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며 고강도 혁신을 예고한 인요한 혁신위원회가 발족 한 달을 맞았다. 첫날부터 당에 쓴소리를 하며 주목받았지만 영남 중진·윤핵관 험지출마론 등이 벽에 부딪혀 공허한 메아리뿐이다. 급기야 일부 혁신위원이 사의를 표명하고 조기 종료론까지 나오는 마당이다. 혁신위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국민의힘이 환골탈태하겠다며 만든 것이다. 국민눈높이에 맞춰 혁신하겠다고 한 약속이 무색하다.
시작은 좋았다. 이준석 전 대표와 홍준표 대구시장의 당윤리위 징계 철회를 일주일 만에 이끌어내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지도부·중진·대통령 측근 불출마·험지출마 권고에 당사자들이 반발해 세 과시나 침묵으로 일관한 것이다. 이어진 혁신안도 마찬가지다. 2호(불체포특권 포기·현역 의원 하위 20% 공천 배제 등)·3호(비례대표 당선권 순번 청년 50% 공천 의무화 등)·4호(금고 이상 전과자 공천 배제 등) 혁신안 모두 진전이 없다. 법 개정이 필요하거나 공천관리위원회가 결정할 일이라며 미루는 상황이다. 김기현 대표가 전권을 위임한다고 했지만 모양만 취한 들러리라는 자조가 나오는 이유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의 행보도 애초 ‘대통령에게 할 말은 하겠다’는 결연함과는 거리가 멀다. 험지출마론이 막히자 ‘윤심’을 끌어들이기까지 했다. 선거 패배 원인으로 지목된 수직적 당정관계를 끌어들인 것 자체가 자가당착이다. 더구나 “대통령은 나라님”이라며 둘의 관계개선에 개입 불가 입장으로 선회했다. 반어법적 뉘앙스가 있더라도 스스로 한계를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오죽하면 국민의힘 소속 김태흠 충남도지사가 자신을 찾아온 인 위원장에게 “중진들과 윤핵관들이 혁신위 이야기를 적극 받아들이지 않고 시간 끈다면 논개처럼 다 끌어안아 버려라”는 주문까지 했겠는가.
혁신위는 통합과 희생을 화두로 보선에 대패한 국민의힘에 활력을 불어넣은 게 사실이다. 국민적 기대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이에 부응하기는커녕 거꾸로 가는 모양새다. 23일 전국위원회에서 경찰 출신 경북 재선 김석기 의원을 5·18 폄하 발언 등으로 사퇴한 김재원 전 최고위원의 후임으로 선출했다. 이만희 사무총장에 이어 당 지도부에 ‘경찰 출신 대구·경북 의원’이 또 들어간 것이다. 혁신위가 희생을 강조하고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다. 민심은 보선 당시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국민의힘은 혁신위의 성공이 민심에 가까워지는 길임을 깨닫고 남은 한 달 동안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 혁신위도 초심으로 돌아가 대통령실은 물론 누구 눈치 볼 것 없이 쇄신안을 내놓고 지속적으로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