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정의할 수 있을까? 사랑을 합리적으로 정의한다는 게 가능할까? 특히 타인의 사랑을 객관적 논리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3월 7일부터 15일까지 공연된 연극 ‘의자 고치는 여인(연출 송현옥)’에서 이와 같은 물음으로 사유의 장이 펼쳐졌다. ‘50여 년 동안 한 남자를 짝사랑한 여인의 사랑은 의미가 있는가?’, ‘그녀의 사랑을 행복이라 할 수 있는가? 아니면 불행이라 보는가?’ 하는 물음들이 관객에게 던져졌다.
‘의자 고치는 여인’은 2019 창작산실 연극 여섯 번째 작품이다. 무대 위에서 연극, 무용, 음악, 미술, 문학, 영상 등을 적극 활용하면서 독창적인 공연예술 작업을 지향하는 ‘극단 물결(The Flow Theatre)’의 작품이다. 한 남자를 평생 동안 사랑했던 여인의 삶을 다룬, 프랑스의 소설가 기드 모파상(Guy de Maupassant)의 ‘의자 고치는 여자(원제: La Rempailleuse)’를 각색한 것이다.
대략의 줄거리는 가난한 여자아이가 신분이 다른 남자에게 사랑에 빠지면서 평생 동안 대가 없는 짝사랑을 한다는 이야기다. 그저 남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여인은 남자를 찾아가 뽀뽀를 하고 돈을 주고 도망간다. “이 세상에서 제가 본 남자는 그 사람 뿐이었어요.” 남자는 결혼을 하고 끝내 여인은 상처를 받지만 노인이 되어 죽는 날 까지도 남자를 향한 짝사랑은 계속된다. “이 여인의 삶은 숭고한 사랑인가, 어리석은 집착인가” 재해석의 포인트는 그 여인의 삶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관점’이 된다.
연극 ‘의자 고치는 여인’의 한 장면[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
사유의 장을 만들어 내면서 관객 참여를 끌어내는 극의 힘과 함께 배우들의 연기가 더해지면서 ‘의자 고치는 여인’은 재미를 선사한다. 그리고 연출에 있어 여인의 감정을 대변해주는 샹들리에를 반복 등장시키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이전에 전달받은 감정을 빠르게 끌어 낸다거나, 극 속에서 현실로 나와 토론의 장을 만들어 관객과의 참여와 소통을 이끌어내고 다시 극으로 들어가는 지점, 무대의 턴테이블을 이용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만들어냈다가, 말미에는 도리어 역으로 되돌아가는 지점들은 극의 흐름에 굴곡을 만들며 관객을 더욱 집중시켰다.
하지만 의외로 숨은 관전 포인트는 역동적인 배우들의 움직임이었다. 극 속에서는 연기자의 대사나 제스처 뿐만 아니라 꽤 난이도 있는 무브먼트가 장면들을 채우고 있었다. 현대무용 안무가 이영찬이 안무를 맡으면서 극 마디마디를 무용적인 움직임으로 풀어냈는데, 표현주의 무용의 특징들이 느껴지는 움직임들은 배우의 감정선을 이어받아 표현을 극대화 시키면서 몰입감을 높였다. 특히 배우들의 노련한 움직임과 동작 중에도 멈추지 않고 나타나는 감정 담은 표정연기가 적당히 자연스럽게 맞물리면서 언어를 넘어선 또 다른 차원의 감정을 이끌어 냈다.
특히 많은 의자를 활용하여 공간을 재배치하거나 빠른 시각 전환을 일으키고, 크고 작은 동작들로 촘촘하게 그려낸 장면들은 여인이 마주하고 있는 상황 속으로 관객을 압도적으로 몰입시키는 힘을 보여줬다. 연극에서 무용적인 움직임을 차용한다고 했을 때, 대사와 움직임의 경계, 혹은 언어로 표현하는 장면에서 움직임으로 넘어서는 지점이 얼마나 매끄러울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되곤 한다. 그러한 점에서 ‘의자 고치는 여인’은 대사와 무용적 움직임이 서로 시너지를 만들어낸 좋은 예라고 본다. 공연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