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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탄노년단’ 신구·손숙이 말하는 ‘잘 죽는다는 것’
배우 신구와 손숙이 호흡을 맞춘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신시컴퍼니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아이고 똥질, 똥질, 그것만 안했으면 좋겠네.”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버지의 등은 나날이 작아지고, 병세는 하루가 다르게 깊어만 간다. 거동이 불편해 대소변 실수를 하고, 간성혼수로 가족을 알아보지 못 하는 아버지. 짱짱하던 한 시절의 아버지는 가족들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환상 동화’가 돼버렸다.

매일을 헌신하던 아내도 한 소리가 나온다. 그러다가도 “지겹고 정 떨어진지가 언젠데, 간다고 하니 불쌍하고 아프고 서럽다” 한다. 아들의 등에 업힌 아버지는 쉰 목소리로 “날 좀 살려달라”며 눈물을 흘린다.

연기인생 도합 115년. 무대 위는 두 배우의 숨소리만으로도 관객들을 다른 공간으로 안내한다.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에 출연 중인 배우 신구와 손숙이 주인공이다. 올해로 네 번째 시즌을 맞은 이 연극에서 두 배우는 다시 부부로 호흡을 맞췄다.

“이젠 식구지 뭐.”(신구), “지금껏 서로 얼굴 붉혀 본 일도 없어요.”(손숙)

[신시컴퍼니 제공]

두 배우가 함께 한 세월만 해도 50년. 1970년대 초 국립극단 시절부터 함께 했으니, 이젠 ‘척하면 척’이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배우들이 호흡을 맞추는 연극은 가족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요즘 ‘웰다잉’이란 말을 많이 하잖아요.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아름다운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돼요.”(신구)

2013년 초연 이후 네 번의 시즌을 맞으며 이전에는 찾아내지 못한 감정을 만나고, 대사의 의미를 발견한다. 손숙은 “같은 대사라도 매번 감정의 기복이 다르다”며 둘째 아들이 미국의 큰 아들에게 전화해 “아버지 돌아가시는데 언제 올거냐”며 화를 내는 장면을 언급했다. “그 장면에서 둘째를 때리며 야단을 치는데, 사실은 둘째가 아니라 큰 아들에 대한 섭섭함과 원망이었어요. 잘난 아들 둬서 뭐 하나, 싶은 마음. 이전에는 그냥 넘어갔는데, 이번엔 새롭게 알게 된 감정이에요. 작은 것들을 놓친 부분이 많더라고요.”

신구도 대사의 호흡과 장단음 표현을 달라졌다고 한다. “예전엔 이런 호흡으로 했다면 지금은 달리 선택해 표현한 부분이 여러 군데 있어요. 이 작품엔 발견의 기쁨이 있어요.”

배우 조달환은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에서 둘째 아들 역할을 맡아 간암 말기의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아들의 마음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신시컴퍼니 제공]

숨소리만으로 압도하는 장인 배우들은 단일 캐스트로 지난 한 달간 관객들과 만났다. 손숙은 “우리 때는 더블 캐스팅이라는게 없었다”며 “더블이었다면 우리가 안 한다”고 했다. 연기 세월은 켜켜이 쌓여가지만 체력과 열정은 젊은 배우들 못지 않다. 손숙은 “배우는 나이가 없다”며 “나이 들수록 너무 좋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젊을 때는 작품을 보는 눈도 다르고,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어느 순간을 넘어가면 본질로 들어가게 된다”고 했다. 신구 역시 “나이가 들수록 세상사를 보는 눈이 익어간다”고 말했다. 오래 연기할 수 있도록 최근엔 건강 관리에도 힘쓰고 있다. 소문난 애주가인 신구는 꾸준한 배우 생활의 원동력으로 ‘술’을 꼽으며 “젊을 때부터 좋아해서 마시는데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요즘엔 관리를 하고 있다”며 “지금은 소주 한 병 정도 마신다”며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대학로의 ‘방탄노년단’인 신구와 손숙이 출연하는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를 볼 수 있는 기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때문이다. 신구는 “공연장이 썰렁해지고 있다”고 걱정했고, 손숙은 “코로나19가 쓰나미처럼 덮치는 바람에 걱정이 많다. 지금 공연장은 거의 초토화”라는 분위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연극은 애초 다음달 22일까지 이어질 예정이었으나 오는 29일 막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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