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앙상블 오푸스’의 14년 “음악적 상식이 닮은 우리” [인터뷰]
2010년 창단…작곡가 류재준 필두
백주영·김상진 등 최정상 연주자 총출동
실내악 갈증 해소·좋은 음악 공동 목표
2010년 창단한 앙상블오푸스는 국내외에서 활동한 최고의 솔리스트들이 뭉쳐 독보적인 음악성을 보여주며 관객과 만나고 있다. 사진은 호르니스트 김홍박, 첼리스트 김민지,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 송지원, 비올리스트 이한나 김상진(아랫줄 왼쪽부터), 첼리스트 심준호, 류재준 음악감독, 트럼페티스트 최인혁(윗줄 왼쪽부터).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무언의 신호에 일제히 활이 움직였다. 서로를 향한 신뢰가 시선을 통해 옮겨간다. “지금 너무 좋아!” 아무런 말도 없었지만, 얼굴을 떠나지 않는 미소엔 옆자리 동료들을 향한 지지가 새겨졌다. 비올리스트 김상진은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맞추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제자 이한나는 확신과 신뢰에 찬 눈빛으로 스승을 바라봤다. 연주를 마치자 바이올리니스트 김수빈은 제자 송지원의 등을 토닥이며 안아줬다.

두 대의 바이올린, 두 대의 비올라, 두 대의 첼로로 연주하는 브람스의 현악 6중주 1번을 연주한 서울 국제음악제(10월 14일까지) 개막 연주회. 스승과 제자의 무대는 유려하고 온화했다. 시간의 길이만큼 켜켜이 쌓아온 앙상블 오푸스의 음악은 누구와도 비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졌다.

“처음 리허설을 하던 날, 사실 완전히 위축되서 돌아왔어요. 마치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것 같더라고요. 함께 연주한 첫 날부터 만족도가 너무나 높아 또 하고 싶고, 자꾸 오고 싶더라고요. 강렬한 첫 경험을 잊을 수가 없어요.”

비올리스트 이한나는 2015년 앙상블 오푸스와 처음 만난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눈빛’을 읽는 이심전심이 전해진다. 서울 국제음악제 개막으로 매일의 연주 일정을 이어가고 있는 앙상블 오푸스의 류재준 음악감독과 리더 백주영, 김상진, 김민지, 김홍박, 심준호, 이한나, 최인혁, 송지원을 만났다.

앙상블오푸스 호르니스트 김홍박, 첼리스트 김민지,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 송지원, 비올리스트 이한나 김상진(아랫줄 왼쪽부터), 첼리스트 심준호, 류재준 음악감독, 트럼페티스트 최인혁(윗줄 왼쪽부터). 임세준 기자
실내악에 대한 갈증에서 시작

‘앙상블 오푸스’의 시작은 2010년이었다. 씨앗이 뿌려진 것은 작곡가인 류재준 예술감독이 2009년 서울 국제음악제(SIMF)를 시작하면서다. 이 축제만의 ‘음악적 색깔’을 만들기 위한 첫 단추가 ‘앙상블’이었다. 앙상블 오푸스는 이 음악제의 기반을 다졌다.

창단 멤버이자 리더인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은 지난 2010년 합류 당시를 떠올리며 “한국의 실내악 여건에 대한 갈증과 혁신적인 프로그래밍 등 음악적 방향성이 잘 맞았다”고 말했다.

클래식 안에서도 실내악은 사실 ‘소외 장르’다. 앙상블 오푸스는 물론 서울 챔버오케스트라, 서울 스프링페스티벌에서도 활동하고 있는 ‘실내악 장인’ 김상진은 “대중이 좋아하는 것은 성악과 기악이고, 특히 기악 중에선 심포니가 인기가 많다”며 “어느 나라나 실내악 청중은 상당히 적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실내악 관객은 문화적으로 발전할수록 늘지만, 10여년 전만 해도 많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사실 실내악은 음악가들만 좋아하는 장르로 알려졌다. 김상진은 “연주자들의 음악적 만족을 위한 장르가 실내악”이라고 말했다. 그 무렵 그의 눈에 ‘앙상블 오푸스’가 들어왔다.

“백주영, 김민지, 고(故) 권혁주 등 너무도 마음이 잘 맞는 멤버들이 앙상블 오푸스를 하고 있더라고요. 여기에 뭔가 있나 싶었죠. 좋은 멤버들과 함께 하고 싶어 시작한 것이 어느덧 10년이 됐어요.” 이 세 사람과 비올리스트 김상진은 앙상블 오푸스의 핵심 멤버들이다.

10여년의 시간 동안 앙상블 오푸스는 여러 번의 멤버 교체를 겪었고, 지금은 동료에서 선후배로, 스승과 제자로 확장했다. 고정 멤버는 10여명 정도다. 20대부터 50대까지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최정상 음악가’들이 이 악단으로 모였다. 멤버들은 서로가 서로를 따라 이곳에 오게 됐다. 음악을 향한 마음과 함께 하는 멤버들의 존재가 이들을 모이게 한 힘이다.

2021년 합류한 바이올니리스트 송지원은 “미국 유학 시절 알게 된 앙상블 오푸스는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의 그룹”이라며 “함께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고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석 출신인 호르니스트 김홍박은 “기존 단원들의 실내악을 보고 함께 하게 됐다”며 “이렇게 대단한 연주자들로 조직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저마다 다른 개성의 연주자들을 하나로 묶는 사람은 음악감독 류재준이다. 김민지는 “앙상블 오푸스는 한 해 한 해 만들어나가는 팀이 아니라, 큰 그림과 계획을 세우고 10년을 이어온 단체”라며 “그 중심에 류재준 감독이 있었다”고 했다. 앙상블 오푸스의 창단 목표는 ‘좋은 음악을 하는 세계 최고의 연주단체’다. 류 감독은 “기본적으로 뛰어난 연주 실력과 연주자로의 자세를 갖춘 좋은 음악가들이 모여있는 곳”이라며 “그렇다고 우리만의 마피아, 우리만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음악을 즐기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 남아 오늘이 됐다”고 말했다.

호르니스트 김홍박, 첼리스트 김민지,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 송지원, 비올리스트 이한나 김상진(아랫줄 왼쪽부터), 첼리스트 심준호, 류재준 음악감독, 트럼페티스트 최인혁(윗줄 왼쪽부터). 임세준 기자
“음악적 상식이 닮은 우리…하나 되는 원동력”

앙상블의 관건은 존중과 배려다. ‘최고’로 가는 과정엔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다. 예술가이면서 ‘일로 만난 사이’이기에 ‘성격 궁합’까지 완벽할 순 없다. 김상진은 “실내악을 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음악적으로는 잘 맞지만 때로는 결이 다르다고 느껴지는 경우도 많다”며 “유명한 사람들을 모아뒀다고 좋은 앙상블이 나오진 않는다”고 말했다. 지금의 앙상블 오푸스는 길 잃은 퍼즐 없이 모두가 알아서 제 자리를 찾는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척하면 척’이다.

“저흰 유독 리허설 시간이 짧아요. 음악은 리허설을 많이 한다고 잘 맞는 것도, 적게 한다고 안 맞는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앙상블 오푸스는 음악적 상식이 같아요.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유연해 나를 내세우지 않아요.” (김상진)

상대에게 요구하기보단 먼저 배려한다. 백주영·김상진은 연습 중 활의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면 서로가 먼저 상대에게 알아서 맞춘다. 심준호는 “음악의 결이 비슷하고, 추구하는 음악적 방향성이 같기 때문에 지금의 호흡이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앙상블 오푸스가 바라보는 곳은 바로 ‘최선의 연주가 빚어낸 좋은 음악’이다. 김상진은 “우리나라의 음악 교육은 음악보다는 자신이 중심이 되는, 솔리스트가 되는 교육을 받아왔다”며 “앙상블 오푸스는 음악을 위주로 좋은 음악을 만들고자 하는 상식이 닮아있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던 백주영은 “음악이라는 큰 목표를 위해 향해가는 과정에서, 다함께 빛나는 것이 더 빛난다는 길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며 “함께 빛나야만 좋은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화려한 면면의 연주자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클래식 관객들에겐 ‘기이한 일’이다. 특히나 앙상블 오푸스는 현악이 중심이 된 기존의 실내악단과 달리 현악은 물론 타악(퍼쿠셔니스트 한문경)과 금관(호른 김홍박, 트럼펫 최인혁)까지 모여있다. 오케스트라의 중추를 담당하는 최상위 솔리스트들이 모인 이 악단은 오케스트라로 확장하는 ‘이상적인 행보’를 이어가며, 국제 무대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세계적인 작곡가인 류 감독은 “곡을 쓸 때는 언제나 앙상블 오푸스를 위해 쓴다”며 “연주자들의 기법과 버릇을 관찰하고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의 앙상블 오푸스는 “각기 다른 개성과 음악성을 온전히 받아들여 우리만의 음악을 만들어가는 단계”(류재준)다. 착실히 다진 터전 위로 향후 10년도 꿈 꾼다. 대단히 ‘거창한 미래’는 아니다. “이미 앙상블 오푸스는 말도 안되는 음악을 하고 있다”(류재준)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단지 “음악을 잘 하는 사람들이 좋은 음악을 마음껏 들려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 역할을 위해 류 감독은 사재를 털어 서울 국제음악제를 이어오고 있다.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도 다르지 않다. 단단한 오늘의 토양이 내일의 원동력이 되리라 믿는다.

“우리의 지향점은 음악이에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10년 뒤에도 지금만 같기를 바라죠.” (김상진, 심준호)

she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