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스테디셀러 베토벤 ‘합창’
이색적인 클래식 ‘필하모닉스’
‘푸에르자 부르타 웨이라 인 서울’ [크레센트엔터테인먼트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2월은 전통적으로 ‘공연 성수기’다. 연말 스테디셀러 공연이 돌아오고, 대작 투어 공연이 한국을 찾기 때문이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최근 발간한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의 ‘2022년 공연시장 동향 총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공연 티켓 판매액은 5590억 원. 그 중 12월 공연 건수는 무려 1907건이고, 티켓 판매액은 855억 원으로 가장 높았다.
이 때가 되면 돌아오는 공연들은 해마다 조금씩 진화하며 ‘충성 관객’들을 붙들고, 연말을 맞아 유입되는 ‘신규 관객’들을 확보한다. 연말 공연이라고 다 같은 공연은 아니다. 쏟아지는 공연 중 놓치지 말아야 할 공연들이 있다.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마스트인터내셔널 제공] |
10분간 6㎞, 거침없이 질주한다. 지치지도 않고 달려나가고, 줄에 매달려 공중을 날아다니며, 온 몸으로 물을 맞는다. 아무 것도 모르고 왔다가, ‘문화 충격’을 마주하는 공연들이 있다.
말 그대로 ‘크레이지 퍼포먼스’. 한국 공연 10주년을 맞는 ‘푸에르자 부르타 웨이라 인 서울’(내년 2월 15일까지·성수문화예술마당)이다. 스페인어로 ‘잔혹한 힘’을 의미하는 ‘푸에르자 부르타’는 70분간 관객을 새로운 세상으로 이끈다. 단 한 마디의 말도 없다. 강렬한 퍼포먼스와 짜릿한 음악이 어우러지는 이 곳은 현실과는 철저하게 단절한 ‘환각의 세계’다. 공연 내내 시시각각 불어오는 바람(스페인어로 ‘웨이라’)마저 신기루 같다. 세바스찬 구티에레즈 무대감독은 “관객들은 아무런 준비 없이 그냥 오면 된다”며 “자신이 원하는 색대로 공연을 즐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2005년 세계 초연한 이 작품은 전 세계 36개국, 63개 도시에서 650만 명이 관람했다. 국내 관객만 해도 무려 18만 명에 달한다. 이번 한국 공연에선 익숙한 스타들이 나온다. 몬스타엑스의 셔누가 ‘푸에르자 부르타’의 명장면 ‘꼬레도르(CORREDOR)’에, ‘스트릿 우먼 파이터2’의 우승을 이끈 댄서 바다가 ‘무르가’와 ‘라그루아’에 출연한다. 꼬레도르는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모티브 삼아 태어난 장면이고, ‘무르가’는 관객과 함께 춤을 추는 장면, ‘라그루아’는 14m 크레인을 타고 공중을 유영하는 장면이다.
개막 두 달도 되지 않아 벌써 매출 300억을 달성한 ‘괴물 공연’도 있다. 세계적인 아트 서커스 그룹 태양의 서커스의 ‘루치아’. 2007년 ‘퀴담’을 시작으로 꾸준히 한국을 찾고 있는 ‘태양의 서커스’는 내한 공연을 열 때면 그 해 매출 1위를 도맡는다. 오는 25일엔 전 세계 통산 공연 횟수 2000회를 돌파한다.
이번 ‘루치아’(12월 31일까지·잠실종합운동장)는 투어 공연 최초로 ‘물’을 도입, 아름다운 서커스 예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루치아’는 스페인어로 ‘빛’(luz)과 ‘비’(lluvia)를 뜻하는 말. 이 공연은 역대 내한한 태양의 서커스 공연 중 가장 화려한 미장센을 자랑한다. ‘태양의 나라’ 멕시코의 대자연과 찬란한 문화가 담겼고, 라이브로 연주하는 음악과 최첨단 기술력으로 빚어낸 ‘물의 향연’이 압권이다. 1만ℓ의 폭포수 속에서 90도로 허리를 꺾고, 줄 하나에 의지해 하늘을 날아다니며, 10m 높이의 두 그네 사이를 오가는 아찔한 곡예를 이어간다. 하늘에선 하트 모양, 물결 모양의 물줄기로 미디어아트를 보는 듯한 무대 미학도 선보인다.
다니엘 라마르 ‘태양의 서커스’ 부회장은 “‘루치아’가 멕시코 문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듯, 한국의 문화를 담은 공연을 올려보는 것이 꿈이다. 언젠가는 그 꿈을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정명훈과 원코리아오케스트라 [롯데문화재단 제공] |
“이 거대한 작품은 우리를 거룩한 예술의 마법 같은 세계로 인도했다.” (빈 일반음악신문)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이 세상에 처음 공개되던 1824년 5월 7일. 장장 65분의 대곡에 빈의 케른트너토어 극장은 감격의 눈물이 쏟아졌다. ‘합창’은 베토벤이 청력을 완전히 잃은 상태에서 쓴 곡이다. 음악적 ‘혁명’과 ‘불굴의 의지’를 담아낸 곡이기도 하다. ‘합창’엔 전에 없던 특별함이 많다. 이 교향곡은 고전과 낭만 시대를 잇는 다리이자, 새로운 악기의 도입으로 보다 확장한 악기 편성을 들려주고 있다. 당시로선 ‘순수 기악곡’이라 여긴 교향곡에 사람의 목소리가 더해진 ‘최초의 곡’이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걸작이자, 히트곡이다.
이 ‘위대한 교향곡’은 혼란한 시대와 가혹한 운명을 극복하고자 하는 화해와 소망의 메시지를 담은 덕에 연말 ‘단골 레퍼토리’가 됐다.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을 준비를 하는 때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올해에도 ‘합창’이 돌아왔다. 12월 한 달간 다수의 악단이 저마다의 ‘합창’을 들려준다. 가장 기대를 모으는 ‘합창’은 국내 양대 악단과 정명훈이 이끄는 원코리아오케스트다.
내년 취임을 앞둔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신임 음악감독은 한국 관객에게 첫 ‘합창’(12월 21~22일 롯데콘서트홀, 23일 경기 고양아람누리)을 들려준다. 공격적이고 웅장한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지휘자인 만큼 서울시향의 ‘합창’이 주는 감동의 진폭 역시 거대할 것으로 기대된다. 소프라노 서선영, 메조소프라노 양송미, 테너 김우경, 바리톤 박주성이 출연한다.
KBS교향악단(20일·롯데콘서트홀, 21일·음성문화예술회관, 23일·서울 예술의전당, 24일·아트센터인천, 26일·경기 의정부예술의전당)은 이번 ‘합창’을 통해 모든 악단 중 최대 일정을 소화한다. 소프라노 홍혜승, 메조소프라노 김정미, 테너 박승주, 바리톤 최기돈이 ‘합창 교향곡’의 독창자로 무대에 오른다.
세계적인 ‘지휘 거장’ 정명훈은 그가 이끄는 원코리아오케스트라와 12월 마지막날 ‘합창’(롯데콘서트홀)을 연주한다. 2017년 남북한 교류를 목적으로 창단한 원코리아오케스트라는 국내 악단 전현직 단원과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 출신 연주자들이 모였다. 소프라노 황수미, 메조 소프라노 김선정, 테너 강요셉, 바리톤 강형규가 독창을 맡았다.
세계 ‘최정상 악단’인 빈 필하모닉과 베를린 필하모닉의 ‘간판 스타’들이 모인 7인조 앙상블 필하모닉스가 한국을 찾는다. [WCN 제공] |
일 년 중 12월에만 만나는 클래식 공연이 있다. 꽤 오랜 시간 이어져 온 만큼 해마다 찾아오는 산타클로스의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공연이다.
먼저 스타 피아니스트 손열음(37)의 ‘커튼콜’이다. 이 공연은 2017년 시작, 올해로 5회째 이어오고 있다. 오는 26일 성남(성남아트센터)을 시작으로 서울(12월 28일·예술의전당), 부산(12월 29일·해운대문화회관)으로 이어진다. 손열음의 ‘절친들’인 바이올리니스트 스베틀린 루세브와 플루티스트 조성현, 오보이스트 함경이 함께 하는 이 공연에선 끈끈한 세 사람의 우정과 호흡을 만날 수 있다.
유키 구라모토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어느덧 15년째다. 한국 관객을 향한 고마운 마음을 담아 2009년부터 이어온 ‘크리스마스와 콘서트 : 유키 구라모토와 친구들’(12월 25일·롯데콘서트홀)이라는 이름으로 열린다. 그는 친구가 무척 많다. 클라리네티스트 김한,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 대니구, 성악가 박현수 구본수 등 다양하다. 올해는 ‘팬텀싱어4’의 준우승팀 프로테나의 테너 서영택, 카운터테너 이동규가 함께 한다.
베를린 필하모닉과 빈 필하모닉의 간판 단원들이 뭉친 필하모닉스(12월 20일·예술의전당)의 공연도 있다. 필하모니스는 2대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피아노와 클라리넷, 더블베이스가 뭉친 유례 없는 7중주 앙상블이다. 지난해 한국에서의 공연이 큰 인기를 모아 올해 공연도 성사됐다. 클래식의 전통을 담으면서 재즈, 라틴, 팝을 끌어안았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재밌는 음악’을 들려준다. 필하모닉스의 슬로건이 독특하다. ‘그들의 프로그램에 있는 모든 것이 ‘클래식’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클래스’가 있다.’ 리더인 다니엘 오텐잠머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되 사람들이 우리에게 기대할 수 있는 최고 퀄리티의 음악을 들려주고자 하는 마음을 우리의 슬로건에 담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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