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oph Kostlin, DG 제공] |
최단기록 79초. ‘클래식계의 슈퍼스타’가 티켓을 팔아치우는 속도다. 2017년 통영국제음악당 리사이틀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26)이 세운 기록이다. 짧게는 1분대, 길어야 5분이면 티케팅을 위한 ‘클릭 전쟁’은 끝이 난다. 스물한 살, ‘한국인 최초’로 ‘쇼팽 콩쿠르(2015)’ 우승자가 된 이후 조성진이 한국 클래식계에 가져온 변화는 상당하다. 소수의 문화였던 클래식은 ‘젊은 거장’과 함께 새로운 관객들을 불러들였다. 전 세계 거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계 무대에 섰고, 그의 모든 생활에 대중의 관심이 집중됐다. ‘클래식계의 BTS’라는 수사도 괜히 나온 것은 아니었다.
최근 이메일로 만난 조성진은 “지난 5년은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고 말했다.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스물여덟, 스물아홉처럼 받침에 ‘ㅂ’이 들어가면 20대 후반이라고요. 그래서 책임감도 더 느껴요. 브람스는 20대 초반에 피아노 콘체르토를 작곡했는데 나는 지금 뭐하고 있지?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피아노를 친 이후 하루에 4~5시간씩 연습을 했고, 전 세계를 다니며 연주를 했다. 2012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고, 지금은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며 지구별 여행자처럼 유수의 도시마다 음표를 새기고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변화라고 하면 연주하러 다니는 생활에 조금 더 적응이 된 것 같아요. 성장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신이 없어요.”
그의 음악은 조금 달라졌다. 쇼팽 모차르트 드뷔시 등 한 작곡가를 깊이 있게 파고들던 그는 다음달 8일 새롭게 선보이는 음반 ‘방랑자(The Wanderer)’를 통해 도전을 시도했다. 음반에는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인간 조성진의 삶을 아우르는 여정이 담겼다.
“어떤 아티스트들은 콘셉트에 맞춰서 프로그램 짜는 걸 잘하는데, 저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리코딩 할 때는 한 작곡가만 하는 것이 더 편하고 쉬운 점이 있어요. 그래도 한 번은 리사이틀 프로그램 같이 여러 작곡가들을 엮어 녹음해보고 싶었어요.” 레퍼토리도 정교하다.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 베르크 ‘피아노 소나타’,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등 세 곡을 배치했다. 기술적으로 어려운 곡들을 선택한 만큼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천재성을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음반의 제목처럼 조성진 역시 ‘방랑자의 삶’을 살고 있다. 슈베르트와 리스트가 살던 낭만 시대를 풍미했던 키워드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조성진에게도 머물렀다. 그 역시 베를린의 집에 있는 시간은 1년 중 고작 4개월 뿐이라고 한다. 오랜 ‘연주 여행’을 하다 보면 고독은 자연스레 친구가 된다. “처음 파리에 살 때는 어디가 집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는 내가 있는 곳이 집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가끔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힘들거나 외롭다고 느끼진 않아요.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오히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거 같아요.”
쉼 없이 이어왔던 피아니스트의 삶은 코로나19와 함께 잠시 멈췄다. “5년 만에 처음으로 오래 쉬고 있다”고 한다. 갑작스레 주어진 일상은 음악과 영화로 채우고 있다.
“이번 사태로 인해 음악의 중요성을 더 느끼게 됐어요. 요즘엔 에밀 길렐스와 예핌 브론프먼와 같은 연주자의 곡을 듣고 있어요. 마땅히 할 게 없거나, 위로가 필요할 때나, 즐기려고 할 때나, 우리가 살아가는 데 음악이 꼭 필요하다고 느껴요. 그리고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알게 됐어요. 평범하게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게 얼마나 소중했는지 많이 느껴요. 음악을 하려면 음악과의 거리가 필요해요. 그래서인지 제겐 친구들과 즐길 수 있는 시간은 놓을 수가 없어요.”
그는 “어렵고 힘든 시기지만, 우리는 곧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오는 7월엔 한국에서 기다리던 음악팬들과 만난다. 2년 만의 전국 투어로, 7월 7~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고승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