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연금제도가 47개국 중 42위로, 최하위권이라는 해외 전문기관의 평가가 나왔다. 자산운용업체 머서와 글로벌 투자전문가협회가 발표한 ‘2023 글로벌 연금지수(MCGPI)’에 따르면 한국의 연금제도는 100점 만점 중 51.2를 기록, 중국(55.3), 남아프리카공화국(54), 인도네시아(51.8)보다도 못하다.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 운용관리, 적정성 등을 평가한 결과로, 특히 납입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을 의미하는 적정성은 꼴찌다. 연금개혁을 최우선과제로 내세우면서도 할 일은 하지 않는 정부와 국회의 무책임이 낳은 성적표다.
보고서는 적정성(39점)에선 최하위, 지속 가능성(52.7) 27위, 운용관리 부문(68.5)은 34위로 한국의 연금제도를 C등급으로 분류했다. ‘유용하지만 위험성과 약점이 존재하고,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연금제도의 실효성과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앞서 맥킨지도 우리나라 연금 소득 대체율이 47%에 불과해 충분한 노후대책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소득대체율 58%, OECD 권고안 65∼75%에 한참 못 미치는 게 우리 현실이다.
국민연금은 세대 간 갈등이 큰 사안이다. 기금이 고갈되면 미래 세대는 더 내고 덜 받는 사태가 벌어지기에 하루빨리 현실성 있게 고쳐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다. 그런데 앞서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는 ‘지금처럼 받되 더 늦게 받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모두 18개나 되는 시나리오를 내놨다. ‘돈은 더 내고 받는 돈은 같다’는 게 말이 되냐는 비판이 거세자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시나리오도 추가해 선택지가 더 늘어났다. 전문가그룹이라면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기대치에 부응하는 최적의 권고안을 압축해 내놓아야 마땅하다. 수십가지 메뉴를 내놓고 고르라는 건 무책임한 처사다. 이러니 정부도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이달 말까지 국민연금 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지만 보험료율 인상 등 구체적 개편안 얘기가 나오지 않고 있다. 구조개혁 방향만 제시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니 그동안의 논의가 원점으로 돌아가는 거나 마찬가지다.
국회도 다르지 않다. 연금특위 내 공론화위 구성도 말뿐, 진전이 없다. 결론을 내기까지 통상 3개월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국회 임기 내 연금개혁안은 물 건너 갈 공산이 크다. 모두 책임지기보다 표심을 의식해 미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사이 국민 부담만 커진다. 개혁 논의가 이뤄진 5년 전 사안이 마무리됐다면 현행 보험료율(9%)에서 7.02%포인트만 올리면 될 일이 이젠 8.86%포인트를 인상해야 가능하다. 이대로 가면 기금 소진 시계는 더 빨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