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장한 피날레무대·역동적 테크닉 눈길
목각인형 아닌 아역 무용수 움직임 압권
유니버설발레단
동화 속 아기자기하고 신비로운 무대
원작스토리 담은 마임·정제된 안무 돋보여
와이즈발레단
60여명 무용수·화려한 50여벌 의상
정통 클래식발레 정교함 결정판 선사
무대 위로 하얀 눈이 내리면 ‘크리스마스 파티’가 시작된다. ‘중력의 무게’를 거스르며 통통 튀어오르는 20여명의 무용수들. 시시각각 대열을 바꾸며 하늘에서 떨어진 눈꽃송이처럼 만들면 무대는 금세 ‘눈의 나라’가 된다.
매 순간이 명장면이다. 단 한 장면도 놓쳐서는 안되는 연말 스테디셀러 ‘호두까기 인형’이 돌아왔다.
발레 ‘호두까기 인형’은 ‘거장들’이 만든 작품이다. 발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콤비로 불리는 표트르 차이콥스키와 마리우스 프티파가 탄생시켰고, 스토리는 독일 작가 E.T.A 호프만의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왕’을 프랑스 대문호 알렉상드르 뒤마가 각색한 것이다.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가 발레 대본으로 만들어 세상에 나왔다.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와 함께 ‘차이콥스키 3대 명작 발레’로 불린다.
‘호두까기 인형’은 1892년 19세기 ‘러시아 발레의 중심지’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에서 초연한 후 130여년 간 전 세계의 연말 레퍼토리로 자리했다. 오랜 세월 공연된 만큼 버전도 많다. 국내에선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이 1986년부터 ‘12월 대전’을 벌였고, 최근엔 민간 발레단도 ‘연말 승부’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호두까기 인형 대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세밑에도 발레 ‘호두까기 인형’대전이 펼쳐진다.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 와이즈발레단의 각각 다른 공연이 주는 색다른 감동이 기대된다. [국립발레단 제공] |
▶국립발레단 의 역동적인 ‘호두까기 인형’=국립발레단은 국내 ‘호두까기 인형’ 공연의 시초다. 국립발레단이 처음으로 ‘호두까기 인형’(안무 아리마 고로)을 선보인 것은 1977년 12월. 이후 어린이날을 겨냥해 무대에 오르다 1986년부터 12월에 관객과 만나기 시작했다.
1984년 유니버설발레단이 창단한 이후 2년 뒤부터는 양대 발레단의 경쟁이 시작됐다. 유리 그리고로비치의 안무로 ‘호두까기 인형’을 선보인 것은 2000년부터다. 초연 이후 순식간에 ‘매진 사례’를 기록하는 연말 베스트셀러다.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인형’은 주인공 소녀 ‘마리’가 크리스마스 이브 날 밤, 꿈속에서 호두 왕자를 만나 크리스마스 랜드를 여행하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이 뿌리를 둔 볼쇼이발레단은 러시아 혁명으로 왕조가 무너진 뒤 공산화 되는 과정에서 소비에트 전통을 기반으로 출발했다. ‘큰, 커다란(огромный)’ 이라는 뜻의 러시아어에서 유래한 ‘볼쇼이’의 어원답게 ‘웅장함’을 추구한다. 무대는 세 발레단 중 가장 묵직하고 어두운 편이며, 마임을 최소화하고 동작에 역점을 둔 연출로 풀어낸다. 역동적인 테크닉이 깔끔하게 조화를 이룬다는 특징이 있다.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은 타 발레단과 달리 여주인공의 이름을 마리라고 부른다. 소설의 이름 그대로다. 마린스키 발레단 스타일의 ‘호두까기 인형’에서 주인공은 ‘클라라’다.
가장 큰 차별점은 ‘인형’에서 시작된다. 이 작품에선 ‘호두까기 인형’을 목각인형이 아닌 어린 무용수가 직접 연기한다. 국립발레단은 “‘호두까기 인형’의 역할은 매해 국립발레단 부설 발레아카데미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정한 오디션을 거쳐 선발한다”고 귀띔했다. 덕분에 인형보다 더 인형같은 신체 움직임이 압권이다.
극 초반에 등장해 ‘화자’ 역할을 하는 ‘드로셀마이어’도 유리 그리고로비치 버전에서만 만나는 특별한 해석이다. 다른 버전에선 ‘드로셀마이어’가 마리의 대부로 평면적으로 묘사된다. 국립발레단 관계자는 “자칫 유치하게 흐를 수 있는 극의 흐름을 자연스럽고 유연하게 이끄는 화자로 설정했다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호두까기 인형’의 가장 큰 안무 포인트는 단연 1막 피날레의 눈송이다. 국립발레단에선 24명의 무용수가 눈꽃송이를 표현한다. 뿐만 아니라 스페인, 중국, 러시아, 프랑스, 인도 등 5개국 의 민속춤을 가미한 인형들의 디베르티스망(줄거리와 상관없이 펼치는 춤의 향연)은 고난도 테크닉을 강조하며 ‘춤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에 더해 32명의 무용수가 만들어내는 화려하면서도 질서 있는 꽃의 왈츠, 극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리와 왕자의 2인무인 그랑 파드되는 놓치면 안되는 명장면이다.
공연에선 간판 수석무용수 박슬기, 정은영, 김기완, 이재우, 허서명, 박종석 등 총 7쌍의 마리와 왕자를 만날 수 있다. 특히 올해엔 2021년 ‘주얼스’ 중 ‘루비’에서 솔리스트 역을 맡은 정은지와 2023년 신작 ‘돈키호테’의 ‘에스파다’를 맡은 곽동현이 ‘마리’와 ‘왕자’로 데뷔한다.
올해 세밑에도 발레 ‘호두까기 인형’대전이 펼쳐진다.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 와이즈발레단의 각각 다른 공연이 주는 색다른 감동이 기대된다.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
▶유니버설발레단 의 화사하고 아기자기한 ‘호두까기 인형’=유니버설발레단의 ‘호두까기인형’은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가장 잘 살렸다는 평을 받는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의 바실리 바이노넨(Vasily Vainonen, 1901~1964년) 버전이다. 1986년에 시작해 올해로 37번째 시즌을 맞는 스테디셀러다.
유니버설발레단 ‘호두까기 인형’의 특징은 마린스키발레단의 특징을 그대로 따른다. 러시아 황실 발레단인 마린스키 발레단은 서유럽 문화 계승을 기반으로 출발, 세련미와 정교함, 화려함 등을 추구한다. 마린스키 발레단의 특징인 고도의 테크닉과 스토리텔링이 어우러진 무대는 ‘호두까기 인형’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국립발레단의 무대와 비교하면 보다 화사하고 사랑스러운 색감이 많아 ‘동화의 나라’를 구현한 느낌을 준다. 안무도 아기자기하다.
유니버설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은 신비로운 무대와 원작 스토리를 쉽게 풀어낸 마임, 정제된 안무가 가장 큰 특징이다. 유니버설발레단 관계자는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발레 입문작으로 좋다”고 말했다. 특히 1, 2막엔 유니버설발레아카데미, 줄리아발레아카데미 등에서 학생들이 총출동해 어린이 관객의 눈높이에 맞는 귀여운 무대를 연출한다. 여주인공 클라라 역도 1막에선 어린이가, 2막에선 성인이 맡는다.
발레의 1막은 스토리를 중심으로 크리스마스 판타지를 서정적이며 역동적으로, 2막은 발레 테크닉을 집중 배치했다. 특히 1막 ‘눈송이 왈츠’와 2막 ‘로즈 왈츠’는 유니버설발레단의 장기인 군무를 만날 수 있다. ‘로즈 왈츠’에선 남녀 군무의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리프트와 점프, 빠른 대형 변화로 화려한 앙상블을 볼 수 있다.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듯 일렁이는 치마의 움직임이 경쾌하면서도 우아하다.
‘과자의 나라’는 볼거리가 대거 등장한다. 2인무로 보여주는 스페인(초콜릿), 중국(차) 춤, 3인무의 러시아(막대사탕) 춤, 6인 이상으로 확장한 아라비아(커피콩) 춤 등 과자를 의인화한 각국의 민속춤으로 이뤄진 디베르티스망은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고난도 테크닉이 응집된 클라라와 호두까기 왕자의 ‘그랑 파드되’도 놓치면 안 된다. 특히 ‘별사탕 요정(Dance of the sugar plum fairy)’이라 불리는 여자 솔로 바리에이션은 유니버설발레단의 차기 시즌을 이끌 새로운 스타가 태어나는 장면이다.
이번 공연에선 강미선-콘스탄틴 노보셀로프, 홍향기-이동탁, 손유희-이현준, 엘리자베타 체프라소바-드미트리 디아츠코프, 한상이-이현준, 이유림-강민우 등 총 여섯 커플이 나온다. 헝가리 국립발레단 솔리스트로 7년 간 지내다 올해 10월 유니버설발레단에 입단한 이유림이 새로운 클라라로 관객과 만난다.
올해 세밑에도 발레 ‘호두까기 인형’대전이 펼쳐진다.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 와이즈발레단의 각각 다른 공연이 주는 색다른 감동이 기대된다. [와이즈발레단 제공] |
▶와이즈발레단 의 웅장하고 화려한 ‘호두까기 인형’=와이즈발레단과 마포문화재단은 올해로 8 년째 ‘호두까기 인형’을 함께 선보이고 있다. 그간 다양한 해석으로 ‘호두까기 인형’ 전막을 선보였으나, 이번엔 ‘전통’으로 회귀했다. 지난해만 해도 마리우스 프티파의 원작을 홍성욱 와이즈발레단 예술감독이 재안무해 스트리트 댄스를 더했다. 원형은 유지한 채 브레이크 댄스, 팝핑, 비보잉을 섞은 것이다.
특히 생쥐로 변신한 비보이 댄서와 호두까기 왕자의 ‘춤의 전투’, 발레리나와 스트리트 댄서들이 선보이는 2막의 중국춤은 와이즈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연출이었다.
올해는 다르다. 정통 클레식 발레의 정교함과 화려함을 느낄 수 있는 마린스키 스타일의 무대를 옮겨왔다. 마포문화재단 관계자는 “최대한 원작에 가까운 정통 클래식 발레로 선보일 예정”이라며 “고도의 테크닉을 요하는 정통 클래식 안무에 이해하기 쉬운 마임들을 적절하게 구성했다”고 귀띔했다.
특히 어린이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마법사 드로셀마이어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스토리를 풀어가도록 한 것도 이번 무대의 특징이다.
‘관람 포인트’는 군무에 맞춘 웅장한 연출이다. 1막 3장의 ‘스노우 아디지오’(눈송이)는 마린스키 스타일을 재안무해서 스노우 파드되(Pas de deux, 여성과 남성 무용수가 함께 추는 춤)를 새롭게 구성했다. 기술적으로 가장 어려운 안무인 ‘꽃의 왈츠’도 와이즈발레단만의 스타일로 전체 재구성했다. 마포문화재단 관계자는 “가장 화려함이 돋보이는 장면”이라고 귀띔했다. 과자 나라 왕자와 공주의 파드되는 남녀 주인공이 보여주는 고도의 테크닉과 수준급 감정 표현을 제대로 볼 수 있는 하이라이트다.
와이즈 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담은 무대 연출과 60여명의 무용수, 50여벌이 넘는 의상을 선보이며 ‘화려함’으로 중무장했다. 총연출을 맡은 김수연 부단장은 “마법사의 깜짝 마술과 2막에서 보여주는 세계 춤 퍼레이드, 꽃의 왈츠, 사탕 요정과 왕자의 ‘그랑파드되’ 등은 관객에게 쉴 틈 없는 재미와 볼거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섯 차례에 걸쳐 이어지는 공연에선 와이즈발레단 남녀 솔리스트 박종희-김민영을 시작으로 윤해지-크리스토퍼 로빈 안드레아슨(Christopher Robin Andreasson, 김유진-따와도르즈 오윤(Davaadorj Oyun), 윤별-김민영이 관객과 만난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