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건 타이밍이다. 너무 빠르면 낯설고 아주 늦으면 아쉽다. 타이밍에 맞춰 대비하지 않으면 대가는 어느새 다가온다. 물론 현실은 만만치 않다. 알아도 속수무책 당하는 일이 다반사다. 2021년 대학 입시 충격이 그 예다. 인구통계가 일찍부터 경고했지만 대비하지 않은 대가는 엄중하다. 돌발 변수가 아닌 예고된 ‘위험 상수’였지만 대응은 미지근했다. 공급(고3)과 수요(입학정원)의 ‘데드크로스(dead cross)’다. 마침내 올해 대학 정원 미달 7만명인 상황이 벌어졌다. 대학은 쇼크로 받아들인다. 지방대학의 잔인한 ‘벚꽃 엔딩’ 공포다.
인구 충격은 어느 순간 다가와 매섭게 번진다. 대학 붕괴는 앞으로 펼쳐질 무수한 상황 변화의 전초전에 불과하다. 누구나 나이를 먹듯 인구 변화는 연령대별 생애 주기 변화를 이끈다. 모든 영역에서 수요와 공급에 극심한 변화가 불가피하다.
지하철의 배차 간격처럼 인구 통계는 안내 시간에 맞춰 착착 다음 역에 닿는다. 미세하게 이탈해도 대부분 표준편차 안이다. 드라마틱한 반전은 없다. 줄어든 인구의 후폭풍은 향후 들불처럼 번질 수밖에 없다. 정원 부족에 따른 지방대 쇼크는 그저 지방 대학이 먼저 매를 맞았을 뿐이다. 누구든 위기 앞에 자유롭지 않다는 의미다. 지금 상황으로선 뒷북치기의 미달 사태는 모든 분야에서 닥칠 미래다.
전영수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
충격파는 곧 국방 분야로 닿는다. 가시화될 병력 부족 문제는 발등의 불이다. 역시 20년 전부터 제기된 낯익은 경고다. 20세 남자 인구는 2010년대 ±35만명대에서 2020년대 ±25만명대로 축소된다. 지금 출산율을 보건대 20년 후인 2040년대는 ±13만명이 전부다. 지금 같은 병력 유지는 불가능하다. 국방 개혁은 당면 과제일 수밖에 없다. 올해부터는 고졸 이하도 건강하면 학력과 무관하게 현역 입대를 하게 하는 건 이런 상황 때문이다. 감축 편성에 맞춘 자원 배분은 절실한 과제다. 축소는 싫겠지만, 쇼크를 피하자면 방법이 없다.
그 다음부터는 더 무차별적이고 광범위하다. 제대를 하고 학교를 졸업하면 ‘MZ세대(밀레니얼 세대·Z세대를 합한 말)’가 직면한 생애 주기상 최대 이벤트를 치러야 한다. 본격적으로 생산과 소비를 담당하는 한 사람의 경제 주체로 변신하는 취업이다.
저출산의 충격 여파도 안개를 헤치고 가시화된다. 압권은 생산 가능 인구의 하락이다. 2018년 최초로 줄어든 이래 갈수록 낙폭이 커진다. 2019년 ±3760만명에서 2050년 ±2450만명으로 35%나 급감한다. 아직은 버티고 있지만 2020년 0.84명의 출산율을 보면 20~30년 후엔 사람 부족이 본격화될 수밖에 없다. 참고로 20년 후 스물살로 진입하는 2020년 출생자는 27만2000명뿐이다. 반면 올해는 베이비부머의 맏형(1955년생)부터 생산 가능 인구에서 빠진다. 향후 20년(1955년~75년생)간의 생산 가능 인구 이탈 숫자만 무려 1700만명에 달한다. 완만한 감소도 아픈데, 급격한 축소라 충격은 상상 이상일 수밖에 없다.
이제는 집 문제다. 주거 불안은 출산 포기의 주요 근거 중 하나다. 최근처럼 근로소득으로 내 집 마련이 어려운 여건에서 젊은층은 결혼·출산을 쉽게 선택하지 못한다.
집 문제는 앞으론 큰 변화가 예상된다. 최근 30대의 ‘영끌’을 통한 주택 구입이 꺾이는 끝물일지 계속될 추세일지 뜨거운 감자지만, 중장기 관점에서 대부분 MZ세대에겐 해당되지 않는 이슈일 가능성이 크다. 이들 세대가 내 집 이슈에 직면할 10~20년 후는 어떻게 될까. 집값을 결정하는 변수가 워낙 다양하나 적어도 수급 논리로만 따지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아닐 것이다.저출산이 가장 강력한 예측 지표다. 요즘 젊은 세대는 주택 난, 취업 문제 등으로 계속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경향을 보인다. 전대미문의 출산율 1명 이하를 확정통계로만 벌써 3년 째 기록 중이다. 2018년(0.98명)·2019년(0.92명)·2020년(0.84명)이 그렇다. 이 추세로라면 2021년 0.7명대와 2022년 0.6명대까지 떨어질 것이다. 2015년 1.24명이었으니 7년 만에 출산율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엄청난 변화다.
서울 지역 아파트값 상승세가 3주 연속 둔화했다. 지난 5일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0.13% 상승, 상승폭은 전주보다 0.01%포인트 축소했다. 사진은 7일 서울 영등포구 63빌딩 전망대에서 바라본 아파트. 연합뉴스 |
수요가 줄면 가격은 떨어진다. 주택도 전반적으로 지금보다는 수요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입지 좋고 희소성 높은 인기 지역이라면 심화하는 양극화 시대에도 돈 많은 계층이 몰리면서 변함없는 강세를 보일 수 있겠지만, 지금처럼 전국적인 집값 상승 추세가 나타나긴 어렵다. 물론 평균치가 낮아져도 우량재는 별개 이슈다. 인기 높은 지역 집값 움직임은 ‘그들만의 리그’일 공산이 크다.
여기서 강조하는 건 전체적인 주택시장의 흐름이다. 어쨌든 중장기적 관점에서 내 집 마련은 점점 더 수월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물론 수요가 많은 지역의 아파트 등 살만한 집의 공급 여부는 또 다른 이슈다. 물론 그것도 수요 감소가 지금처럼 급격히 진행된다면 상대적인 수요 약세로 인한 가격 하락세가 불가피할 것이다. 경제 성장률이 떨어지는 ‘성숙 경제’로 수렴하면서 생기는 낮아질 구매력도 고려 대상이다. 집값이 싸져도 지갑이 얇으면 살 수 없다. 어쨌든 중장기로 보면 주택시장이 지금 같이 고공행진할 상황은 아니란 이야기다.
생산 가능 인구의 하락에 맞서 한국의 복지 체계는 ‘저부담·고급여→고부담·저급여’로 전환이 예고됐다. 점점 더 세금이나 연금은 많이 내야 하는데, 나중에 국가로부터 받는 국민연금 등 복지 혜택은 줄어든다는 이야기다. 가령 국민연금은 이미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아 매년 20조원씩 적립금이 줄어들고 있다.
국민연금 고갈 연도를 정부(2057년)나 국회(2054년) 모두 여유롭게 잡고 있지만, 더 앞당겨질 건 불을 보듯 뻔하다. 미래출산율을 1.2~1.3명대로 추계한 낙관적인 계산법이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은 한층 심각하다. 2024년이면 적립금이 바닥을 찍는다(국회).
지금 청년이 향후 노년이 됐을 때도 부동산 선호 현상이 유효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가족해체·평생 싱글의 트렌드가 중소형 주택의 신규 선호로 연결되겠지만, 지금처럼 전국적인 내 집 마련 열망 현상이 지속되긴 쉽진 않을 것이다.
MZ세대 등 청년인구의 소비 성향 변화도 많은 걸 시사한다. 이들은 미래보다 현실을 우선하고, ‘소유’보다 ‘사용’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들에게 집은 그들 부모가 생각하는 집과는 다른 존재다. 이들이 10~20년 후 요즘 30대처럼 ‘영끌’을 해서라도 내 집 마련을 하려 할 것이라고 예측하긴 쉽지 않다.
2021년 대학붕괴의 곡소리를 무시해선 곤란하다. 지방대학처럼 백난지중(百難之中)에 내몰린 곳은 수두룩하다. 3년간 출산율 1명 이하의 현실은 당장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겨냥한다. 학원 등 사교육 시장의 축소는 시간문제다. 비켜섰다고 눈감으면 상황 악화는 순식간이다. 정해진 경고를 무시한 대가는 엄청난 법이다.
먼저 닥친 남의 불행을 관조하기보다 본인에게 치환해 교훈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 정밀하고 치밀한 인구 분석과 통계 해석을 통해 생존 활로를 찾는 건 이제 모든 영역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작업이다. 다행히도 인구통계는 널려있다. 꾸준한 관심과 약간의 노력이면 필요한 정보를 얻는 건 어느 때보다 쉽다.
세계적인 아웃도어 의류 브랜드 ‘파타고니아’의 창업자(이본 쉬나드)는 회사철학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로 요약했다. 파도와 조수, 바람 등 외부 변화를 걸림돌로 여기지 말고 활용하라는 의미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 타이밍에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면 서핑할 방법은 얼마든지 열린다. 인구 통계는 그 변화를 꽤 잘 알려주는 공개된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