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경섭, 바느질로서의 드로잉(미세스 정을 위하여), 종이 위 아크릴, 150mm×90mm, 2013

짧고 얇은 붓질이 커다란 캔버스를 가득 메웠다. 작가는 한 땀 한 땀 수놓듯 화면을 채웠다. 촘촘한 점들이 모여 형상을 이룬다. 스타카토처럼 강렬했을 필획들은 여럿이 뭉치고 모이자 겸손하게 자신을 낮춘다. 변경섭 작가의 신작 시리즈 ‘바느질로서의 드로잉’이다.

제주돌문화공원관리소 오백장군갤러리는 변경섭 개인전 ‘기억하며, 바라며’를 오는 4월 26일까지 개최한다. 전시엔 회화 50여점이 나왔다. 화면에 담긴 형상들은 솟대 위의 새, 사람, 평야 위에 나즈막하게 엎드린 산 등이다. 작가는 장지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형상을 그리고 그 위에 세필로 흰 점을 한 점 한 점 찍었다.

작가의 트레이드마크인 이 작업 기법은 사실 미국유학시절에서 연유한다. 홍익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작가는 미국에서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바느질을 시작했다. 단순하면서도 정직한 노동은 당시 치기와 오만함이 만든 관념의 비현실성을 반성하기에 충분했다.

서평을 쓴 김인성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무한한 점들은 고난과 좌절을 겪어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법한 마음, 단 한 땀이라도 성글게 살아서는 안된다는 다짐, 닥쳐온 고통을 어설프게 피하지 말자는 결단, 그리고 이 어려운 시간에도 어떤 의미가 있으리라는 희망과 기도”가 담겨있다. 작가는 “고국을 떠나 삶의 고비마다 만나게 된 다양한 인연을 떠올리며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듯 하루에 몇 시간씩 점을 찍는다”고 말한다.

전시를 기획한 갤러리측은 “바느질로서 드로잉에 ‘미세스 정’으로 상징되는 인간은 성과 속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인간상”이라며 “우리시대 편향된 시각과 자기주중에 함몰된 일방통행에 대한 현실적 발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곧 저것이 되는 ‘종교적 영성 세계’까지 표현하고 있어 관람자에게 자기 정화와 이를 통한 희열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한빛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