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예산안을 심사하고 있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27일부터 ‘소(小)소위원회’ 가동을 시작했다. 예산안 심사가 또 ‘밀실’로 넘어간 것이다. 소소위는 국회법상 아무런 근거가 없는 기구다. 예결위원장과 양당 간사 등 단 3명이 결론을 내는 어느 나라에도 없는 구조다. 게다가 회의록도 남기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일이 거의 매년 되풀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657조원의 나라 살림 심사가 깜깜이로 진행된다는 자체만으로도 국민들은 불안하다.
지켜보는 눈도, 기록도 남지 않는 심사이다 보니 한해 나라 살림이 여야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나눠먹기’식이 될 공산이 크다. 이 과정에서 ‘밀실’을 향한 여야 의원들의 ‘쪽지 로비’가 판을 치게 된다. 더욱이 내년에는 총선이 치러지는 해라 그 양상이 더 심해질 것이 뻔하다. 중차대한 예산안 심사를 정치적 흥정거리로 전락시키는 ‘소소위’ 관행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실제 지난해 소소위 과정이 그랬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요구로 지역화폐 예산을 살리는 대신 여당인 국민의힘이 요구한 법인세율 인하는 수용됐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소소위에서는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연구·개발(R&D) 예산, 검찰 특수 활동비, 원전·재생에너지 예산, 새만금 사업 등이 다뤄질 전망이다. 여기서 원전 예산은 지키되 야당이 요구하는 항목은 늘려주는 식의 주고받기로 적당히 절충해 심사를 끝낼 것으로 예상된다. 그 틈에 논란이 되고 있는 ‘선심성’ 예산도 결국 눈감아 줄 우려도 크다.
내년도 나라빚이 1200조원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돈을 써야 할 곳은 많은 데 세수는 되레 줄어드는 상황인 만큼 나라살림은 규모있게 해야 한다. 한 푼의 돈이라도 아끼고 꼭 필요한 곳에 예산을 투입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선심성 예산이 발을 붙일 공간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도 여야는 대구-광주 고속철도 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는 등 내년 총선을 겨냥한 포퓰리즘적 돈풀기에 골몰하고 있다. 당장은 득표에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배가 고프다고 씨암탉을 잡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나라 살림이 어려울수록 예산안 심사는 더 투명하고 꼼꼼하게 진행돼야 한다. 밀실에서 여야가 어물쩍 타협하고 정치적 이득만 챙기는 소소위 관행을 언제까지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다. 예산의 주인은 국민이다. 주인도 모르게 예산안을 심사하고 결정하는 비정상적인 행태는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 국익을 먼저 생각하는 여야의 ‘통큰’ 정치와 협상력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