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초월 양국 음악가 한 무대
한미 동맹 70주년 기념 ‘블루하우스 콘서트 II’의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과 피아니스트 신창용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
무대와 객석 사이의 거리는 불과 2m. 미국 출신의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52)은 얼굴 가득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눈빛으로 관객과 교감하기 시작했다. 길 샤함과 한국의 피아니스트 신창용(29)이 연주하는 포레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제1번 A장조, Op13’. 세대와 국적을 뛰어넘어 만난 두 사람의 연주는 가을 날 따뜻한 온기를 춘추관으로 옮겨왔다.
길 샤함과 신창용은 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2023 블루하우스 콘서트 II’에서 100명의 관객과 만났다. 이날 공연은 정전협정과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70주년을 기념해 한국과 미국을 대표하는 음악가들이 꾸민 자리였다. 지난 4일 소프라노 신영옥과 피아니스트 노먼 크리거가 함께 한 첫날 연주에 이어 이날 길 샤함과 신창용,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하모니카 연주자 박종성의 무대로 두 나라의 오랜 우정을 나눴다.
이번 공연을 통해 처음 호흡하는 길 샤함과 신창용은 미국의 거장과 신진 ‘K-클래식’ 연주자의 만남이라는 특별한 의미가 더해졌다. 길 샤함은 음악 시상식 그래미와 에이버리 피셔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이고, 신창용은 지난 2018년 한국인 최초로 미국 지나 바카우어 국제 콩쿠르에 1위에 오른 차세대 음악가다.
‘2023 블루하우스 콘서트 II’는 대중과 가까이에서 호흡하는 클래식 음악회라는 점을 살려 보다 친근한 선곡으로 관객과 만났다.
밝고 경쾌한 바이올린과 피아노 선율로 시작하는 모차르트의 ‘론도 다장조 K.737’로 즐거운 출발을 알린 뒤, 신창용이 연주하는 슈베스트 ‘송어’와 모차르트의 ‘터키 행진곡’이 이어졌다. 특히 리스트가 편곡한 ‘송어’에선 왼손으로 묵직하게 중심을 잡으면서, 오른손으로는 화려하고 영롱한 음색으로 압도적인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아르카디 볼로도스 편곡의 ‘터키 행진곡’에선 장난감 병정이 건반 위를 노니는 듯한 경쾌한 기교로 음악의 재미를 살렸다.
길 샤함과 신창용이 함께 한 포레의 연주는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섬세하고 단단한 바이올린 선율은 햇살처럼 눈부시고 선명했고, 바이올린과 사랑을 나누듯 대화를 이어간 피아노는 햇살이 부서지는 맑은 시내처럼 유유히 흘렀다. 두 사람은 단 두 번의 리허설로 오랜 시간 만나온 것처럼 온전한 교감의 무대를 들려줬다.
이어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15인조 현악 앙상블과 하모니카 연주자 박종성의 무대가 이어졌다.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 K.136’으로 시작한 이 무대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저력을 여실히 보여줬다. 현악기들이 일제히 활을 내리 긋는 순간, 매끈하게 조화를 이룬 소리가 기분 좋게 퍼졌다. 첼로와 더블베이스의 저음이 풍성하고 안정감 있게 받쳐주면 그 위로 중고음의 현악이 유려한 선율로 우아하게 미끄러져 활기찬 속도로 프레스토 악장까지 달려갔다.
박종성과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함께 한 ‘새야 새야’ 무대는 가장 뜨거운 박수와 함성을 받았다. 우리 민요를 연주하는 하모니카는 태평소와 아쟁을 오가는 국악기 소리를 내며 한 음 한 음마다 애절한 감정을 실어보냈다. 앙코르로 이어진 바흐의 오케스트라 모음곡 3번 중 ‘아리아’에서 하모니카는 ‘팔색조’ 자체였다. 악단 속 여러 목관악기 소리가 한 명의 연주자, 하나의 악기에서 만들어지는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잊지 못할 명장면도 나왔다. 길 샤함과 신창용은 따뜻한 선율로 우리 가곡 ‘마중’을 앙코르로 연주하자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켄터키 옛집’, ‘매기의 추억’ 등 미국 민요 모음으로 화답했다. 이후 무대가 홍난파의 ‘고향의 봄’을 이어가자 관객들은 잊었던 노랫말을 꺼내 부르며 감정을 공유했다. 클래식 스타 신창용의 20대 팬부터 머리가 희끗한 70대 관객까지 모두 공감하는 세대 통합의 시간이었다.
청와대 춘추관 2층에 있는 브리핑실에서 처음 열린 클래식 음악회는 작은 공간의 강점을 최대한 살렸다. 대형 공연장에선 마주하기 힘든 연주자의 생생한 숨소리와 표정까지 턱 밑에서 마주했다. 오선지의 음표에 따라 음악을 발산하는 연주자들의 몸짓이 ‘소수의 관객’ 사이로 안착해 특별한 교감이 완성됐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