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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극장 재정비때 일류 호텔·백화점 벤치마킹했죠” [헤경이 만난 사람-박인건 국립중앙극장 극장장]
3월 취임후 하드·소프트웨어 정비
공연장 운영·예술단 지원 최우선시
관객이 머물 공간 편의시설 확충
국립극장, 열린 문화명소되길 희망
1세대 예술행정가인 박인건 극장장은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서 “공연은 서비스업”이라며 “극장이 가장 역점을 둬야 할 곳에 관객과 예술가가 있다”고 말했다. 사진은 국립극장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박 극장장. 임세준 기자

극장은 ‘경험의 총체’다. 한 명의 관객이 티켓을 예매해 관람을 마치고 나오기까지의 모든 과정은 낯선 세계로 향하는 여행과도 같다. 공연 전의 설렘과 기다림, 공연장으로 향하는 길의 즐거움, 관람 후 돌아가는 길의 만족감.... 수고로움을 딛고 향하는 모든 걸음에 ‘오감’(五感)을 채워넣는 일을 바로 극장이 한다.

취임 10개월차. 3월 국립중앙극장의 수장이 된 박인건(66) 극장장은 “공연장은 서비스업”이라며 “극장이 가장 역점을 둬야할 곳에 (우리의 고객인) 관객과 예술가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 남산 아래 자리한 오래된 극장’인 국립극장은 1950년 태평로 부민관(현 서울시의회 의사당) 자리에서 문을 연 뒤 대구와 명동을 거쳐 장충동으로 터를 옮겼다. 1973년 남산에서 꽃 피운 세월이 어느덧 반 백년이다. 국립극장은 독특한 정체성을 가진다. 전통과 동시대 공연예술의 보고라는 상징성, 도심 한복판에 자리하면서도 ‘외딴섬’ 같은 이중성을 동시에 지녔다.

박인건 극장장이 추구하는 변화의 방향성은 명확하다. ‘열린 공간과 지원하는 극장’이다. 최근 국립극장에서 만난 박인건 극장장은 “극장장 자리가 오래도록 공석이었던 만큼 부담감이 컸던 것도 사실”이라며 “취임과 함께 목표로 뒀던 부분에서 70~80% 정도는 긍정적인 변화가 보이고 있다”고 했다. 박 극장장에게 지난 10개월의 변화와 국립극장의 지향점을 들어봤다.

-1년 6개월간 공석이었던 국립극장의 극장장으로 취임한 이후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봤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재정비다. 국립극장장의 미션은 딱 두 가지다. ‘공연장의 운영’과 ‘예술단의 지원’이다.

극장을 잘 운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연장으로의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는 일이 우선이 돼야 한다. 국립극장이 서비스를 해야 할 고객은 관객, 예술가, 대관 주체, 직원이다. 극장을 찾는 관객은 가장 우선해야 할 고객이고, 극장을 이용하는 예술가와 공연을 하기 위해 대관하는 사람도 반드시 염두해야 한다. 매일 아침 출근하며 하루를 보내야 하는 직원 역시 우리의 고객이라고 봤다.

서비스를 제대로 하려고 ‘일류 호텔’과 ‘백화점’을 벤치마킹 했다. 관객을 위해 극장 안팎을 재정비하고, 예술가와 대관 주체를 위해 공연을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직원도 기분 좋게 일할 수 있는 여건과 분위기를 만들려고 했다. 국립극장 무대에 서는 주연 예술가에게 ‘비누 카네이션’을 선물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우리 극장에서 공연해줘 감사하다’는 의미다.

-하드웨어 정비를 통한 변화가 짧은 시간이지만 눈에 띈다. 해오름극장을 개방하고, 극장 내 편의시설을 확충하는 과정에서 목표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국립극장 대극장인 해오름극장은 오랜 시간 닫힌 극장이었다. 이곳을 찾는 사람은 우스갯소리로 ‘안기부’라고 했을 정도다. 공연이 없는 날엔 신분증을 맡기거나 이름과 연락처를 적은 뒤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극장을 완전히 개방하며 공연장을 찾는 관객이 편하게 머물 공간(지층 레스토랑, 2층 북라운지)을 만들었다. 저녁 공연이 대부분이다 보니 낮에는 보통 유휴 공간이 되는 2층을 활용해 사람이 머물며 책을 볼 수 있도록 했다. 극장에서 냉난방을 하지 않아도 여름엔 가장 시원하고, 겨울에는 가장 따뜻한 곳이다.

하지만 해오름극장에 레스토랑이 들어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2021년 5월부터 2023년 6월까지 2년여 간 코로나19로 공연계와 요식업계가 어려움을 겪으며 유찰되다가 지금의 운영 업체인 센트럴 윤잇이 들어왔다. 입점 식당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국립극장에서 자체 비용인 1억1000만원을 들여 식당 공간의 냉난방과 출입구 개선 공사를 진행했다. 극장 시설 개선을 통해 레스토랑에 대한 관객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관객이 국립극장을 찾았을 때 첫인상을 결정하는 해오름극장과 달오름극장의 외벽 청소를 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20년 만에 4600만원을 들여 물청소를 했다. 극장장으로서 하드웨어의 변화를 통해 바람이 있다면, 국립극장이 ‘명소’가 되는 것이다.

-극장의 변화를 이끄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공연’이다. 극장 본연의 정체성을 부각하기 위해 추진한 일이 있다면.

▶대극장 가동률을 높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극장은 공연장의 얼굴인데, 이곳에서 매년 실질적인 공연 횟수가 110회에 그쳐 적다고 봤다. 물론 취임 전까지도 극장의 가동률은 90%였지만, 더 늘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임기 동안 1년 간 200회 공연(대극장 기준)을 목표로 삼았다. 2023년 한 해 동안 공연 횟수는 138회(13% 증가), 공연 일수는 130일(15% 증가)로 증가했다.

극장 가동률을 높이기 위해 내외부 작품의 공연 횟수를 늘렸다. 대관 횟수 증가를 위해 기존에 비효율적이었던 점을 개선했다. 국립극장은 대한민국 유일의 제작극장이라는 점이 강점이자 자랑이지만, 덕분에 무대 준비 기간이 길어졌다. 이를 효울적으로 줄여, 국립과 민간 단체에 대관을 주면서 국립극장을 찾는 관객이 다양한 공연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국립오페라단(10회 공연), 국립합창단(2회 공연), 국립발레단(5회 공연) 작품이 올 한 해 여러 차례 올라왔다.

해오름극장 기준 현재 대관료는 263만~474만원(공연 263만원, 뮤지컬 400만원, 행사가 474만원)이다. 운영 중인 공동주최 방식엔 수입금 배분형과 대관료 납입형이 있다. 8대2(국립극장)의 수입금 배분형을 우선으로 한다. 대관이 수익을 내기 위한 것이 아닌 공간 지원을 위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예술단을 이끄는 단체장의 명칭이 예술감독에서 ‘단장 겸 예술감독’으로 달라지고, 단원 채용도 공격적으로 진행한 점이 눈에 띈다.

▶극장에서 산하 예술단체에 해야할 일은 ‘관리’가 아닌 ‘지원’이다. 예술단에도 우리는 지원을 할 테니, 그에 맞는 역할을 충분히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과정에서 리더의 역할과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예술단 수장에게 단장이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관리는 단장에게 맡기고, 극장은 지원에 힘을 쏟고자 한 선택이었다.

과거 국립창극단, 국립국악관현악단, 국립무용단 등 국립극장 산하 예술단체는 인큐베이터라고 불렀다. 재단으로 자생하긴 버거우니, 지원을 통해 육성해야 하는 단체라는 의미였다. 지금은 달라졌다. 현재의 국립극장 예술단체들은 70~80%의 티켓 판매율을 가지고 있다. 국립창극단은 원한다면 재단으로 독립을 해도 될 만큼 자생력을 가진 단체로 성장했다.

예술단이 공연을 잘할 수 있도록 하는 가장 큰 지원은 단원 확충이다. 다만 각 예술단체마다 예산상의 정원이 있어 채용이 쉽지 않다. 극장에서 수입이 발생할 경우, 문화창달과 예술 창작, 시민을 위한 재투자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재단법인의 경우 이사회의 결정을 거쳐 예산 과목을 넘나들며 활용할 수 있지만, 국가기관의 경우 예산을 넘나드는 데에 한계가 있다.

이처럼 여러 어려움을 딛고, 올해엔 대폭 인원을 충원했다. 창극단에선 8월 5명을 뽑았고, 무용단에선 역대 최다 규모인 6명을 뽑았다. 관현악단에선 내년까지 4명을 채용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국립극장이 K-컬처의 선봉 역할을 하리라 본다.

-국립극장은 어떻게 존재해야 하나.

▶국립극장의 역할은 돈을 버는 데에 있지 않다. 우리의 목적은 ‘돈을 잘 쓰는 것’이다. 예술단체와 예술가, 관객을 위해 돈을 잘 쓰는 극장이자,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극장으로 자리하는 것이 목표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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