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국가로 대우 받을 시 경제난 타개 가능해지지만 대안 작물 없어 실효성 미미
아프가니스탄 시민이 지난 1일(현지시간) 아편과 헤로인 등 마약 원료로 쓰이는 양귀비 재배를 하고 있는 모습. 영상에 등장하는 시민은 아프가니스탄이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다며 재배할 것이 양귀비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Bloomberg Quicktake:Now 유튜브 캡처] |
[헤럴드경제=유혜정 기자] 아프가니스탄 집권 세력인 탈레반이 아편과 헤로인 등 마약의 원료로 쓰이는 양귀비의 재배를 전격적으로 금지했다.
이에 따라 아프간이 세계 최대 아편 생산국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지만 양귀비 재배로 생계를 유지하는 아프간 시민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4일(현지시간) 톨로뉴스 등 아프간 언론과 외신에 따르면 하이바툴라 아쿤드자다 탈레반 최고 지도자는 전날 포고령을 통해 “지금부터 전국의 양귀비 재배는 엄격하게 금지된다”고 밝혔다.
아쿤드자다 지도자는 “위반자는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따라 다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조치에는 다른 마약의 생산, 복용, 운반 등의 금지도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2021년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간의 연간 아편 관련 수익 규모는 18억~27억달러(약 2조2000억~3조3000억원)에 육박하며, 이는 아프가니스탄 국내총생산(GDP)의 7% 이상을 차지하는 규모다.
아편 생산량의 경우 2021년에만 6000t을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아편을 가공하면 약 320t의 헤로인을 추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탈레반이 집권한 지난해부터는 양귀비 재배 추세가 더욱 가속한 것으로 파악된다.
전국적으로 내전이 격화한 가운데 심각한 경제난과 가뭄까지 겹친 바람에 농부들이 앞다퉈 양귀비로 눈을 돌린 것이다.
탈레반은 지난 1차 통치기(1996∼2001년) 때인 2000년에도 양귀비 재배를 금지한 적이 있다. 당시 조처로 양귀비 생산량이 90%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001년 미국에 의해 정권을 잃은 후에는 태도가 바뀌었다. 점령지 농민들로부터 양귀비 판매액의 일부를 ‘세금’으로 거둬들였고 직접 마약을 거래하며 재원을 확보했다.
탈레반은 재집권 직후에 다시 양귀비 재배를 금지하겠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사실상 방관하는 분위기였다. 온 국민이 최악의 경제난에 시달린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와중에 탈레반이 이번에 최고 지도자의 포고령까지 앞세워 본격적으로 마약 단속에 나선 것은 국제사회로부터 공식 정부로 인정받기 위한 포석의 하나로 분석된다.
탈레반으로서는 정상적인 국가로 대우를 받아야 본격적인 해외 원조, 송금, 동결된 해외 보유자산 해제 등을 통한 경제난 타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약 재배 단속은 인권 존중, 포용적 정부 구성 등과 함께 국제사회가 탈레반 정부 인정을 위해 요구해온 조건 중 하나였다.
다만 탈레반의 이번 조치가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높은 수익성과 가뭄 상황 등을 고려할 때 마땅한 대안 작물이 없기 때문이다.
양귀비는 재배 과정에서 물이 거의 필요하지 않으며 심은 후 5개월만 지나면 수확이 가능하다.
일단 아편으로 가공되면 별도 냉장 시설이 없더라도 수년간 보관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수익성도 다른 작물보다 훨씬 높다.
아프간의 한 농부는 최근 톨로뉴스에 “다른 것은 재배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이전에는 우리는 밀을 심었지만, 올해는 양귀비를 재배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yoohj@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