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LLY CHILDISH, wolf in birch trees, 2019, Oil and charcoal on linen, 183x183cm [리만머핀갤러리 자료] |
회색의 늑대가 관객을 응시한다. 숲에서 마주친 늑대는 당장이라도 낯선이를 피해 도망가려는 듯 모든 감각이 날 서있다. 빈센트 반고흐나 에르바르트 뭉크 사이 어디쯤 위치하는 것 같은 표현방식은 전통적이면서도 또 자유롭다. 스스로를 ‘전통적 급진주의자’로 부르는 영국작가 빌리 차일디쉬의 작품 ‘늑대’다.
2012년 갤러리현대 개인전에서 시인 이상(1910~1937)과 소설가 이광수(1892~1950)를 자신의 스타일로 그려 한국관객과 처음 만난 그는 이번엔 자연을 캔버스에 담았다. 종로구 소격동 리만머핀 서울은 빌리 차일디쉬의 두 번째 한국전 ‘늑대, 일몰 그리고 자신’을 개최한다.
작가는 나무가 우거진 숲, 해질녁 북해의 바닷가, 정물 등 미술사에서 친숙한 소재들을 다룬다. 대걔의 작품들은 몰입상태에서, 추가적인 수정 없이 한 번에 완성된다. “나는 어린아이가 그리는 것과 같이 그림을 그린다. ‘외부의’ 어떤 것이 나의 관심을 끈다. 그 ‘어떤’것을 회화로 남기는 행위는 내가 단지 관찰자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만능의 창조자 혹은 피조물의 위치로 끌어당긴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자 출품작에도 등장하는 ‘늑대’와의 만남도 사실 이같은 우연에서 시작됐다. 딸이 늑대와 개를 좋아해 TV에서 늑대관련 프로그램을 본 후 매력을 느껴 늑대를 작업에 담기 시작했다. 따라서 ‘늑대’는 회가의 예술적 자아가 투영된 것이 아니다. 그저 매력적인 ‘대상’일 뿐이다. 작가는 관객들에게 특정한 반응을 유도하려고 하지 않으며, 스스로 느끼고 해석하기를 바란다“라며 ”내 작품을 자연과 관계를 맺는 하나의 창으로 바라봤으면 한다고 말한다.
차일디쉬의 예술적 행보는 ‘반동’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조선소에서 일하던 그는 지역 미술대학에 진학하려 했지만, 정규 교육을 마치지 않은 탓에 입학이 거부됐다. 런던의 세인트마틴 예술학교는 그의 예술적 재능을 알아보고 입학을 허가했지만, 제도권 미술교육에 저항하다 2년만에 퇴학당한다. 1999년 찰스 톰과 함께 구상미술을 장려하는 국제미술운동 스터키즘(stuckism)으로 주목받았다. 개념미술이 미술계의 대세로 떠오르던 시대, 강한 실험성이 오히려 현대미술을 난해하고 상업적으로 변질시키고 있다며 거부감을 보인 것이다.
그럼에도 예술계는 그의 작품을 사랑했다. 2000년에는 영국 대표작가를 소개하는 ‘브리티쉬 아트쇼5’에 소개됐다. 2010년 뉴욕 화이트 컬럼스, 런던 ICA개인전에 이어 2014년엔 푸쉬킨 하우스에서 단체전을 가졌다. 차일디쉬는 전방위 예술가이기도 하다. 현재까지 다섯권의 소설을 집필했고 40편이 넘는 시를 썼으며 150개가 넘는 LP를 녹음했다. 그의 ‘전복적인’ 미술세계를 만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6월 27일까지 이어진다. 이한빛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