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31일 윤석열 대통령 시정연설을 시작으로 2024년도 예산안 심사에 본격 착수했다. 이번 예산안은 건전재정과 약자복지에 방점을 두고 있다. 윤 대통령의 이날 시정연설에서도 이러한 기조는 분명히 드러났다. 윤 대통령은 “정부의 재정운용 기조는 건전재정”이라며 “물가안정과 국가신인도 유지, 특히 미래세대에 어려운 빚을 넘겨주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3조원의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된 재원은 취약계층과 사회적 약자 보호에 더 투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건전재정과 민생,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쉽지 않은 상황을 설명하고 국회 협조를 당부한 것이다.
정부의 예산 기조는 그 방향이 맞다. 하지만 국회 심의 과정은 순탄치 않아 보인다. 657조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은 올해 본예산보다 2.8% 정도 늘어난 긴축적 재정이다. 이는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사실상 마이너스 편성이라 할 수 있다. 올해 세수 부족분이 60조원에 이르고 내년에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나라 빚을 늘릴 수도 없으니 긴축예산을 편성한 것이다.
불요불급한 지출을 최대한 줄이고, 재정을 적재적소에 투입해 나라살림 효율을 극대화하려면 무엇보다 여야 협치가 기반이 돼야 한다. 그러나 정치권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아 보인다. 당장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어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이 난무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게다가 예산안을 바라보는 여야의 관점 또한 극명하게 다르다. 정부와 여당은 건전재정 기조에 대한 협조를 당부하지만 민주당은 적어도 총지출의 6% 이상은 증액을 해야 한다는 ‘확장 재정’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 차가 자칫 정쟁으로 비화되면 예산 심의는 겉돌고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미 연구·개발(R&D)예산을 둘러싸고 일부 표면화되고 있다. 애초 정부 취지는 투자 대비 성과가 적은 비효율적 예산 집행을 줄여보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미래 성장동력 기초연구예산을 줄이려 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도 R&D를 통한 미래 동력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한 만큼 정부 여당도 재검토가 요구되는 대목이기는 하다. 하지만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검토할 사안이지, 서로 목소리 높여 싸운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여야의 자중과 양보가 절대 요구되는 시점이다.
내년도 예산안 심의는 12월 2일까지 본회의에서 처리돼야 한다. 이를 끝으로 정기국회가 마무리되고 사실상 21대 국회도 막을 내리게 된다. 정쟁과 반대를 위한 반대로 예산 심의가 파행을 겪는다면 21대 국회 전체의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유종의 미를 거둬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