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 기업·기업인 모두 불안
중소기업 대표 구속 시, 회사 존폐 위기도
구체적인 책임기준 마련, 처벌규정 완화 등 보완 목소리
[헤럴드경제=권남근 기자] ‘사고발생→대대적 언론 보도→고용부 압수수색…’. 지난달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건설 및 산업 현장에서 일어나는 사고에 대한 흐름이다. 주목도는 예전보다 한결 높아졌다. 매년 수백 건의 사고가 발생하지만 이법 시행 이후 관심도는 부쩍 커졌다. 지난달 양주 채석장 붕괴(삼표산업), 이달 경기 판교 신축공사장 승강기 추락(요진건설산업), 전남 여천NCC 공장 폭발, 한솔페이퍼텍 협력사 직원 사망 사고 등이 대표적이다. 발생 순서대로 번호까지 매겨진다. 법이 시행됐다고 사고가 한순간에 사라지길 기대하긴 어렵다. 사형제가 있다고 흉악범죄가 없어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산재 사고사망자는 828명에 이른다.
문제는 현장에서의 혼란이다. 법 시행 전부터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모호한 규정과 과잉 규제 논란도 많았다. 사망사고 시 최고경영자(CEO)는 1년 이상 징역과 10억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심정’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기업도 50억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사활을 걸고 현장 안전 확보에 노력하고 있다. 최고안전책임자(CSO)를 임명하고, 안전 감시 인력 투입도 늘린다. 그나마 이는 여력이 있는 대기업이나 가능하다. 중소기업은 관련 법 해석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곳도 많다. 사고 발생으로 중소기업 대표가 구속되면 대표 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 특성상 회사가 존폐 위기에 몰릴 수 있다. 이 법에서마저 대기업-중소기업 간 양극화가 생긴다. 고용시장에서는 건강을 우려, 고령층이 배제되는 부작용이 벌써부터 생겨나고 있다.
아무리 완벽하게 준비한다고 해도 사고는 일어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여전한 법의 모호성과 과잉규제로 법 시행이후 기업들의 공포감이 갈수록 커진다는 것이다. ‘1호는 피했다’는 안도감은 잠시일 뿐이다. 단체로 매를 맞을 때 다른 사람을 지켜보며 자신의 순서를 기다릴 때처럼 심리적 공포감이 더 커질 수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말 관련 해설서를 내놨다. 하지만 부족하다. 사고 예방에 책임을 다하지 않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 대한 해석이 정확하지 않다보니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일일이 따져봐야 한다. 예를 들어 CSO를 두고 있다면 대표이사가 면책이 되는지 해석이 분분하다. 안전관련 의사결정 시 참여 여부 등 둘 사이의 독립성에 따라 달라진다는 의견이 있지만 규명하기는 쉽지 않다. 처벌을 피하려면 사고발생 후 누구든 소송까지 각오할 수밖에 없다. 공교롭게도 이법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된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 사건(2018년 12월) 관련, 원청인 한국서부발전 전 사장은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이를 참고하면, 결국 법 시행이후 사고들에 대한 몇 차례 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혼란은 불가피할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1112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기업들이 올해 가장 부담을 느끼는 규제를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꼽았다. 안전문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선 수정 보완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처벌 대상과 기준 마련 ▷처벌규정 완화 ▷고의 중과실이 없는 경우의 면책 규정 마련 등의 목소리가 높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든 이를 반영해, 기업들을 이 법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의도가 있다고 해도 막상 현실에서 나쁜 결과를 내는 정책이라면 과감히 수정하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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