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차례 기각됐는데 재등재 추진
일본 도쿄 사찰 ‘조조지(증상사·增上寺)’가 소장한 고려대장경 목판 인쇄본 ‘무량수전’ [문부과학성 홈페이지 캡처] |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일본 정부가 도쿄의 한 사찰이 소장한 고려대장경 등 한국·중국의 불교대장경 인쇄본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후보로 등재 신청했다. 고려대장경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다.
일본 정부가 자국 불교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이 아닌데다 과거에 한 차례 기각됐는데도 2025년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목표로 재추진한 배경에 의문이 제기된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21년 해당 유물에 대한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신청했으나 올해 반려당했다.
30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일본 문부과학성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후보로 도쿄 소재 사찰인 ‘조조지(증상사·增上寺)’가 소장한 불교 성전 총서 3종’과 ‘히로시마 원폭의 시각적 자료-1945년의 사진과 영상’ 등 2건을 선정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2년마다 국가 별로 최대 2건의 신청을 받아 심사한다.
이에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고려대장경 인쇄본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재추진한 의도를 살펴보고, 문제 제기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날 문화재청 관계자는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유네스코에서 내년 3월에 신청서 내용을 공개하면, 자세한 내용을 상세히 확인할 것”이라며 “정보 왜곡이 없는지, 문제 소지가 있는 표현이 없는지 빈틈없이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학술계에 따르면 다른 나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행위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보다 등재를 신청한 배경이 중요하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한국위원회 위원장인 서경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날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과 달리 세계기록유산은 장구한 세월에 걸친 역사적 기록물을 보관하는 목적이 강하다”라며 “일본 정부가 고려대장경 인쇄본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는 사실보다는, 이를 재추진한 숨은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동일한 세계기록유산을 재등재 하는데, 이에 대한 등재 신청서 내용이 달라질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세계기록유산은 재소하는 경우가 극히 드문 게 사실”이라며 “신청서 내용을 파격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한 번 반려당한 세계기록유산에 대한 재등재는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2021년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신청했을 때만 해도, 고려대장경 인쇄물은 ‘한일교류사’를 상징하는 문화유산으로 풀이됐다. 이로 인해 한국 정부도 한국의 고려대장경에 대한 전 세계적 인식이 높아진다는 점을 고려, 일본 정부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에 대한 긍정적 효과를 예상했다.
다만 올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의 등재 추진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일본 정부기관 기록물이 포함돼 있다”며 항의했다. 특히 일본 정부가 이번에 세계기록유산 재등재를 추진하는 고려대장경 인쇄물은 일본 자국에서 역사상 가장 뛰어난 국가 지도자로 평가받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수집해 조조지에 기증한 문화유산이다.
앞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임진왜란 이후 개전대비(改前代非·전대의 잘못을 바로잡는다는 뜻) 문구를 기치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쟁 책임을 인정한 바 있다. 일본 정치인들이 침략 사실을 부정하는 저변에는 1910년 한일병합이 근대국제법적 합의에 의한 것이었다는 잘못된 역사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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