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시 통금은 엄수
[NYT] |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전쟁 5달째를 넘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유흥 문화’가 조심스럽게 돌아오고 있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최전선에서 약 500㎞ 떨어진 키이우에서 타인과 끈끈한 관계를 그리워하며 전쟁의 위안을 찾는 사람들이 파티장·술집·카페 등으로 향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최근 키이우의 옛 실크 공장 건물에서는 시끄러운 음악과 함께 춤을 즐기는 ‘레이브파티’가 열려 수백 명이 무아지경에 빠졌다. 대형 스피커와 조명, DJ 장비가 설치됐고, 창은 두꺼운 암막 커튼으로 가려진 채였다.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서부 도시 빈니차에 순항미사일이 날아와 수십 명이 숨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지만 행사는 취소되지 않았다. 주최 측 인사는 행사를 강행한 데 대해 “러시아가 원하는 게 바로 (행사 취소 같은) 그런 것”이라고 NYT에 말했다.
[유튜브 'The Telegraph' 채널 캡처] |
최근에는 힙합 노천 파티도 열렸다고 한다. 파티 도중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지만, 행사 진행에는 아무런 지장이 되지 않았다. 힙합 팬들이 박자에 맞춰 일제히 상체를 흔드는 모습이 연출됐다고 NYT는 전했다.
파티뿐 아니라 노천카페에도 방문객이 줄을 잇고 있고 술집에도 날이 갈수록 빈자리가 줄고 있다.
키이우 중심부를 흐르는 드니프로강 둔치에는 키이우 시민 수백 명이 친지와 어울려 가볍게 한 잔을 나누는 장면이 쉽게 눈에 띈다.
NYT는 키이우의 젊은이들이 벌써 2년째 고립되면서 ‘사람’을 향한 갈망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19가 채 끝나기도 전에 전쟁이 터진 탓이다.
동부 돈바스 전황은 그리 밝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키이우에서는 포성이 점차 잦아들면서 외출에 대한 모종의 ‘죄의식’도 점차 옅어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NYT는 분석했다.
한 바텐더는 NYT에 “항상 이런 생각을 했다. 전쟁 중에 내가 일을 나가도 괜찮을까. 전쟁 중에 칵테일을 말고 있어도 될까. 하지만 출근하자마자 답을 찾았다. 손님의 눈을 보면 안다. 이 한 잔이 그들에겐 상담 치료나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이런 죄책감을 덜기 위해선지 최근 열린 레이브파티나 노천 힙합 파티 모두 전쟁 피해자를 위한 인도주의적 지원 기금을 모금, 기부했다.
[NYT] |
키이우에는 서로 위안을 나누기 위해 만들어진 독특한 파티도 있다. 20대부터 60대까지 모르는 사람끼리 15∼20분씩 끌어안는 ‘포옹 파티’다. 파트너를 바꿔 가며 낯선 사람과 몸을 맞대고 최대한 편안한 자세를 찾는 방식이다. 남남·남녀·여여, 성별 구분은 없다. 현장의 진행자는 성적 의도를 배제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공지한다. 그렇지만 NYT는 “전체관람가인 난교파티 같다”고 현장 모습을 전했다.
키이우의 밤문화는 한계가 명확하다. 오후 11시 통행금지 행정명령 때문이다. 통금을 어기면 벌금을 물 수 있다. 젊은 남성이면 군에 징집될 수도 있다.
파티든 술집이든 오후 10시에는 문을 닫아야 한다. 직원이 퇴근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9시면 마지막 주문이 끝난다. 놀 시간을 확보하려면 파티는 오후 2시반에는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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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0시께엔 귀가 전쟁이 시작된다. 승차공유앱의 탑승료는 3배로 뛴다. 그것도 운이 좋아야 배정받을 수 있다. 차를 잡지 못하면 뛰어야 한다. 11시가 되면 도시는 완전히 멈춰선다. 분명한 사실은 파티가 이어지는 동안 전쟁도 계속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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