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에선 배우 메이크업 교체ㆍ무용은 군무와 스토리 염두
“생생한 현장감 살리고, 배우의 땀방울까지 표현”
[경기아트센터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닉네임 ‘치악산 팬션 주인장’의 한 마디. “이곳에서도 잘 나오네요!”
공간이 존재해야 가능했던 현장 예술이 공간을 뛰어넘었다. 같은 시간에, 같은 공연을 각기 다른 장소에서 ‘실시간’으로 즐기는 것이 가능해졌다. 채팅창에선 ‘랜선 박수’가 쏟아졌다. 클래식 공연의 악장마다 칠 수 없던 박수를 ‘안방 1열’에선 마음껏 칠 수 있는 것도 또 다른 재미였다. ‘실시간 공연’을 보는 관객들은 실시간으로 클래식을 감상하고, 서로간의 정보와 감흥을 나눴다.
권영훈 경기아트센터 미디어창작소 PD는 “생중계를 하다 보니 진짜 소통은 관객들 간의 소통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며 “매개의 역할로 예술의 가치가 충분히 확장될 수 있고,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경기아트센터는 코로나19 이후 공연계 ‘최초’로 ‘무관중 생중계’ 타이틀을 들고 나왔다. 지난 2월부터 지금까지 국공립 공연장이 셧다운되고, 예술단체들이 무기한 휴업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서의 출발이었다. 권영훈 PD에게서 경기아트센터 ‘무관중 생중계’ 공연의 제작과정을 들어봤다.
경기아트센터의 무관중 생중계는 K팝스타들의 콘서트 연출팀과 협업한다. 작품 한 편당 카메라는 6~8대가 동원된다. [경기아트센터 제공] |
▶ 아이유 공연팀과 협업…편당 카메라 6~8대 투입=실시간으로 관객과 만나는 공연인 만큼 사전 녹화 못지 않게 준비 과정이 철저하다. 경기아트센터에선 지난해부터 문화예술 기회를 확대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무료 공연에 한해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다. 권 PD는 “작년에 몇 차례 시험을 통해 테스트 배드를 마치고, 코로나19 이후 발 빠르게 예정된 공연의 실시간 방송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생중계라고 해서 사전 녹화에 비해 퀄리티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경기아트센터 모든 공연의 생중계 촬영은 미디어창작소와 방탄소년단·아이유 등 K팝스타들과 함께 한 국내 최고의 콘서트 연출팀이 참여한다. 그만큼 최고의 영상미와 음향을 자랑한다.
무관중 생중계 공연을 위해 한 편당 투입되는 인력은 15명, 한 편당 동원되는 카메라는 6대 정도다. 최대 8대까지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카메라 장비도 평범하지 않다. 보통 영상 촬영에 많이 사용하는 DSLR 형태가 아닌 EFP 카메라를 사용한다. 무대에 오르는 공연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기 위한 선택이다.
권 PD는 “공연장은 다른 장소와 달리 무대 조명이 시시각각 변한다”라며 “연출에 따라 조명이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도 하고, 붉은빛이나 푸른빛이 돌기도 한다. 실시간으로 달라지는 무대를 관객이 눈으로 보는 것처럼 촬영하기 위해 EFP 카메라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이 카메라는 중앙에서 한 번에 색 보정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실시간 중계에는 안성맞춤이다.
실시간 생중계 공연을 위해선 사전 리허설을 통해 촬영팀과 연출, 배우 간의 호흡을 수차례 확인한다.[경기아트센터 제공] |
▶ 사전 리허설 필수…배우들 메이크업 바꾸고, 스토리 따라 촬영의 묘=실수 없는 생중계를 위해선 ‘사전 리허설’이 필수다. 리허설에선 실제 공연에서 하는 것처럼 녹화를 진행한다. 특히 촬영의 총감독과 무대에 오르는 공연의 연출, 아티스트팀의 사전 약속이 중요하다.
권 PD는 “이 장면에선 어떤 카메라로 어떻게 찍어야 한다는 것을 논의하고 약속한다”고 말했다. 연극의 경우 무대에서 한 눈으로 보던 것을 카메라로 편집의 묘를 발휘한다. 경기도 극단의 ‘브라보 엄사장’의 촬영 당시 권 PD와 박근형 연출가는 3일 밤낮으로 회의를 거듭했다고 한다. 권 PD는 “카메라가 주인공을 찍는 동안 조연의 표정이나 행동에 복선이 될 수 있는 장면이 있다”며 “영상으로 작업할 때에는 전체 스토리의 이해를 높이는 장면을 놓치면 안되기에 이런 부분을 염두해 찍고 있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무관중 생중계에선 배우들의 메이크업도 달라진다. 무대에서 배우들은 윤곽을 뚜렷하게 하는 메이크업으로 관객과 만나는 반면 영상에선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들처럼 자연스러운 메이크업으로 바꾸는 사전 준비 과정을 거친다.
무용 공연을 촬영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몸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공연인 만큼 생동감 있는 표현을 위해 카메라가 무대 위로 올라가기도 한다. 권 PD는 “예술계에선 무대 위에 카메라가 올라가는 것을 금기시했는데, 특정 장면에선 서로의 약속 하에 올라가기도 한다”며 “무용단이 도는 장면에서 같이 무대를 돌며 생생한 현장감을 살린다”고 말했다.
단지 ‘현란한 움직임’만 담은 것이 아니라 극을 움직이는 스토리까지 염두해 촬영한다. 단체 군무의 포인트를 살리되 남녀 주인공과 갈등을 일으키는 제삼자의 스토리를 담아내는 것이다. 보통 무용과 스토리를 6대4의 비율로 담아 관객에게 전달한다.
권 PD는 “현장에서 보는 것과 영상으로 보는 것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최대한 친절하고 쉽고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장치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메라로 영상을 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음향이다. 보통 연극의 경우 배우마다 핀 마이크를 채우지만, 영상 작업에선 콘덴서 마이크를 사용한다. 멀리서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 가까이서 울부짓는 소리 등을 공간감 있게 살리기 위해서다. 권 PD는 “핀 마이크는 선명하게 잘 들려 이해도를 높일 수 있지만, 현장감을 높이기 위해 콘덴서 마이크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막대한 장비와 인력이 투입되는 만큼 제작비도 만만치 않을 것 같지만, 경기아트센터에선 한 작품당 880만원으로 인터넷 송출까지 마친다. 권 PD는 “코로나19로 인해 공연이 취소되며 쉬고 있는 장비들이 많아 적절한 가격 수준으로 영상을 촬영할 수 있었다”며 “특히 겨울에는 스포츠 중계업체에서 카메라를 쓸 일이 없어 330만원의 적은 예산으로 양질의 콘서트를 라이브로 진행할 수 있었다”고 귀띔했다.
권영훈 PD는 “무대 예술을 영상으로 만날 때의 가장 큰 장점은 배우의 땀방울, 피아니스트의 손 등 무대에서 보기 힘든장면을 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아트센터 제공] |
▶ 배우의 땀방울, 피아니스트의 손까지 생생하게=현장에서 보던 공연을 영상으로 만날 때의 가장 큰 장점은 안방이 객석 1열이 된다는 데에 있다. 공연장의 뒷좌석에선 볼 수 없던 장면을 화면으로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권 PD는 “배우의 땀방울이나 피아니스트의 손, 무대 위에서 내려다보는 단체 군무 등 접근이 제한적이었던 장면들을 영상을 통해 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무관중 생중계’ 공연을 ‘안방1열’에서 성공적으로 상영하기까진 난관도 많았다. 특히 연극의 요소 중 하나가 관객인 만큼 “관객 없이 진행하는 공연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권 PD는 하지만 “카메라 하나 하나가 수천, 수만의 관객이 될 수 있다고 설득했다”며 “공연장과 달리 배우와 아이컨택하는 장면을 만들면 카메라를 통해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이 눈을 맞출 수 있고, 심리적 묘사나 장치에 더 깊숙히 접근할 수 있다. 심리적 상황을 보다 잘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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