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수급 불안정에 인플레이션 심화
“수출 불리”…육계협회 등 백신 접종에 반대
미국 올랜도의 한 마켓 계란 진열장이 대부분 비어있다. [AP] |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전세계적으로 조류독감이 유행하면서 닭고기 뿐 아니라 여러 식품의 원료가 되는 계란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계란 관련 메뉴가 메뉴판에서 사라지거나 계란을 사기 위해 국경을 넘는 기상천외한 일들이 세계 각지에서 일어날 정도다. 산란계의 대량 살처분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대안이 마땅치 않은 실정이다.
블룸버그통신은 8일(현지시간) 3월 5일 기준 일본의 상장된 식품업체 100곳 중 18곳이 계란 관련 메뉴 판매를 중단했다고 테이코쿠데이터뱅크를 인용해 보도했다.
맥도널드 재팬은 매년 봄마다 출시했던 데리타마 머핀을 올해 출시하지 않기로 했다. 이 메뉴에는 계란이 주요 재료로 들어간다. 맥도널드는 계란 공급차질이 이어질 경우 계란이 들어간 다른 메뉴도 일시적으로 판매를 중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은 지난 1일 참치 샌드위치에 계란 대신 야채를 넣는 등 일부 계란 제품 판매를 중단 또는 변경했고 조미료 업체 아지노모토는 마요네즈와 타르타르 소스와 같은 제품의 가격을 4월부터 인상키로 했다.
이같은 현상은 지난해 10월 일본에서 조류 독감이 처음 발생한 이래 지금까지 1500만마리의 가금류가 살처분되면서 일본 내 계란 도매가격이 전년 대비 2배가 올랐기 때문이다.
계란 파동을 겪는 것은 일본 만이 아니다. 영국에서는 계란과 우유, 마가린 가격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식품 부문의 인플레이션율이 17.1%에 달했다. 대만에서는 계란 도매가격이 3개당 55 대만달러(2358원)까지 치솟자 농업위원획가 직접 나서 사과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농업위원회는 계란 가격을 잡기 위해 호주로부터 500만개의 계란을 긴급수입키로 했다.
지난 2018년 케이지에서 가금류를 키우는 것을 금지한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지난해 초부터 조류독감이 유행하자 수백만 마리의 암탉이 살처분되면서 계란 가격이 31%나 올랐다. 이는 미국 전체 주 중 5번째 높은 가격 상승률이다. 살인적인 장바구니 물가에 캘리포니아 주 주민들이 식료품을 저렴하게 사기 위해 멕시코 티후아나로 국경을 넘어가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조류 독감이 퍼지는 것은 기후 변화 때문이다. 존 스콧 메츠케 워싱턴대학교 환경보건과학부 교수는 “기후 변화로 많은 종의 조류가 비행경로를 바꿨고 결과적으로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종의 새들이 바이러스를 품고 국경을 넘고 있다”고 말했다. 국립오듀본협회에 따르면 지난 40년 동안 북미 조류 종의 60% 이상이 비행 경로를 북쪽으로 평균 35마일 변경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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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 독감 확산을 막기 위한 가금류의 대량 살처분이 계란 수급을 불안정하게 하는 원인으로 지목됐다. 미국 농무부는 47개 주에서 5800만 마리가 넘는 가금류가 살처분됐다고 밝혔다. 워싱턴 주의 경우 한 마리라도 조류 독감 양성 판정을 받을 경우 농장 전체의 가금류를 살처분하도록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조류 독감 확산을 막기 위해 대량 살처분 대신 백신을 활용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허가된 가금류 조류독감 백신은 몇 종류 있지만 어떤 백신이 현재 확산되고 있는 변종에 효과적인지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이에 연방 규제 당국은 아직 백신 접종을 승인하지 않았다. 미국 농무부 농업연구청은 자체적으로 적합한 백신을 개발 중이다.
그러나 적절한 백신이 개발되더라도 미국에서 대대적인 접종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미국 육계협회가 백신을 접종한 닭의 경우 오히려 감염 의심을 받기 때문에 수출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백신 접종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육계 산업은 전체 닭고기의 18%를 수출하고 있다.
협회의 톤 수퍼 수석 부회장은 “백신 접종이 처음에는 간단한 해결책으로 선전됐지만 이는 해결책도 아니고 간단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why37@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