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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사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 “브리튼 음악으로 전쟁을 다시 본다” [인터뷰]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 초청
다음 달 9일 강연ㆍ14일 공연
‘영드’(영국 드라마)에서 걸어나온 듯한 이지적인 분위기와 청아한 목소리.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59)는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성악가다. 그의 별칭은 많다. ‘노래하는 인문학자’, ‘박사 테너’는 보스트리지에게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수사다. [세종솔로이스츠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학자였을 때 한 가지에 집중하고 분석했던 습관과 훈련은 음악가로의 삶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영드’(영국 드라마)에서 걸어나온 듯한 이지적이고 서늘한 분위기, 거기에 더해진 청아한 목소리.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59)는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성악가다. 그의 별칭은 많다. ‘노래하는 인문학자’, ‘박사 테너’는 보스트리지에게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수사다.

보스트리지의 별칭은 그의 독특한 이력에서 생겨났다. 그는 29세가 돼서야 성악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역사학 박사로 강단에 서다가, 남들보다 늦게 음악 공부를 시작했다. 보스트리지는 “직업 음악가가 될 줄은 몰랐지만,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였다”고 회상한다.

“세 살 때부터 서른 살까지 학계의 울타리 안에 있었어요. 그 시간을 제외하고 남은 인생의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할 지 도무지 알 수 없었죠. 양쪽 다 기웃거리다가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잃어버린 세월들을 채울 수 있는 것이 노래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음악을 시작한 때는 학자로의 길을 성실히 걷던 무렵이었다. 스물아홉 살이던 1993년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1925~2012)를 만나 그의 삶은 예측한 적도 없었던 길로 접어들었다.

이안 보스트리지 [세종솔로이스츠 제공]

오랜만에 한국 방문을 앞둔 이안 보스트리지는 헤럴드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오페라 무대에 서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이 이 길에 들어서게 만들었다”며 “그 선택을 후회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물론 불안과 두려움이 없던 것은 아니다. 그는 “전업 성악가가 됐을 땐 내 삶에 ‘학문’이라는 큰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학자로서 살아온 오랜 시간을 지금은 음표로 펼쳐낸다. 케임브리지대에서 철학(석사), 옥스퍼드대에서 역사(박사)를 공부했던 날들이 “결국 음악 안에서도 이뤄지고 있다”고 말한다.

“음악가로서 제가 조금 다른 게 있다면 글을 쓸 때 비교적 자유롭다고 느낀다는 점이에요. 학자적인 관점에서 집필할 때보다 예술가로서 훨씬 폭넓은 글을 쓸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죠. 학자였을 때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고 분석했던 습관과 훈련 역시 지금 음악가로서의 삶에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지난 2004년 한국을 처음 찾았고, 2018년엔 서울시향의 ‘올해의 음악가’로 선정돼 무려 일곱 번이나 한국 관객과 만났다. 보스트리지의 이번 한국 방문은 다음 달 9~22일 열리는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에 초청으로 성사됐다. ‘힉엣눙크’는 ‘여기 그리고 지금’이라는 의미의 라틴어다.

그는 “대한민국의 월드컵 경기가 있던 바로 다음 날이 한국에서 첫 공연 날이었다”며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불렀는데, 그날의 관객들이 슈베르트의 작품에 큰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세계 어디에도 한국처럼 음악에 목말라하고 열광하는 젊은 층으로 가득한 청중은 없어요. 한국은 정말 아름다운 나라예요. 몇 년 전에는 통영의 훌륭한 홀에서 공연을 했는데, 연주홀은 물론이고 반짝이는 바다 위의 무수한 푸른 섬까지 아름다웠다는 기억이 남아있어요.”

이안 보스트리지 [워너클래식스 제공]

이번 내한에선 ‘음악, 인문학으로의 초대’라는 주제로 한 강연(9일, 거암아트홀), 세종솔로이스츠와 함께 하는 ‘일뤼미나시옹’ 공연(14일, 예술의전당)으로 관객과 만난다. 그가 강연과 공연에서 집중하는 것은 ‘브리튼과 전쟁의 연관성’이다.

보스트리지는 “브리튼은 20세기를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작곡가”라며 “경력 초기부터 다양한 사회적 주제를 작품으로 담아냈다. 나 역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을 보면서 다양한 시각으로 그 현상을 바라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축제의 메인 콘서트에서 들려줄 브리튼의 ‘일뤼미나시옹’은 랭보의 산문 시집 ‘일뤼미나시옹’(Les Illuminations)에서 발췌한 9개의 산문시를 관현악으로 만든 곡이다. 보스트리지는 “브리튼은 독특한 방식으로 랭보를 조명한다”며 “(뜻을 몰라도) 소리 자체로 즐길 수 있는, 즉각적으로 이해되고 마음을 끄는 소리의 세계를 창조했다”고 말했다.

“‘일뤼미나시옹’은 환각적 이미지로 가득해요. 관능적이고, 재미있으면서, 어둡기도 하죠. 인간사를 거울처럼 온전히 담고 있는 작품이에요. 규모가 큰 음악이지만 슈베르트나 슈만 못지않게 세세한 부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요. 오랜 시간 여러 단체와 이 곡을 연주했어요. 제 목소리가 예전보다 더 어둡고 커졌는데 그런 점이 음악에도 변화를 줄 것 같아요.”

늦은 출발이었지만, 성취의 시간은 빨리 왔다. 성악가의 길을 걷자마자 1993년 런던 위그모어홀에서 데뷔했고, 이후 클래식 앨범으로 미국 그래미상을 세 번이나 수상했고, 15번이나 후보에 올랐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는 전 세계 베스트셀러이기도 하다. 그에게 음악은 “존재의 본질, 죽음의 필연성, 개인의 정체성, 삶의 본질 등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삶의 많은 부분”을 내어준다.

“음악가로서의 인생은 단순히 내 목소리와 씨름하는 것만은 아니에요. 꾸준한 일관성와 나에 대한 확신과의 싸움이에요. 저 자신의 정체성과 무대에서 전달하는 음악 예술의 정체성을 조화롭게 전달하는 연주자라는 것을 기억해주길 바랍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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