력연구센터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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