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현지서 연간 20만대 생산…공장 멈춰서
삼성·LG전자 가전 1·2위 기업…소비자 외면 우려
러시아 루블화 결제에 따른 환손실 우려도
현대자동차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생산라인. [현대차 제공] |
[헤럴드경제=김지윤·문영규 기자] “지금은 바싹 엎드리고, 전쟁이 하루빨리 끝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요”
국내 기업들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미국과 러시아의 패권 싸움에 휘말려 중간에 끼인 상황이 되면서, 기업들이 애매한 입장이 됐다. 실제 한국은 미국 정부의 해외직접제품규칙(FDPR) 면제국 포함을 위해 대러 수출통제에 동참했다. 하지만 곧이어 러시아가 한국을 비우호국가로 지정했다. 향후 러시아의 제재 수위에 따라 현지 진출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기업은 제너럴모터스(GM), 애플 등 다른 미국회사처럼 러시아 사업을 바로 철수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업을 지속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국제사회의 러시아 제재가 본격화하며, 이미 현지 공장 운영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판매 타격까지 피할 수 없게 된 셈이다.
8일 업계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7일(현지시간) 정부령을 통해 자국과 자국 기업, 러시아인 등에 비우호적 행동을 한 국가와 지역 목록을 발표하면서 이 목록에 한국을 포함시켰다. 비우호국가 목록에 포함된 국가들에는 외교적 제한을 포함한 각종 제재가 취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현지에서 생산·판매·서비스망을 구축하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은 당황한 모습이 역력하다. 국제사회의 러시아 제재 분위기를 무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공장 문을 걸어 잠그고 현지 판매를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곳이 현대자동차그룹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러시아에서 기아 20만5801대, 현대차 17만1811대를 판매해 각각 2·3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현지에서 인기가 높은 기업이다. 러시아 정부가 한국을 비우호국가로 지정하면서 현지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을까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현지 생산도 막막하다. 현대차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연간 20만대의 차량을 생산하고 있다. 앞서 1~5일 현지 공장가동을 중단했고, 당초 9일 생산을 재개할 예정이었지만 이마저도 연기됐다. 현재로서는 재가동 시점도 알 수 없다.
삼성전자 러시아 칼루가 TV 공장. [삼성전자 제공] |
삼성전자와 LG전자 역시 러시아 가전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기업들이라 고민이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모스크바 인근 칼루가 지역 공장에서 TV를, LG전자는 모스크바 외곽 루자 지역 공장에서 가전과 TV를 각각 생산 중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러시아 스마트폰 및 TV 시장에서 점유율 1위이며, 세탁기·냉장고 등 생활가전 분야에서는 LG전자와 점유율 1위를 다투고 있다.
삼성전자는 우크라이나 정부로부터 러시아 시장 제품 판매 및 서비스 제공 중단을 요청받았으나, 사업 중단을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제너럴모터스, 인텔, 애플, 나이키 등 미국 기업들이 정부의 지침을 바탕으로 발 빠르게 사업 중단을 선언하고 있는 것과 달리 국내 기업들은 러시아 시장 내 차지하는 위상이 높고, 우리 정부 역시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 현지 고객들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온 만큼 사업 철수보다는 상황을 지켜보며 전쟁이 마무리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현지사업을 지속하더라도 러시아 현지에서 루블화로 주로 거래해온 국내 기업들의 경우 루블화 가치 폭락에 따른 환 손실도 크다. 특히 러시아 제제로 인해 달러로 받아야 하는 기존 수출대금까지 루블화로 받게 돼 추가로 피해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한 재계 관계자는 “러시아 정부의 한국기업 비우호국 지정은 예상된 수순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상당히 가슴 아픈 결정”이라며 “공장 문을 닫게 되면 글로벌 실적에 큰 악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jiy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