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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츠베덴의 서울시향, 김선욱의 경기필, 안정기 접어든 국심과 KBS향…韓악단, 올해 옥석 가린다 [2024 전망]
올해 첫 출항하는 츠베덴·김선욱
3년차 접어든 라일란트·잉키넨
“진정한 오케스트라 강자 올해 가려져”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 [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진짜 승부는 이제부터다. 엔데믹과 맞물려 억눌린 수요와 공급이 폭발했던 2023년을 보낸 국내 클래식 음악계는 올해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사실 지난해 클래식 음악계는 사상 유례없는 시기를 보냈다. 팬데믹으로 취소와 연기가 반복됐던 내한 공연이 몰리며 세계 최정상 악단의 연주회가 일 년 내내 이어졌다. 특히 세계 3대 오케스트라로 꼽히는 베를린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로열콘세르트헤바우(RCO)의 공연이 몇 주 사이에 이어진 것은 전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흔치 않은 일이다.

류태형 음악평론가는 “지난해는 엔데믹과 함께 그동안 움츠렸던 욕구들이 튀어나와 호황을 이룬 특수 상황”이라며 “올해 이런 양상이 계속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올해 클래식 음악계에서 주목해야 할 곳은 국내 4대 악단이다. 마침내 정식 취임하는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의 서울시립교향악단을 필두로 안정기에 접어든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KBS교향악단,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에서 새싹 지휘자로 도약하는 김선욱의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출격 준비를 마쳤다.

류 평론가는 “얍 판 츠베덴 감독이 취임하는 서울시향의 탄탄한 라인업과 달라진 연주력이 국내 오케스트라의 기준이 되는 해가 될 것”이라며 “서울시향과 함께 다른 오케스트라들도 옥석을 가리는 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적 수준’의 악단으로…마침내 츠베덴호 출항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전 세계를 호령한 얍 판 츠베덴(64) 음악감독이 마침내 서울시향에서 임기를 시작한다. 츠베덴 호는 앞으로 5년간 ‘세계적인 수준의 악단’을 목표로 쉼없이 달려나간다.

사실 몸풀기는 끝났다. 츠베덴 음악감독은 지난해 낙상사고로 자리를 비운 오스모 벤스케 전 서울시향 음악감독 대신 ‘세계에서 가장 몸값 비싼 대타 지휘자’로서 한국 관객과 수차례 만났다. ‘오케스트라 조련사’인 츠베덴 감독과 함께 탄력있고 웅장한 소리를 입으며 기초 체력을 다진 서울시향의 올 한 해는 그 어느 때보다 기대가 높다.

우선 새 시즌 라인업이 매우 화려하다. 세계적인 명장 지휘자들이 줄줄이 시향을 이끌고, 스타 협연자들이 함께 하니 세계 어느 최정상 악단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다.

세계 최고의 악단들을 이끌었고, 미국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지휘자로 꼽히는 현 뉴욕필하모닉의 수장 판즈베던이 차기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이 “서울시향이 세계 최고 수준의 악단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객원 지휘자로 프랑스 툴루즈 카피톨 국립관현악단과 러시아 볼쇼이극장 음악감독을 역임한 투간 소키예프(8월), 김은선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음악감독(7월), 바실리 페트렌코 영국 로열 필하모닉 상임 지휘자(6월), 유카페카 사라스테 핀란드 헬싱키 필하모닉 수석지휘자(4월), 영국 고음악의 거장 리처드 이가(9월) 등이 서울시향을 매만진다.

세계적인 음악가들도 협연을 통해 츠베덴의 취임 첫해에 힘을 싣는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 역대 최연소 우승 이후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아이돌로 거듭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츠베덴 취임 연주회에 함께한다. 츠베덴은 임윤찬에 대해 “이미 미국, 유럽에서도 사랑을 받는 ‘빅스타’다. 미래에 위대한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레이 첸, 토머스 햄프슨, 아우구스틴 하델리히 등도 함께 한다.

서울시향의 2024년 시즌은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는 마에스트라 성시연과 ‘인모니니’, ‘인벨리우스’라는 별칭을 지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의 협연(1월 5일)으로 출발한다. 이후 츠베덴 감독의 취임 연주회가 기다리고 있고, 올 한 해 동안 말러 1번으로 시작해 베토벤 5번, 브람스 2번, 모차르트 40번, 브루크너 7번, 쇼스타코비치 7번, 드보르자크 7·8번 등을 연주할 예정이다. 츠베덴 감독은 “훌륭한 오케스트라가 되고 싶다면 카멜레온같이 다양한 스타일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혁신과 동시대성’…라일란트의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올해로 임기 3년차인 다비트 라일란트(45) 예술감독은 그 어느 해보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깊은 신뢰가 쌓였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국립’ 명칭을 단 후 첫 예술감독인 그는 악단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내실을 다지기 위한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2024년의 라일란트 감독은 ‘혁신성’과 ‘동시대성’에 집중한다. 지난 2년간 국내 클래식 음악계에선 자주 접하기 어려운 작품을 선보였던 그는 올해에도 혁신적인 작곡가들의 작품을 조명한다. 흔하디 흔한 독일과 오스트리아 작곡가가 아닌 프랑스와 러시아 작품을 전면 배치했다. 라벨과 드뷔시, 베를리오즈, 말러, 샤브리에, 로드리고, 엘가 등이다. 또 전쟁으로 얼룩진 오늘을 돌아보며 음악을 통한 치유의 힘을 들려준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다비트 라일란트 음악감독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올해 국립심포니는 ‘음악의 얼굴’이라는 주제를 잡았다. 그에 걸맞게 특별한 얼굴들이 무대에 선다. 우선 ‘국심의 아들’로 불리는 지휘자 윤한결이 눈에 띈다. 지난해 한국인 최초로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에서 우승한 주인공. 그는 앞서 2021년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주최한 제1회 KNSO국제지휘콩쿠르에서는 2위와 관객상을 수상하며 눈도장을 찍었다.

윤한결은 오는 3월 9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스트라빈스키의 ‘풀치넬라 모음곡’과 ‘불새 모음곡’을 들려줄 예정이다. 협연자는 프랑스 피아니스트 장-에프랑 바부제다. ‘체코의 민족성을 예술로 승화한 지휘자’로 칭송받는 레오시 스바로프스키(7월 21일), 바르셀로나 심포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인 뤼도비크 모를로(8월 31일)도 국립심포니와 함께 한국 관객을 만난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다비트 라일란트 음악감독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협연자도 다양하다. 2021년 부소니 콩쿠르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박재홍(5월 12일), 첼리스트 얀 포글러(7월 21일), 기타 열풍을 일으킨 밀로시 카라다글리치(2월 2일) , 하프의 가능성을 넓혀온 자비에르 드 매스트르(12월 7일)가 국립심포니와 호흡을 맞춘다.

이와 함께 라일란트 감독이 주력하는 것은 ‘미래 세대’ 음악인의 발굴과 육성이다. 국립심포니는 국제 아카데미, 지휘자 워크숍, 작곡가 아틀리에를 통해 다양한 인재를 발굴해왔다. 라일란트 감독은 “국립 단체로서 가장 중요한 사명은 미래 음악 인재 양성”이라며 “우리가 가진 음악적인 모든 것을 다음 세대에게 전수해야 할 의무가 있고, 그 의무는 우리 악단이 가진 중요한 역할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미래의 인재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은 확실성과 불확실성을 직면하는 것”이라면서도 “이것이 세대를 넘어 풍부하게 할 것임을 진정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단단한 호흡’…잉키넨의 KBS교향악단

등장과 동시에 KBS교향악단의 색채를 단숨에 변화시킨 피에타리 잉키넨(44) 음악감독 역시 올해로 임기 3년차에 접어들었다. KBS교향악단은 “잉키넨 감독과 단원들의 깊고 단단한 호흡이 강력한 새 시즌으로 보여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잉키넨 감독은 총 일곱 차례의 정기연주회를 진행, 익숙함과 신선함 사이에서의 줄다리기를 이어간다.

잉키넨 감독은 지난 2년 간 연주회를 통해 모국인 핀란드 출신 대표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곡을 한국 초연으로 선보이는 등 참신하고 수준 높은 레퍼토리로 클래식 애호가들의 귀를 즐겁게 했다. 이번 시즌에서도 ‘원, 원스 온리(One, Once, Only)’를 강조한다.

피에타리 잉키넨 [KBS교향악단 제공]

눈에 띄는 공연은 대망의 800회 정기 연주회다. 이 공연에선 레스피기의 ‘로마 3부작’으로 불리는 ‘로마의 축제’, ‘로마의 분수’, ‘로마의 소나무’를 선보인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가 함께 벨리니, 도니체티, 베르디 아리아의 정수를 들려준다.

객원 지휘자들도 쟁쟁하다. 정명훈을 비롯해 요엘 레비, 미하엘 잔데를링, 한스 그라프, 윤 메르클 등이 지휘봉을 잡는다. KBS교향악단의 제5대 상임지휘자이자 악단 역사상 첫 계관(桂冠) 지휘자인 정명훈은 차세대 클래식 스타들과 한 무대를 꾸민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 첼리스트 한재민과 함께 베토벤의 ‘삼중 협주곡’의 피아노 협연(10월) 무대를 마련한다.

[KBS교향악단 제공]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슈파체크(1월), 오보이스트 프랑수아 를뢰(2월), 바이올리니스트 카렌 고묘(4월), 메조소프라노 오카 본 데어 담라우(5월),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6월), 첼리스트 파블로 페란데스(7월), ‘임윤찬 스승’인 피아니스트 손민수(9월) 바이올리니스트 아라벨라 슈타인바허(9월), 피아니스트 장-이브 티보데(11월), 피아니스트 박재홍(12월) 등도 KBS교향악단과 호흡을 함께 한다.

이번 시즌에선 ‘모음곡’에도 공을 들였다. KBS교향악단 관계자는 “언제 들어도 신선한 모음곡, 언제 들어도 난해한 모음곡, 언제 들어도 화려한 모음곡,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모음곡을 골랐다”고 했다. 1월 R.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을 시작으로 6월에는 요엘 레비 지휘로 미국 작곡가 슈완트너의 모음곡 ‘세계를 위한 새 아침: 자유의 여명’을 국내 초연하며, 홀스트의 모음곡 ‘행성’을 연주한다. 10월에는 정명훈 지휘로 포레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라벨의 ‘다프니스와 클로에’, 11월에는 스트라빈스키의 3대 발레 모음곡 중 ‘불새’, ‘봄의 제전’을 무대에 올린다.

‘새싹 지휘자’ 김선욱의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스타’ 피아니스트 김선욱(36)이 지휘자 데뷔 4년 만에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신임 예술감독으로 입성했다. 임기는 2025년까지 2년. ‘파격’적인 등용과 함께 시작하는 임기 첫 시즌을 준비하기 위해 김선욱은 오랜 시간 머리를 싸맸다.

신고식과도 같은 이번 시즌 경기필의 라인업은 시즌 전체 공연이 ‘하나의 흐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피아니스트인 김선욱의 성향이 고스란히 투영됐다는 후문이다. 경기아트센터 관계자는 “피아니스트로 활동할 때도 시작과 끝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구조적인 견고함과 아름다움에 중점을 뒀던 것처럼 경기필의 2024년 프로그램도 하나의 긴 호흡으로 계획했다”고 귀띔했다.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제공]

프로그램은 지휘자와 경기필이 최고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작품으로 선정했다. 고전부터 현대음악까지 아우르고, 도전적인 작품을 적절히 배치했다. 정기 연주회에선 베토벤을 시작으로 그에게 영향을 받은 브람스와 리스트, 리스트와 연결된 바그너, 바그너와 연결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슈트라우스와 연결된 말러, 이들과 깊이 연결된 버르토크로 서양음악사를 관통한다.

다섯 번의 마스터즈 시리즈 중 김선욱 지휘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연은 ‘슈트라우스 영웅의 생애’다. 독주 바이올린이 중요한 이 작품에선 빈 필하모닉 악장으로 활동 중인 라이너 호넥이 협연자로 나선다. 2부 공연에서 객원 악장 역할을 동시에 맡는다.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제공]

이번 시즌에서 김선욱은 자신과 함께 연주했거나, 감명 깊게 음악을 들려 준 연주자들을 엄선해 함께 한다. 호넥 이외에도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 바딤 콜로덴코, 30여 년 간 파리 오케스트라 수석으로 활동 중인 파스칼 모라게스, 차이콥스키 콩쿠르 준우승자인 마크 부쉬코프 등이 경기필과 협연한다. 바딤 콜로덴코, 파스칼 모라게스는 국내 오케스트라와는 처음으로 협연하게 된다. 마크 부쉬코프는 내한공연 자체가 처음이다.

김선욱은 “지난 6월 경기필을 지휘할 때 경기필은 나와 음악적 지향점이 같은 오케스트라라고 느꼈고, 그 여운이 오래 남았다”며 “경기필과 함께하는 2024년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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