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투기 막기 위한 농업경영계획서, LH 직원 시흥·광명 투기에는 무용지물
[헤럴드경제=최정호 기자] 농지 투기를 막기 위해 제출하는 농업경영계획서가 일부 LH 직원들의 시흥·광명 투기 앞에서는 무력했다. 원칙적으로 농민만 소유 가능한 농지를 비농민도 소유할 수 있도록 16개 예외 조항을 둔 농지법의 선의를 투기에 적극 활용한 것이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8일 경기 광명시흥 신도시 예정지에 부동산 투기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지방자치단체에 제출한 농업경영계획서들이 대부분 부실투성이였다고 말했다.
LH 직원 투기 의혹이 제기된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재활용사업장 인근 토지에 묘목들이 심겨 있다. [연합] |
이들이 제출한 농업경영계획서는 상속이나 담보, 주말농장 등의 목적으로 비농민이 농지를 소유하게 될 때, 소재지·지번·지목·면적·영농거리·주재배예정작목 등을 밝혀 이 땅이 실제 농업 목적으로 사용될 것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서류다.
하지만 이번 LH 직원들이 제출한 서류에는 직업 기재란이 비어 있거나 특정 필지의 공동 소유자들이 각각 작성해 제출한 계획서의 구체적 내용이 동일한 경우도 있었다.
특히 시흥시에서 제출받은 LH 직원들의 농업경영계획서에는 빈칸이 많았다. 투기 대상으로 지목된 5905㎡ 규모의 무지내동 밭을 소유한 이들은 하나같이 계획서상의 직업란에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해당 필지는 LH 직원 2명과 직원 가족(추정) 2명 등 총 4명이 2018년 4월19일 공동으로 매입했다.
이들이 각각 지자체에 낸 농업경영계획서의 내용도 대부분 동일했다. 주 재배 예정 작목은 ‘고구마· 옥수수’, 영농 착수 시기는 ‘2018년 7월’이라고 모두 동일하게 적혀 있었다. 각각 4개의 계획서에 적힌 필체도 한 사람이 대표로 쓴 것처럼 상당히 유사했다. 농업경영계획서는 본인이 자필로 작성하는 게 원칙이다.
직업이 허위로 기재된 문서도 발견됐다. 과림동의 5025㎡(밭) 필지의 경우 LH 직원 5명과 이들의 가족 2명 등 총 7명이 공동 소유하고 있었지만, 직업란에 3명은 ‘회사원’, 1명은 ‘주부’, 1명은 ‘농업’, 1명은 ‘자영업’이라고 기재했다. 나머지 1명은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이들 역시 무지내동 필지 소유자처럼 7명 중 6명이 주 재배 예정 작목으로 ‘나무 식재, 고구마’라고 똑같이 썼다. 나머지 1명은 해당란을 공란으로 비웠다. 7명 전원은 노동력 확보 방안으로 ‘일부 고용’이나 ‘일부 위탁’ 대신 스스로 농사를 짓겠다는 뜻의 ‘자기 노동력’ 항목에 동그라미를 쳤다.
벼농사를 짓겠다고 서류로 제출하고, 실제로는 특별한 관리 없이도 잘 자라는 버드나무 묘목을 심은 경우도 있었다. 과림동의 한 투기 의혹 토지(논·3996㎡)의 농업경영계획서에는 주재배 예정 작목이 모두 ‘벼’로 기재돼 있었다. 해당 필지는 2019년 6월3일 LH 직원 4명이 공동으로 매입해 소유 중인 곳이다.
하지만 실제 이 논에는 빼곡히 심긴 버드나무 묘목만 존재했다. 한 주민은 “수양버들일 것이다. 버드나무는 가만히 둬도 알아서 자란다”고 말했다. 벼를 주재배 예정 작목으로 적어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한 뒤 비교적 관리가 쉬운 버드나무를 심어둔 것이다.
LH 직원 1명과 지인이 공동 소유 중인 2739㎡(논) 규모의 다른 필지 역시 농업경영계획서에 주재배 예정 작목이 ‘벼’라고 적혀 있었지만 실제로는 버드나무 묘목만 심겨 있었다.
전용기 의원은 “LH 직원들이 허위 농업경영계획서까지 작성해가며 신도시 예정 부지를 매입해 재산 증식에 매진한 정황이 드러났다”면서 “공정이란 가치가 더 훼손되지 않도록 개발정보를 빼돌려 부동산을 매입한 직원들을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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