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란도트 100번도 넘게 선 작품
데뷔 20년 만 한국무대 기적같아”
“드디어 한국에서 데뷔를 하게 돼 기쁩니다.”
전세계에서 가장 바쁜 오페라 가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테너 이용훈(사진)이 마침내 고국 무대에 선다.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10월 26~29일, 세종문화회관) 무대로 한국 관객들과 만나는 것이다. 그는 최근 기자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프로에 데뷔한지 20년이 됐는데, 한국 무대에 한 번도 서지 못했다”며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 기적처럼 놀랍다”고 말했다.
2010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돈 카를로’로 데뷔한 이용훈은 영국 로열 오페라하우스, 빈 국립오페라극장, 뮌헨 오페라 하우스, 밀라노 스칼라, 파리 오페라 극장 등 세계 최고 무대를 누볐다. 서정적 음색(리리코 테너)과 힘 있는 목소리(스핀토 테너)가 더해진 ‘리리코 스핀토 테너’로, ‘신이 내린 목소리’라는 수사가 따라 다닌다.
이용훈의 한국 무대는 지난해부터 화제였다. 그는 당초 내년 8월 예술의전당이 기획한 오페라 ‘오텔로’를 통해 데뷔 예정이었으나, 그 사이 서울시오페라단의 ‘투란도트’와 먼저 만나게 됐다. 이용훈은 수도 없이 많은 ‘투란도트’ 무대에 섰다. 2021-2022 시즌 호주 오페라 공연, 미국 메트로폴리탄오페라 공연, 2022-2023 시즌 영국 로열오페라 코벤트가든 공연, 독일 드레스덴 젬퍼오페라 공연까지 셀 수 없다. 이용훈은 “지금까지 ‘투란도트’에 110~120회 정도 출연했다”고 말했다.
이번 오페라에서도 이용훈은 왕자 칼라프 역을 맡아 소프라노 이윤정(투란도트), 서선영(칼라프의 시녀 ‘류’)과 호흡을 맞춘다. 연출은 ‘연극계 거장’ 손진책이 맡았다. 작품의 중요한 특징은 결말의 재구성이다. 손 연출가는 칼라프를 위해 목숨을 바친 시녀 ‘류’에게 주목했다. 푸치니의 마지막 작품인 ‘투란도트’는 미완의 오페라다. 3막에 등장하는 ‘류’의 죽음까지만 작곡했다. 손 연출가의 ‘투란도트’에선 류의 희생을 되새기며 결말을 비틀었다.
세계 무대에서 다양한 오페라의 주역이 된 만큼 이용훈에게도 ‘연출자의 해석’에 따라 달라지는 ‘레지테아터’(Regietheater·연출가가 원작을 재해석해 배경, 캐릭터, 결말을 바꾸는 것)에 익숙하다.
그는 그러나 “‘투란도트’는 어느 곳에서나 클래식한 오페라로 존재한다”며 “뉴욕 메트로폴리탄이나 로열오페라하우스와 같은 큰 극장에서 오페라를 바꾸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예술계의 흐름이 ‘새로운 시도’를 독려하는 만큼 ‘투란도트’ 역시 새로운 내용을 입히는 움직임이 나온다. 이용훈이 최근 선 드레스덴 젬퍼오페라 공연이 그랬다. 그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차용, ‘투란도트 게임’이라는 방식으로 오페라를 구성한 작품이었다”며 “그러한 접근이 성공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는데, 결론은 대성공이었다. 더불어 ‘오징어게임’이 전 세계에서 정말 유명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웃었다.
새로운 결말을 향해갈 ‘투란도트’에 대해 손 연출가는 “시녀 류의 조건 없는 희생과 사랑을 통해서 ‘죽음의 도시’가 ‘삶의 도시’로 바뀌고 온 나라의 민중이 행복해지는 세상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