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보단 전통…이달 말 첫 내한
1996년생 스물일곱 살의 ‘젊은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 [빈체로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지휘계의 아이돌’, ‘천재 지휘자’…. 1996년생 스물일곱 살의 ‘젊은 지휘자’에게 따라다니는 별칭이 많다. 클라우스 메켈레(27)는 최근 몇 년 새 전 세계에서 가장 두각을 보이는 지휘자다.
그의 이력을 열거하면 끝이 없다. 단 한 번의 무대로 노르웨이 오슬로 필하모닉 상임지휘자에 발탁돼 2020년부터 악단을 이끌고 있다. 메켈레가 스물 네 살때였다. 2021년엔 프랑스 파리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 됐다.
지난해엔 네덜란드 로열 콘세트르허바우 오케스트라(RCO)의 예술 파트너로 지목, 2027년부터 5년간 수석 지휘자를 맡는다. 이 악단의 유일한 한국인 단원이자, 제2바이올린 수석인 이재원은 “(수석지휘자의) 공석이 길어 (메켈레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며 “지난해 시즌부터 메켈레의 지휘 아래 오케스트라가 점점 단합해 가는 기분이다. 단원 모두 굉장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든 기록은 ‘역대 최연소’다. 단숨에 클래식 음악계의 ‘아이돌’로 떠올랐고, ‘어린 나이’와 ‘뛰어난 외모’는 세간의 관심사가 됐다. 자신의 이름 옆에 따라다니는 ‘뜨거운 수사’를 의식한듯 젊은 지휘자는 불필요한 치장에 대한 찬사는 거부한다. 그는 ‘젊은 패기’로 파격적 행보를 보이지도 않는다. 메켈레의 걸음은 ‘정통’의 길로 향한다. 무대 위에선 ‘백발의 명장’들도 선택하지 않는 고전적 수트를 입고 선다.
1996년생 스물일곱 살의 ‘젊은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 [빈체로 제공] |
메켈레가 한국에 온다. 그의 내한 일정은 몇 번이나 미뤄졌다. 2021년엔 오슬로 필, 2022년엔 파리 오케스트라와 함께 올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가 발목을 잡았다. 그는 헤럴드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팬데믹으로 두 번의 내한을 하지 못한 것은 진심으로 아쉽고 죄송한 일이었다”며 “그 때의 아쉬움 때문에 곧 있을 내한 공연에 대한 기대감이 배가됐다”고 말했다. 메켈레는 오는 28일과 30일 오슬로 필하모닉과 함께 한국 관객과 만난다.
메켈레는 ‘지휘 강국’ 핀란드 출신으로, 시벨리우스 음악원의 요르마 파눌라(93) 사단이다. 파눌라는 명지휘자를 길러낸 핀란드 ‘음악의 대부’다. 에사 페카 살로넨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음악감독을 비롯해, 피에타리 잉키넨 KBS 교향악단 음악감독과 오스모 벤스케 서울시향 전 감독의 스승이기도 하다.
‘지휘의 꿈’을 키운 것은 고작 일곱 살 때였다. 오페라 ‘카르멘’에 합창단으로 함께 한 무대를 통해 지휘자라는 직업에 대한 선망을 품었다. 그는 “당시 내 눈엔 지휘자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때부터 지휘의 꿈을 꿨다”고 말했다. 요르마 파눌라와의 첫 만남은 12세 때였다.
“전설적인 ‘요르마 파눌라’와 공부할 수 있는 행운이 그 무렵 찾아왔어요. 핀란드가 지휘 강국, 음악 강국으로 자리잡은 데에는 파눌라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어요. 그의 수업에서 가장 독특하면서 멋진 점은 매주 오케스트라를 직접 지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었어요.”
1996년생 스물일곱 살의 ‘젊은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 [빈체로 제공] |
파눌라와의 첫 만남 이후 15년, 그는 세계적인 지휘자가 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포디움에 서는 것은 제 옷을 입은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파눌라는 결코 ‘이렇게 지휘해라, 저렇게 지휘하라’고 직접적으로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대신 우리가 음악에서 어떤 것을 찾아내야 하고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지, 각자가 추구하고 만들어가고자 하는 음악적인 방향에 초점을 맞췄어요. 사람들 앞에 서서 지휘를 하며 내가 어떻게 지휘를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깨달았어요.”
지휘 수업 이후엔 파눌라의 조언을 듣고, 제자들끼리 ‘비평의 시간’을 갖는다. 실전에서의 경험과 그 경험을 반추하며 토론하는 수업이었다. 메켈레는 파눌라와의 수업 방식과 가르침이 지금까지도 자신의 지휘 활동에 큰 영향을 줬다고 말한다.
메켈레가 현재 가장 주목받는 지휘자로 자리한 것은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럼과 정통성, 설득력 있는 해석 때문이다. 음악을 대할 때는 철저하게 작곡가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한다. 그는 “지휘자는 작곡가를 대신해 그의 음악을 현실로 가지고 오는 ‘작곡가를 위한 일꾼(servant)’”이라고 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새롭거나 파격적인 해석도 모두 악보에 적힌 작곡가의 의도를 기반으로 창조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지휘자가 음악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는 작곡가가 악보에 적어 남겨뒀어요. 때문에 전 악보에 가장 먼저 몰두하는 편이에요.”
1996년생 스물일곱 살의 ‘젊은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 [빈체로 제공] |
단원들과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선 “서로에 대한 존중과 진실함, 음악적 준비”를 강조했다. 특히 “지휘자로서 준비된 자세는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는 “리허설에선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모든 해석과 움직임에 근거가 있어야 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확실히 표현해야 한다”고 했다.
이번 내한 공연에선 시벨리우스의 곡으로 꽉 채웠다. 판란드 작곡가 시벨리우스는 메켈레에게 특별한 존재다. 메켈레는 “시벨리우스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건축가’”라며 “그의 오케스트레이션은 굉장한 균형을 갖추고 있다. 시벨리우스의 작품을 듣고 있으면 너무나 아름다운 감성과 서사가 느껴지는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단 한 번도 감정이 건축적인 부분을 침범하는 일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틀 간 내한 공연의 프로그램은 각각 다르다. 30일 서울 공연에선 시벨리우스의 ‘투오넬라의 백조’, 바이올린 협주곡, 교향곡 5번을 연주한다. 경기 고양아람누리(28일) 공연에선 바이올린 협주곡과 교향곡 2번을 들려준다. 바이올린 협연은 네덜란드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재니 얀센이 맡았다.
메켈레는 “오슬로 필하모닉은 풍부하고 깊은 사운드의 ‘강한 오케스트라(Strong Orchestra)’다. 이번 프로그램은 오슬로 필하모닉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음악”이라며 “100여년 전 시벨리우스 본인이 직접 오슬로 필하모닉을 여러 차례 지휘했기 때문에 그 전통도 무시할 수 없다. 이들(오케스트라)은 시벨리우스를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지 이미 몸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