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참석 정상회의 관련…"이스라엘과 '연합방위 체계' 논의도 없어"
사우디아라비아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오른쪽) 사우디 왕세자가 15일(현지시간) 자국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며 활짝 웃고 있다. [AFP] |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사우디아라비아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자국 방문 기간 중 원유 증산 논의가 없었다고 밝혔다.
여기에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바이든 대통령의 ‘인권 문제’ 지적에 자신의 책임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미국의 인권 문제를 거론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사실상 중동 순방 전 자신이 밝혔던 목표를 모두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16일(현지시간) 로이터·AFP 통신에 따르면 파이살 빈 파르한 사우디 외무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원유 관련 논의는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사우디 제다에서 열린 걸프협력회의(GCC)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파르한 외무장관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 플러스’(OPEC+)가 시장 상황을 평가해 적절한 생산 계획을 수립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튜브 'News 19 WLTX' 채널 캡처] |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중동 방문은 글로벌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고유가를 잡을 걸프 산유국들의 추가 증산이 필요한 가운데 이뤄진 것이어서 관심을 모았다.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는 증산 여력이 있는 산유국으로 꼽혀왔다.
정상회의에서 실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물가 폭등의 원인을 서방 주도의 친환경 정책 탓으로 돌렸다.
그는 회의에서 “탄소배출을 줄이려는 비현실적인 에너지 정책은 에너지 가격 상승과 인플레이션을 일으킨다”며 “실업률을 높이고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우디는 이미 최대 생산 능력치인 하루 1300만배럴까지 증산 계획을 발표했으며, 이를 넘어서는 추가 생산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스라엘과 사우디 관계 정상화에 대한 구체적인 성과도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파르한 외무장관은 “바이든 대통령과 회담에서 이스라엘과 ‘연합 방위’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복원 회담이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미국은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의 관계 정상화를 토대로 이란의 위협에 공동 대응하는 연합 방공망 구축을 추진했다.
이스라엘에서 출발한 항공기에 대해 사우디 영공 통과를 허용한 것과 관련해서도 파르한 장관은 외교관계와 상관없는 조치라면서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사우디 당국은 전날 바이든 대통령의 방문에 맞춰 이스라엘발(發)을 포함, 모든 민항기가 자국 영공을 통과해 비행할 수 있게 했다.
그간 사우디를 위시한 중동의 이슬람권 국가 대부분은 이스라엘의 국체를 인정하지 않아 이스라엘에서 출발한 항공기의 영공 통과를 금지해 왔다.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잘 카슈끄지 암살 배후로 지목받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로부터 미국 인권 문제에 대한 지적을 받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언론인 암살 책임 문제를 거론하자 오히려 역공했다는 것이다.
[유튜브 'News 19 WLTX' 채널 캡처] |
사우디를 방문 중인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무함마드 왕세자와 만난 자리에서 카슈끄지 문제를 거론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회동 뒤 진행한 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 “카슈끄지 문제는 회담 모두에 제기했으며 그때와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에 대해 분명히 했다”면서 “내 관점에 대해 분명히 말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무함마드 왕세자는 회동에서 “개인적으로 나는 책임이 없으며 책임 있는 인사들에 대해서 조치를 취했다”고 답했다고 바이든 대통령이 전했다. 사실상 자신은 아무 책임이 없다고 부인한 것이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더 나아가 미군의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교도소 포로 학대 사건과 팔레스타인계 미국 언론인인 시린 아부 아클레 기자 피격 사건을 거론했다고 CNN 방송이 이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자신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미국에도 인권 문제가 있지 않으냐는 취지의 반박으로 풀이된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거론한 아부그라이브 사건은 2004년 미군이 이라크인 수감자를 학대하는 사진이 공개되면서 알려진 사건으로, 이 일로 당시 미군의 고문 및 인권 침해 문제가 이슈가 됐다.
또 아부 아클레 기자는 지난 5월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군의 수색 작전 취재 중 총격으로 사망했으며 미국은 총탄 분석 결과 총알이 이스라엘군 쪽에서 온 것으로 보이지만 의도성은 없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사실상 이스라엘에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을 일각에서 받았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정보 당국이 카슈끄지 암살 배후로 무함마드 왕세자를 지목하자 사우디를 왕따로 만들겠다면서 고강도로 비판해오다 인플레이션과 맞물린 고유가 문제가 현안이 되자 아랍권 다자 정상회의 참석을 명분으로 사우디를 방문했다.
[유튜브 'News 19 WLTX' 채널 캡처] |
이번 방문은 카슈끄지 문제에 대한 사우디의 태도 변화 없이 진행된 것이어서 시작 전부터 비판을 받았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전날 공항에 환영 나온 무함마드 왕세자와 ‘주먹 인사’를 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주먹 인사’로 엄청난 비판을 받고 있다는 질문이 나오자 웃으면서 즉답하지 않았다.
그는 향후 카슈끄지 암살과 같은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이 이어지자 “어리석은 질문”이라면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내가 알겠느냐”고 답했다.
이어 “내가 신장 지역에서 강제노동으로 시진핑(習近平) 주석을 비판했을 때 중국은 미국이 자신을 비판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고 했다”면서 “그에 대해 나는 ‘나는 미국 대통령이고 미국 대통령이 분명한 인권 침해 문제에 대해 조용히 있는 것은 미국의 정체성에 맞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말한 뒤 인권 유린 사태에는 침묵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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