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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색소포니스트 스티븐 뱅크스 “흑인이란 정체성은 내 음악의 랜드마크” [인터뷰]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 초청
오는 19일 첫 내한 리사이틀
색소포니스트 스티븐 뱅크스는 “흑인으로의 정체성은 제 음악의 중요한 이정표”라고 말했다. [세종솔로이스츠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흑인으로의 정체성은 제 음악의 중요한 이정표예요.”

1993년생, 주민 10명 중 2명이 흑인인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출신의 클래식 음악가 스티븐 뱅크스. 그의 행보는 독특하다. 유달리 귀한, ‘클래식 색소폰계’가 배출한 촉망받는 신예 음악가이면서 백인 중심의 클래식계에 등장한 흑인 음악가라는 ‘정체성’이 뱅크스의 음악 활동의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뱅크스의 첫 한국 방문은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HIC ET NUNC! Music Festival. 9~22일)의 초청으로 성사됐다. 그는 폐막 연주회 격인 색소폰 리사이틀(11월 19일, 예술의전당)로 한국 관객과 만난다. 페스티벌 측은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를 받은 뱅크스는 현재 가장 주목받는 색소폰 연주자”라며 “음악 교육과 연주 현장에서 다양성과 포용을 지지하는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어 한국 무대에 소개하게 됐다”고 귀띔했다.

이번 공연에서 그는 폴 크레스턴의 소나타, 데메르스망과 이투랄데, 클라리넷과 첼로로 자주 연주되는 슈만의 ‘환상 소곡집, Op. 73’을 들려준다. 직접 작곡한 ‘컴 애즈 유 아 (Come As You Are, Quartet Ver.)’는 체임버 오케스트라용으로 새롭게 편곡, 세종솔로이스츠와 함께 세계 초연한다.

뱅크스의 음악적 정체성은 그의 뿌리에서 나온다. 아프로-아메리칸(미국에 살고 있는 흑인)으로 클래식 음악을 하고 있는 그는 연주자이자 작곡가로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이번 리사이틀에서 들려줄 그의 창작곡 ‘컴 애즈 유 아’도 흑인 음악가로의 정체성에서 출발했다.

내한을 앞둔 스티븐 뱅크스는 헤럴드경제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내 가족(어머니와 세 여자 형제들)에게 바치는 곡, 나의 성장 배경이 내가 음악과 삶 전반을 이해하는 데 미친 영향에 바치는 곡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몇 년 동안 해오던 중, 이 곡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색소포니스트 스티븐 뱅크스는 “흑인으로의 정체성은 제 음악의 중요한 이정표”라고 말했다. [세종솔로이스츠 제공]

‘컴 애즈 유 아’는 뱅크스가 색소포니스트 최초로 영 콘서트 아티스트 수전 워즈워스 국제 오디션에서 1위를 차지할 당시 선보인 곡이다. 이 곡은 그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클래식 음악가로 있을 땐 동료들 대다수가 흑인 문화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나의 연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거의 알지 못해요. 이와 함께 노스캐롤라이나 출신 흑인으로서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클래식 연주자와 작곡가로서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죠. 전 두 세계를 분리하고 각각의 세계에 들어갔을 때 마치 다른 한쪽이 없는 것처럼 사는 것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으며 살아왔어요.”

한 사람이 가진 이중적 정체성은 그의 음악으로 승화됐다. 뱅크스는 “미국인으로의 정체성과 흑인으로의 정체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며 “‘컴 애즈 유 아’는 나의 음악적 개성을 형성해가는 여정에서 매우 중요한 랜드마크 같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지난 몇 년간 미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에서 여성, 인종 등 다양성에 대한 논의는 뜨거운 화두였다. 뱅크스는 그 때마다 ‘행동하는 음악가’로 활동했다.

2017년엔 테드(TED) 컨퍼런스를 통해 여성과 유색인에 대한 제도화된 차별을 타파하기 위한 동태적 접근법을 발표했고, 흑인 클래식 작곡가들의 역사에 대한 글과 강의를 하기도 했다. 하프 코리안이자, 아프로-아메리칸인 바이올리니스트 랜들 구스비와 함께 클래식 음악계를 포함한 다양한 환경에서 흑인으로서 겪는 경험의 차이를 논의하는 ‘경청하는 법 배우기’(Learning to Listen)라는 제목의 라운드 테이블을 연 것도 주목할 만한 행보였다.

색소포니스트 스티븐 뱅크스는 “흑인으로의 정체성은 제 음악의 중요한 이정표”라고 말했다. [세종솔로이스츠 제공]

사실 클래식 음악계에서 유색 인종은 여전히 소외계층이다. 그는 “학창 시절엔 늘 다른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예술 장르를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도 여러 면에서 그렇게 느낄 때가 있다”며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싶었고 그들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흑인 클래식 작곡가를 탐구하는 것은 그의 뿌리를 찾으며 자신의 음악적 방향성을 다져가는 길이기도 했다.

“조제프 볼로뉴(Joseph Bologne, 프랑스의 흑인 혼혈 작곡가)라는 작곡가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울었어요. 그리고 제가 기쁜 마음으로 속할 수 있는 흑인 클래식 음악가들의 계보가 있다는 사실에 더 큰 자부심을 갖게 됐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 계보에 대해 더 배우고자 하는 호기심과 그것을 더 알리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뱅크스가 그래미상 수상 작곡가 빌리 차일즈에게 위촉한 협주곡은 아프리카계 흑인들의 경험을 다룬다. 이 곡에 대해 그는 “색소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은 미국에서 흑인으로 살아온 나와 빌리 차일즈의 경험을 통해 미국 흑인 디아스포라의 패러다임을 기록하기 위한 교향시”라고 했다. 곡은 독특하다. 그는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가 알로이시우스 베르트랑의 시 세 편을 세 개의 악장으로 나눈 것처럼 흑인 시인의 시를 소재로 했다”며 “어떤 특별한 이야기를 담을 것인가, 어떻게 전개할 것인지의 내러티브를 가장 깊이 논의했다”고 했다. 곡은 나이아라 와히드, 클로드 맥케이, 마이아 앤절로 같은 시인들에게서 영감을 받아 작곡됐다.

“음악 활동을 통해 저는 최대한 많은 사람이 음악 안에서 자신을 보고, 음악과 보다 개인적인 관계를 맺으며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해주고 싶어요. 다양한 해석과 창작이 있어야 사람들과 깊은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음악적 이야기도 다양해질테니까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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