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9월에 열린 아트페어 키아프·프리즈 서울 전시를 찾은 관람객들 모습. [연합] |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지난해 6월까지만 해도 뜨거웠던 미술시장이 올해는 완연한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다. 고금리와 전 세계 경기 불황이 장기화되면서다. 그런데 미술 자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더 커졌다. 전시회와 아트페어를 찾는 사람들의 숫자가 이를 말해준다. 해외 미술관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은 한국 작가들의 전시 진출도 잇따랐다. 한 마디로 미술시장은 빠르게 식었지만, 국내 미술품 자체의 외연은 다각도로 확대되는 중이다.
우선 한국을 강타한 경기침체의 파고는 블루칩 작가도 피해갈 수 없었다. 고액자산가 컬렉터의 미술품 구매가 더 신중해지면서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가 발표한 올해 3분기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 리포트에 따르면, 낙찰 거래액은 총 260억원. 지난해 보다 13.6% 줄었다. 낙찰률도 65.5%에 불과했다. 전년과 비교하면 무려 10.23% 하락한 수치다.
미술시장에서 고가 거래로 활발한 작가의 작품이 경매 직전 취소되는 사례도 있었다. 올해 3분기에만 해도, 국내 최고 작가로 꼽히는 이우환·박서보의 출품 취소 작품이 각각 2점씩 나왔다.
올해 9월에 열린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 VIP 프리뷰가 열리는 모습. [연합] |
빠르게 식은 미술시장을 보여주는 또다른 사례도 있다. 글로벌 최대 아트페어를 개최하는 아트바젤과 파트너사인 글로벌 금융사 UBS가 2800명의 고액자산가(HNW·High Net Worth, 현금자산 100만달러 이상)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고액자산가의 미술품 소비금액 비중은 19%다. 지난해(24%)보다 5%포인트 하락했다.
그런데 국내 미술 애호가는 늘었다. 올해 9월 서울 코엑스에서 나란히 열린 아트페어 프리즈·키아프 서울은 기대 이상의 관람객을 모객하며 막을 내렸다. 당초에만 해도 미술계 안팎에선 국내 아트페어가 흥행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런데 키아프에는 지난해보다 15%가량 늘어난 8만여명이 다녀갔다. 이보다 하루 앞서 폐막한 프리즈 방문객도 7만명을 넘겼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빛나는 법이다. 실제로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명작은 경기 침체와 무관하게 아트페어에서도 역량을 나타냈다. 미국의 대형 화랑 데이비드 즈워너가 출품한 쿠사마 야요이의 ‘붉은 신의 호박’은 580만달러(약 77억원)에 팔리며 최고가 기록을 썼다. 다만 프리즈·키아프 서울은 지난해 역대급 호황을 누리며 최고 매출액을 발표했던 것과 달리, 올해는 전체 매출액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불 작가의 작품이 설치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건물 정면. [연합] |
올해는 국내 작가와 미술품의 미국 진출이 잇따른 한해이기도 했다. 미국 뉴욕의 솔로몬 R.구겐하임미술관에서는 1960~1970년대 한국 실험미술 작가 29명을 소개하는 전시를 시작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올해 한국실 개관 25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를 시작했고, 한국미술 담당 큐레이터를 영구직으로도 설치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미술 외관에 설치할 조각 작품을 이불 작가에게 의뢰했다. 한국 작가가 부탁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은 ‘1989년 이후 한국 미술’을 주제로 한 전시를 10월 개막했다.
불미스러운 사태도 있었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지난해 2월 연임에 성공했지만 올해 4월 사의를 표명하고 중도 퇴임했다. 전임 문재인 정부 때 재임명된 윤 관장이 ‘알박기 인사’라는 논란에 시달렸던 데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립현대미술관 감사 결과 발표 등으로 사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데 부담을 느낀 것으로 해석된다. 후임으로는 김성희 전 홍익대 미술대학원 교수가 올해 9월 취임했다.
강강훈 ‘모던보이-박서보’ [조현화랑 제공] |
올해 10월에는 한국의 추상미술 ‘단색화’를 대표하는 박서보 작가가 9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는 무수히 많은 선을 긋는 ‘묘법’(Ecriture·描法) 연작에 집요하게 매달려 한국 미술사의 큰 획을 그었다. 그는 올해 2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폐암 3기 진단 사실을 밝히면서도 “캔버스에 한 줄이라도 더 긋고 싶다”고 전했다. 한편 지난해 10만달러를 지원해 올해 제정한 ‘광주비엔날레 박서보 예술상’은 “광주 정신과 동떨어져 있다”라며 지역 예술인들이 상의 철폐를 요구에 첫 번째 수상자만 내고 끝내 폐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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