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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표 하나 하나가 사람의 얼굴”…피아니스트 김도현 마스터클래스 가보니
‘음악 꿈나무’에 일타강사 비법 전수
“당나귀 탄 돈키호테” 생생한 비유
창의적 해석으로 나만의 음악 강조
피아니스트 김도현(오른쪽)의 마스터클래스에 참석한 예원학교 3학년 박주언은 “예전부터 유튜브에 김도현 피아니스트의 영상도 많이 봤고, 공연도 직접 보러 다녔다”며 “꼭 한 번 배워보고 싶어 신청했는데 너무나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뉴욕 지하철에 타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 얼굴이 다 다르잖아요. 모든 음표들을 사람들의 얼굴이라고 생각해봐요. 이 음표는 슬프고, 이 음표는 기쁘고, 이 음표는 행복한 거죠.”

고등학교 입시를 앞둔 박주언(15·예원학교)이 연주를 마치자 피아니스트 김도현(29)은 마디 하나 하나를 찬찬히 들여다 보며 음악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신중하게 연주를 듣던 그는 자신의 음악을 만들어가듯 음표 하나도 놓치지 않고 건져 올려 의미를 담았다.

최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김도현의 마스터클래스에 참석한 박주언은 “예전부터 유튜브에 김도현 피아니스트의 영상도 많이 봤고, 공연도 직접 보러 다녔다”며 “꼭 한 번 배워보고 싶어 신청했는데 너무나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번 마스터클래스는 마포문화재단의 제8회 M클래식축제의 일환으로 열렸다. 김도현은 재단에서 올해 처음으로 선정한 ‘M아티스트’다.

마스터클래스에선 4명의 학생이 저마다 자신있는 곡을 들고 나와 ‘젊은 스승’ 앞에 섰다.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뽑힌 참가자들은 면면이 제법 화려했다.

음악춘추 콩쿠르에서 우승한 박주언은 오는 11월 서게 될 ‘금호 영재콘서트’(11월 25일·금호문화재단)로 데뷔를 앞두고 있는 유망주다. 지난해 10~11월 진행한 오디션을 통해 발탁된 박주언에 대해 당시 심사위원들은 “곡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소리내는 방식이 좋다”며 “정확하고 좋은 테크닉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도현의 ‘마스터 클래스’는 박주언에게 1석 2조의 시간이었다. 이날 연주한 리스트의 ‘파가니니에 의한 대연습곡 6번’은 곧 있을 예고 입시곡인 동시에 ‘금호 영재콘서트’에서 연주할 곡이기도 했다. 영재 피아니스트는 “겸사겸사 이 곡을 준비했다”며 웃었다.

피아니스트 김도현의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한 예원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최윤결. [마포문화재단 제공]

김도현의 마스터 클래스에선 그가 음악을 분석하는 방식과 음악에 대한 접근법, 음악을 마주하는 자세 등 피아니스트로 걸어온 길에서 익힌 모든 노하우가 담겼다. 2021년 부소니 콩쿠르에서 2위에 오른 이후 누구보다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며 가장 주목받는 연주자가 된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새싹 연주자’들에겐 일타 강사를 통한 배움의 시간인 동시에 한 명의 음악가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김도현이 학생을 대하는 방식과 음악에 대한 설명은 ‘일대일 맞춤형’이었다. 단 한 번의 연주를 듣고 단숨에 파악한 학생들의 장단점과 음악적 특징을 바탕으로 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이야기가 이어졌다. 박주언의 연주 후엔 “신선한 산소가 몸 안에 들어와 전달하는 거라 생각하면서, 조금 더 리드미컬하게 쳐보라”고 조언하며, 자신이 직접 노래를 부르며 연주를 들려주기도 했다.

설명도 친절하고 흥미로웠다. 소설 같기도 하면서 영화였고, 그림이기도 했다. 악보를 앞에 두고 꺼내놓는 이야기들은 생생한 장면들로 되살아났다. 추상적인 감상이 아니라 특정한 캐릭터를 떠올릴 수 있는 인물을 언급했고, 생동감 넘치는 그림이나 영화 속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비유로 상상의 폭을 넓혔다.

예원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최윤결이 ‘파가니니에 의한 대연습곡 2번’ 연주를 마친 뒤엔 정밀한 해부가 시작됐다.

“따라, 따라 ~ 여기로 넘어갈 땐 확신에 차있어야 해요. 손에서 소리가 시작하기 전에 심장박동이 음악에 맞춰 시작한다고 느껴봐요.”

흐름을 끊지 않고 물 흐르듯 이어지는 악구를 지난 뒤엔 “당나귀를 타고 가는 돈키호테 같은 느낌”이라며 “아무 것도 아닌데, 엄청난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의 허세와 허풍을 담아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는 악보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대한 접근 방식, 특정한 악구를 연주할 때의 손의 움직임, 손끝을 통해 감정을 쌓아가는 방식 등을 이야기 하며 곡의 전체 분위기와 스토리를 만드는 조각들을 제시했다. 음악에 대한 완전한 이해와 자신만의 해석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설명이었다.

피아니스트 김도현의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한 박주언(오른쪽). [마포문화재단 제공]

단 한 번도 언급한 적은 없었지만, 김도현이 결국 얘기하고자 했던 것은 ‘나만의 음악’과 ‘음악의 재미’였다. 같은 곡 안에도 ‘자신만의 유머’를 담고, 곡의 재미를 반감하는 예측가능한 전개를 피하라는 것이다.

입시 교육에 갇혀 ‘자신의 것’을 만들어갈 여력이 없던 학생들에게 그의 마스터클래스는 ‘신선한 경험’이자 ‘생각의 전환점’이었다. 박주언은 “그동안 수없이 연습했던 곡이나 입시를 안정적으로 해야 하다 보니 정해진 틀에 갇혀 있었다”며 “새로운 시도와 해석을 통해 남들과는 차별점을 주는 방법을 생각하게 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 치고 있는 곡이 변주곡이라 색깔과 캐릭터를 다르게 하고 있었음에도 인지를 못하고 있었다”며 “캐릭터와 음색에 대해 설명해주신 점이 도움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박주언에겐 특히 ‘악보를 악구에 갇히지 않고 끊는 방식’을 배운 것이 가장 ‘신선한 접근법’이었다. 김도현은 마스터 클래스에서 “연습을 할 때 악보를 세밀하게 잘라서 한다”며 “내 악보도 보면 정해진 부분에서 끊는 것이 아니라, 애매한 지점에서 끊어져 있다”고 했다. 이러한 방식의 접근은 곡의 전체 구조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자신만의 음악을 만드는 첫 걸음이이기도 하다.

최윤결 역시 “그간 같은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다 보니 늘 같은 관점에서만 바라봤는데 이번 마스터 클래스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해석을 하고, 같은 프레이즈 안에서 모티프 별로 캐릭터를 바꿀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돼 무척 신선했다”고 말했다.

사실 대부분의 마스터 클래스가 참가자들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쉽지 않다. 많은 연주자들이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할 때 “시간의 한계로 한 사람에 대해 온전히 파악하고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때문에 음악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 방식 등 지극히 보편적인 상식을 위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도현의 마스터클래스는 그런 점에서도 특별했다. 그는 이날 쉬는 시간도 반납한 채 네 학생과 3시간 20분 가량 수업을 진행했다. 김도현은 “마스터 클래스에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하기에 나의 음악적 색깔이 나올 수 밖에 없다”며 “학생들의 음악을 전체적으로 손 보기 보다 짧은 시간에 집중해 하나라도 정확하게 가져가길 바랐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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