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자세 낮춘 행보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3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인 데 이어 1일 주재한 비상경제대책회의는 참석 범위를 크게 늘려 ‘타운홀 미팅’ 형식으로 진행했다. 최근 윤 대통령이 강조하는 ‘민생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낮은 자세로 각계 각층의 국민 목소리를 경청하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윤 대통령의 이 같은 자세 변화는 여러 면에서 반갑고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꽉 막힌 여야 간 경색 국면을 해소하고 소통과 협치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국회 시정연설에서 보인 윤 대통령의 변화는 특히 주목할 만했다. 지난 두 차례 시정연설은 물론 평소와도 사뭇 달랐다. 연설을 시작하면서 여야 순으로 각 당 대표를 호명하던 관례를 깨고 야당 대표들을 앞세우며 예우했다. 연설 도중 야당을 향해 “부탁드린다”는 말도 다섯 차례나 했다. “협력이 절실하다”는 정도의 지난 연설과는 그 온도 차가 뚜렷하다. 물론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은 단 한 마디도 담지 않았다. 달라진 모습은 이뿐만이 아니다. 잠깐이지만 이재명 대표와 한자리에 앉아 대화를 했고 연설이 끝난 뒤에는 야당 의석을 돌며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여야 원내대표단 및 상임위원장단과는 간담회를 가진 데 이어 오찬까지 함께했다. 그 과정에서 오간 대화에 대해선 “잘 기억해 국정에 반영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윤 대통령이 이처럼 몸을 바짝 낮춘 것은 지난달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에는 변화가 필요했던 게 사실이다. 국정운영 방향에는 대체로 동의하지만 추진 과정에서 ‘고압적’이고 ‘독선적’이며 ‘일방통행’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결국 여당의 패배가 윤 대통령의 변화로 이어졌다는 것인데 선거의 결과는 아팠지만 몸에는 좋은 약이 된 셈이다.
지금 우리의 안팎 환경은 풍전등화의 형국이다. 고물가와 고금리, 고유가의 3고(高)로 민생의 고통은 극심해지고 있다. 게다가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출산율 저하로 성장잠재력마저 곤두박질치고 있다. 한반도 주변 정세도 예사롭지 않다. 그야말로 경제와 안보의 복합위기 상황이다. 이런 때일수록 더 과감하고 용기 있는 변화로 위기를 헤쳐나가야 하는 게 국가지도자의 역할이다. 만시지탄이나 이제라도 윤 대통령이 달라진 것은 다행이다. 야당과의 대화의 문을 계속 열어두는 등 그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할 것이다. 정치권도 함께 변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먼저 협치의 손을 내민 만큼 야권도 적극 호응해야 위기극복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